그녀는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기억력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작가가 말하는 경험을 종종 했다. 글에 대한 생각으로 잠이 들면, 비몽사몽 간에 나의 머릿속에서 막혀있던 문장들이 마치 타이핑하는 것처럼 쓰이기 시작한다. 잠에서 깨면 모두 잊어버릴 걸 알면서도 귀찮아 그냥 내버려 두면 일어나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은 재현의 의미도 있지만, 재구성의 역할이 큰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하여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얽어 짜서 다시 새롭게 구성해 내는 일. 기억하려는 시도에는 이러한 정성이 들어있다.
메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생각을 모아야 글이 된다'고도 이야기했다. 노트나 본인SNS에 생각을 기록하면 좋다고 했다. 주중에 생각을 차곡차곡 모으면 주말에는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생길 거라고 말했다. 심심한 날의 변함없는 반복 속에서 나는 쓸 문장이 그렇게 많지 않다.
무엇을 적을 것인가란 고민보다 어떻게 적어야 할까를 걱정하는 나날들이 지속되는 삶이란 어쩌면 안온하고 행복한 삶이기도 하지만, 쓰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안일한 삶 같기도 하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자신의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독서)를 통해 한 가지 분야를 진득하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이 가장 좋았다. 글쓰기가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말보다, 글쓰기는 자신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임계점이란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다른 상태로 바뀔 때의 온도와 압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1 기압에서 물의 임계점은 100도씨다. 액체상태에서 기체상태로 변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는 경험, 더욱 자유로워지는 순간,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 '글쓰기의 임계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5월 17일(내일)은 글쓰기 세 번째 시간이다. 작가는 글을 써서 제출하면 함께 첨삭해 보자고 하며, 지원자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30명 중 나를 포함하여 3명이 손을 들었고, 결국 내일 오전 10시까지 A4 용지로 한 장 반 정도의 분량을 제출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써 놓은 글 중 좀 더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 수정과 퇴고를 하고 있다.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글을 제출하겠다고 든 오른손이 원망스러운지 모르겠다. 쓰고 절망하는 것과 안 쓰고 후회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래도 전자가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