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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Sep 19. 2024

딱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지던스 광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상점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곳에서 비싼 귀금속을 팔고 있었다.

'가장'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귀에 꽂혔다. 우리는 모든 것들에 순위를 매기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들이 돼버린 건가. 가장 슬프고 기뻤던 일, 가장 크고 화려한, 가장 작은, 가장 맛있는.


반짝이는 금붙이들을 외면하고 위층의 조그만 창문을 올려다봤다.

건물 사이에 지어진 작은 상점.

부유한 자(옆 건물도 본인의 소유인 경우)는 두 건물 사이에 다리를 놓지만, 빈자는 그사이에 집을 지었다.

건물 사이에 집을 지어야만 했을 마음을 생각했다.

집의 크기가 마음의 넓이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문을 열 때마다 쪼그라들었을 것만 같다.


#1. 딱히


'딱히’라는 말은 점점 기울고 있는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되었다.

게으른 말, 상처받기 싫어 잔뜩 움츠린 말.

말해버리고 나면 편하기도 하지만 왠지 답답한 말.

말하고 싶지만, 자신도 알아차리기 힘든 감정이 쌓인 말.


단호한 말을 곧잘 쓰지만, 또 ‘딱히’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 마음은 쉽게 기울어지고, 기울어진 마음은 나를 맹목적이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온몸에 힘을 준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나에게는 더 가까이 있으니까. 기울어진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에게 균형이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인정을 미루고 타인의 평가에 기대는 일이기에.


‘딱히’라며 태연한 척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는지 몰라.

‘기울면 어때서?’, ‘기울어져도 괜찮아.’라고 네가 말하면,

‘응, 그렇지 뭐’라며 또 태연한 척할걸.


#2. 너답다는 말


먼저 인정해야겠어. 너를 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함을.


‘-답다’:  ‘~다운’의 꼴로 쓰여, ‘그것의 전형적인 속성을 지니다’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너답지 않네"라고 말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너의 긍정적인 면과 너를 연상시키는 말과 행동을 상상했나 봐.


하지만 "나다운 게 뭔데?"라는 너의 지체 없는 반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지.

이렇게 혼자 싸우고 고민하는 모습도 너일 텐데.


언제부턴가 ‘나답게’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고, 그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왠지 있어 보여 자주 썼던 것 같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답게’라는 말처럼 자신을 소외시키는 말이 또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을 텐데, 스스로를 이해하기도 벅찬데.

‘나다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이 있기는 한 걸까?


물론 자신의 개성과 신념을 '자신' 있게 표현하자는 좋은 의미가 ‘답게 혹은 다운’ 안에 들어있겠지만, 우리의 삶이 나의 개성과 신념으로만 꽉꽉 채워지는 것도 너무 무겁거나 답답할 것 같아.

스스로에게 익숙해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 내가 나를 모르는데, 그리고 항상 얼굴을 바꾸는 나인데,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것이 익숙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이걸 '나답다'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보이는 너의 모습, 자체가 너일 거야.

그 이외의 너를 표현하려는 모든 말과 시도는 섣부른 단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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