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찾기 놀이에 열중하던 어린아이가 떠내려오는 물체를 바라본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던 물체는 가까워짐에 따라 그 형체를 드러낸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시체가 떠내려와 관객의 시선 바로 앞까지 온다. 그리고 그 옆에 ‘시’라는 글자가 시신을 건져 올리듯 쓰인다.
이창동 감독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1. 招魂(본다는 것)
영화 <시>에는 시를 쓰고 싶은 미자(윤정희)가 있다. 미자는 시를 왜 배우냐는 질문에 50년 전 국민(초등) 학교 선생님이 “너 나중에 시인되겠다.”라고 말한 기억이 떠올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문화센터 시 강좌 선생님인 김용탁(김용택)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 한다고 말한다. 관심을 두고, 이해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이라고 한다. 미자는 강좌를 듣고 시를 쓰기 위하여 사과나 나무 그늘을 관찰하지만 매번 누군가 미자의 일상을 방해한다. 아름다움과 기쁨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미자가 쓰고 싶은 삶은 맑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뿐이다.
영화 오프닝 이후 미자는 알츠하이머(치매)가 원인이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팔이 저려 병원을 찾아간다. 병원을 나온 이후 거리에서 오열하는 여성을 바라본다. 하지만 딸을 잃고 오열하는 여성의 슬픔이 자기 손자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보아야 하지만, 미자는 자신도 타인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2. 씻김(스며듦)
시 쓰기가 어려운 미자는 김용탁 시인에게 묻는다.
“선생님 시상은 언제 찾아와요?”
“시상은 찾아오지 않아요, 찾아가서 빌어야 해요, 사정해야 해요. 내 주변, 지금 내 자리에서 찾아야 해요.”라고 시인이 대답한다.
미자는 기범이 아버지를 따라 다른 아버지들이 모인 장소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미자는 손자인 종욱이와 친구들이 여학생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여학생이 투신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와중에 방에서 나와 맨드라미꽃을 보고 수첩에 ‘피같이 붉은 꽃’이라고 적는다. 아버지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참 개념 없는 할머니’라고 한다. 미자는 따라 나온 기범 아버지에게 맨드라미 꽃말이 방패라고 말한다. 방패는 마치 담과 같아서 지켜주기도 하지만 막기도 한다. 미자는 시로 표현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다가오는 삶을 막으려 했지만 손자로 인해 삶은 부서지기 시작한다. 부서진 삶은 부서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서서히 열리고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다. ‘피같이 붉은 꽃’은 자기 손자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여학생의 모습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삶이 부서지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는 평판과 가해자의 장래 걱정을 하며 비밀 유지를 강요하고, 아버지들은 고인이 된 피해자의 가족에게 줄 합의금 액수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들에게 한 소녀의 죽음과 자기 아들의 죄는 촌각을 다투어 해결해야 할 사건일 뿐이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단호하게 닫혀있다.
희진이 투신한 다리를 찾은 미자는 강가로 내려와 바위에 앉아 수첩을 꺼낸다. 떠오르는 시상을 적으려고 수첩을 펼치자 마침 비가 내린다. 비로 인해 미자의 쓰려는 행위는 중단된다. 비는 수첩뿐만 아니라 미자의 온몸을 적신다. 미자의 몸에 스며들고, 미자를 씻긴다. 비를 맞은 채 회장님(미자가 간병하는 노인)을 찾아가 그의 욕정을 받아주며, 희진이의 아픔을 체화(體化)한다.
3. 薦度(시 쓰는 마음)
아버지들의 권유로 죽은 여학생의 부모와 합의하기 위하여 밭으로 찾아간 미자는 투신한 딸의 어머니 앞에서 ‘지 몸을 땅에 던져서, 지 몸을 막 깨지고 밟히게 해서, 다음 생을 준비하잖아요.’라며 땅에 떨어진 살구를 예찬한다. 미자는 이곳이 아름답고 피어있는 꽃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한다. 희진이 어머니는 이곳의 삶이 ‘풍년 들면 드는 대로 값 떨어지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힘들어 살기 쉽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그 삶의 커다란 간극 사이에서 미자는 찾아간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치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속죄하고 싶은 미자에게 설득이란 무척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득 대신 살구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희진을 떠올렸을 것이다.
피해자의 부모와 합의를 위해 회장님을 찾아가 관계를 맺은 대가로 5백만 원을 요구한다. 시 쓰는 일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 미자였지만, 그녀는 손자를 위하여 추해지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시 낭송회 뒤풀이에서 김용탁 시인은 이 시대는 ‘시가 죽어가는 시대’라고 말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시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황명승(황병승) 시인도 역시 ‘시가 죽어도 싸’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마지막 시 강좌에서 시를 제출한 사람은 미자뿐이다. 세속과 예술의 경계가 뭉개지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모호해질 때, 완전한 순수함은 없다는 사실에 점점 다가갈 때 아이러니하게도 더 뚜렷이 보이는 것이 있다.
미자가 쓴 시의 제목은 ‘아녜스(희진의 세례명)의 노래’다. 자신의 시인 동시에 희진이 부르는 노래다.
미자와 희진이의 음성이 갈마들며 시가 낭송된다. 시는 연민이 아닌 타인의 고통과 상실의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이해의 시작은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