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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Sep 25. 2024

어울리지 않아서.(운동, 권)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 스비치코바

스비치코바(빵, 소고기, 레몬, 생크림, 잼, 크림소스)


"지금 드시러 가는 곳은 체코 전통 음식을 파는 곳인데, 저는 안 먹어요, 디저트만 먹을 거예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반드시 좋은 곳만을 안내하는 게 가이드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이드는 말 그대로 안내를 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것이든 싫은 곳이든 그는 충실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레몬의 새콤한 맛, 베리가 들어간 잼의 달콤함, 생크림의 느끼함, 그리고 크림소스를 머금고 있는 소고기의 조합이란. 낯섦 앞에서 머뭇거리는 일처럼, 사람들은 선뜻 맛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용기 내 한 입을 먹고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이 익숙한 탓인지, 음식 자체에 대한 기대나 설렘이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나는 먹을 만했다. 사실 어떤 음식이라도 '와 맛있다'라는 감탄이 나온 적은 없는 것 같다. 먹을 만한 음식이고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이 있었을 뿐이다. 음식 맛에 대한 온갖 표현과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이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것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느 나라 초콜릿과 캔디가 맛있다고 하는데, 그게 뉴스거리가 되는 시대에 나는 왜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걸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누군가 스비치코바를 앞에 두고 말하는 소리에, 어울림에 대해서 생각했다.

무엇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말이었을까.

'단짠', '맵단', '새콤달콤'은 왜 어울리는 말처럼 붙어있을까.

어울림은 같은 속성을 공유해야 드러나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속성들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긴밀했다가도 가끔은 소원해지는 관계.

세상에서 전부일 때도 있지만, 그저 삶의 일부분으로 여겨지는 존재.

격랑이 일 때도 있지만 침잠해 가는 시간도 있는, 이런 애매모호한 지점에 나는 걸쳐 있다.

애매모호함이야말로 '어울리다'의 다른 표현 같았다.



나는 운동(physical fitness)을 하고, 그는 권리를 주장했다.

모든 걸 멈추게 할 거라는 밀레니엄버그가 힘없이 스러지는 날 대학에 들어갔다.

사범대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과 길에는 크게 '참교육'이라는 글씨와 웃는 얼굴이 흰색 페인트로 조금 유치하게 그려져 있었다. 통로 정 가운데 그려져 있는 글자와 그림을 밟고 가도 될지 망설이다가 살며시 돌아갔다. 학과를 막론하고 술자리에서 선배들은 '참교육'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 그들은 나에게서 답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참교육'의 청사진을 설명할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앞으로 내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교육'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 시절, 나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일꾼이 되기 위하여 부단히 나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는 데 열중했다. 그들이 말하던 '운동'은 일상이 잠시 멈추더라도 걱정 없는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복을 입은 경찰이 학생행세를 하며 교정을 돌아다니다가 누군가를 잡아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겨울의 한기처럼 몸을 쑤시며 마음을 얼어붙게 했던 시기였다. 세상은 21세기인데, 이곳은 아직도 20세기를 느리게 지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범대학생회 회장의 얼굴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난다. 까만 피부에 걸어 다니면 휘청거릴 정도로 말랐었다.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교수님의 질문에 광장에서 외치던 목소리와는 다른, 수줍은 목소리를 내는 이였다. 그는 학생회 동아리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듯했다. 늦은 밤 학생회 방으로 나를 불러 종이컵이 넘치도록 과일소주를 붓고 내 앞으로 컵을 밀었다. 소주잔의 삼 분의 이만큼만 소주를 채우는 것이 예의라는 교육을 착실히 받은 나는 무례할 정도로 넘실거리는 과일소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르크스를 이야기했다. 그와 다르게 나는 마르크스를 책으로 배웠다. 마르크스 이론이 가지는 의의나 핵심 내용이 마치 자습서의 요약정리처럼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마르크스는 내가 아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 아닌 것만 같았다. 밤 11시가 다 돼 가고, 기숙사의 현관문이 닫힐 시간이어서 나는 마음이 분주했지만, 그는 여전히 주저했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시간 내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벌점을 받아 다음 학기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방마다 돌아다니며 인원 체크를 하므로 밖에서 자는 것도 여의찮다. 나는 종이컵을 들어 벌컥벌컥 과일소주를 들이켰다. 합성 착향료로만 낼 수 있는 레몬 맛으로 기억한다. 시큼하고 달콤하다가 마지막에 올라오는 알코올의 씁쓸함이 기분 나빴다.


2층 학생회 동아리방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곳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때론 탈출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하여 뛰어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머뭇거리는 사람이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사범대 건물 출입문이 잠겨있었기에 열려고 하면 경보기가 울린다. 유일한 출입구는 창문뿐이었다. 2층 창문에 서서  뛰어내릴 지점을 바라보니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아마 높이보다는 술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뛰어내리자마자 기숙사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가로등도 없는 좁은 길을, 어쩌면 학생회장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더욱 힘껏 달렸는지 모른다.


얼마 후 학생회장이 학교에서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권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조금 편하게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갔다. 복학생이 되니 더 편해졌다. 1, 2학년 때처럼 술자리에 불려 다니거나 함께 놀자는 강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간 강의실에 사라졌던 학생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고, 그는 지그시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투명 인간처럼 보였다. 이후 그는 더 이상 권리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술을 권하지도 특정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문득 그가 하지 못한 말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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