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 위치한 작은 호수마을, 할슈타트.
광장에서 마을 길을 따라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교회까지 걸어갔다. 한국보다는 시원했지만, 유럽 7, 8월의 날씨도 오래 걷기엔 힘들다. 점심시간이 되어 마을 안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갔다.
내부가 좁아 야외에 앉아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차광막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에 두피가 따가웠다.
잠시 기다리니 피자와 파스타가 나왔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한국과 비슷했다.
피자는 화덕에 구웠는지 바닥이 약간 눌어 바삭하면서도 고소했다. 과한 토핑이 없어 치즈의 맛이 잘 느껴졌다. 문제는 파스타였다. (이후 다른 곳에서 재차 파스타를 주문했지만 똑같았다.) 파스타의 면이 불어 포크에 말리지 않고 뚝뚝 끊어졌다. 알 덴테의 식감도 싫지만, 이 면은 탄력이라는 생명력이 고갈되어 버린, 접시에 담겨 1시간 이상은 주인을 기다린 존재 같았다. 토마토소스도 토마토, 마늘, 후추, 소금 정도의 풍미만 느껴졌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맛, 밍밍함을 짭짤함이 대신한 맛이었다.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소스에 길든 나의 입맛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두 테이블 건너편에 외국인 가족(엄밀히 말하면 그들에게는 내가 외국인이었겠지만)이 앉았다. 곧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그 가족은 한참 메뉴판을 보고 이야기하더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갔다. 가게를 벗어나기 전 종업원 옆에서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가족에게 동전을 달라고 해서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전(유로)을 종업원에게 주며 말했다.
"미안한데, 너무 더워서 저 자리에 앉을 수가 없네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할슈타트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그때 본 가족의 모습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더운 날씨에 자리가 야외밖에 없다는 사실을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타인에게 설명하며, 팁까지 주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어떤 점이 마음속에 소인처럼 찍혔을까를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하는 상세한 설명의 내용보다 사람을 대하는 정성스러운 태도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선한 본성이 아니라 그들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여유로움 때문인 것 같았다. 아주 잠깐 곁에서 보았지만, 그 여유로움이 너그러움을 이끌고 온 것 같았다.
응당 받아야 되거나, 당연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기를 응당 바라거나 그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것은 모두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함부로 여기는 이에게 타인에 대한 존중을 기대하는 건 더욱 요원한 일이다.
황금률을 따르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들의 태도가 할슈타트의 교회처럼 정갈하고, 호수의 물처럼 잔잔해 보였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대게가 나에게 부재한 모습이었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여행을 통해 나는 그런 것들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