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느리게 움직이는 달팽이를 본 적이 있니?
달팽이는 귀찮은 듯, 가기 싫은 것처럼 몸을 천천히 움직여.
어떤 미련이 남아 있는지 지나온 자리에 끈적한 무언가를 덕지덕지 묻히며 서서히 나아가지.
하지만 달팽이는 더듬이로 몸의 움직임과는 달리 재빠르게 사방을 두드려대.
그러다가 조그마한 자극에도 몸 안으로 더듬이를 쏙 집어넣지.
마치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도구인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때때로 내가 달팽이와 같다고 느껴.
빨리 나아가고 싶어 답답해하면서도 여전히 그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뭉그적거리고 있어.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호기심과 약간의 모험심 덕분에 때론 몸보다 마음이 더 빨리 움직이기도 하지만, 작은 상처에도 단단한 껍질 안으로 곧잘 숨어들지.
두렵지만 끊임없이 더듬이를 들이대고, 또 흔적 없이 감추는 달팽이처럼,
오늘도 미련을 뚝뚝 묻히며 가는 듯, 마는 듯하고 있어.
클로이에게 '달팽이'라는 낱말을 주고 글을 써달라고 했다.
나도 '달팽이'를 주제로 글을 작성했다.
클로이는 '느림'이 고유함이라 말했고,
나는 '느림'을 미련이라고 썼다.
클로이가 좀 더 긍정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