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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May 09. 2024

2. 나의 작가

-나의 아저씨 아니고요.

은유, 『해방의 밤』(2024)


은유작가의 책은 꼬박꼬박 사는 편이지만, 가지고 있는 책은 없다.

열심히 읽고 마음이 일어나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본다. 긋다 보니 밑줄이 너무 많아져서 '이럴 거면 굳이 왜 그었을까'라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발표가 있거나,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있을 때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떤 문장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할 때 『다가오는 말들』(2019)의 아무 곳이나 펴서 읽었다. 굳이 관련 없는 주제여도 상관없었다. 읽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었다. 사려 깊은 문장들이 리듬을 타며 나에게 다가왔다. 읽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을까.


'다른 삶이 있음을 발견하고 나의 삶도 다르게 상상하게 하니까요.' 『해방의 밤139쪽. 


반복해서 읽다가 문장들이 눈에 익숙해질 때쯤 내가 그은 밑줄이나 끄적거린 메모를 개의치 않을 이에게 읽어보라며 건네줬다. 새 책으로 선물해 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요즘에는 든다. 하지만 그때는 나의 마음마저 전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중고로도 팔리지 않을 책을 건넸다. 


글쓰기 수업의 첫 번째 강사로 온 작가는 말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감정, 생각,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내가 알아주는 일입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기약이 없으니까요."


이미 듣고 읽은 내용이지만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치 세상의 신비를 풀어놓는 것처럼 집중이 됐다. 자신의 삶으로 설명하기에, 온 마음을 기울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은 순간이 더 많았다. 아직은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까닭이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아직은 배울게 많은 존재라는 사실을 배움을 통해 알았을 때 조금은 더 나와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기 때문이다. 


잠깐 강의를 쉬어가는 시간에 최근에 산 책을 들고 용기를 내 작가에게 갔다. 

"작가님 팬이에요."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선생님의 책은 항상 저에게 위안을 주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초면에 너무 깊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너무 올드한 것 같다.

결국 수줍게 볼펜과 책을 내밀고, 이름을 묻는 질문에 간신히 "000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며 나의 감정, 생각, 느낌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작가가 알아주는 일은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 모른다. 제한된 강의 시간과 숨 막히도록 단정하게 줄 맞춘 책상이 가득 차 있는 강의실에서는 더욱.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나를 알아주고 있다. 역시 글쓰기 수업 듣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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