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
1.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
2.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간이 되는 사물의 한계.
삶은 이상하게도 경계를 지으려는 순간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경계는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려는 시도지만 그 경계에 다가갈수록 아리송해질 때가 있다.
멀리서 보면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섞이고 흐려져 결국 무지개라는 존재자체가 투명해지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경계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주변의 어떤 이들은 애초에 경계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무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에게는 거칠게 없어 보였다. 자유분방함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까.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 부러움의 대상과 또 다른 선을 그어보려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경계 지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그 이유는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사랑과 우정이 무엇인지, 그 둘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려는 노력은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가기 위해서는 보스니아땅을 지나야 만 한다.
똑같은 풍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크로아티아에서의 출국 심사와 몇 미터 간격으로 진행되는 보스니아의 입국 심사를 거쳐야 했다.
크로아티아 입장에서는 보스니아의 네움이 그들을 분리시켜 놓아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보스니아의 입장에서는 네움(헤르체고비나의 마을)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관광업)을 무시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건물 몇 채와 차단기만이 국경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경계를 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건너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의 전부인 것처럼 국경의 경찰은 여권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진중하게 그리고 지루한 표정으로 여권의 어느 면에 도장을 찍어줬다.
두브로브니크의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 카메라 렌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높고 웅장했다. 뒤로 물러나 전체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그늘을 포기하고 뜨거운 햇살로 걸어 나가야 했기에 포기했다.
성당에 가기 위해서는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우리나라 경복궁 근정전의 어도처럼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돌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다 보면 성인(saint)들의 인류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때론 사람도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 고즈넉한 골목 한 모퉁이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잡지를 읽고 있던 할머니.
모나지 않은 무던함 혹은 어디에서나 빛나는 고유함. 무엇이 사람을 풍경으로 만드는 것일까.
석회성분이 있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몸의 갈증보다 마음의 갈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 빈 물통에 물을 담았다. 물 맛은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고 시원했다.
여러 나라들의 경계를 지나며 생각했다.
나에게 있는 수많은 경계들도 사실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없는 것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