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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Aug 29. 2024

상관없다는 말

프라하의 시계탑 아래에서.

“상관없어 나는.”

“그렇게 말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줬으면 좋겠어.”     


삶에 실시간 인기 검색어 기능이 있다면 아마 ‘상관없어’라는 말이 내내 1위를 차지할 것입니다.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머리 아픈 숙제였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상관없어’라는 말 뒤에 숨어있었나 봐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어렵고, 여러 선택지를 탐색하는 게 귀찮았음을 인정합니다.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2020 제65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삶은 ‘거대한 체념’에 불과하다는 말이 좋았습니다. 

포기는 행위를 멈추는 일이고, 체념은 마음을 놓아주는 일이라서, 포기는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이지만, 체념은 기꺼이 하는 일이어서, 포기보다는 체념을 더 많이 하는 나라서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위 소설 끝에서 그녀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이젠 상관없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왜 그토록 입에 자주 이 말을 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상관없어’라는 말은 자포자기의 마음 끝에서 새어 나오는 탄식인 줄만 알았는데, 그녀에게는 ‘미세하게 어긋나’ 있던 자신의 삶을 감지하고 터져 나온 외침이었습니다.


‘이젠 상관없어’라는 말은 그녀에게나 나에게 ‘더 이상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한식과 양식, 커피와 술, 바다와 도시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상관없다는 말은, 무엇이라도 너와 함께하는 것만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어떤 걸 먹고, 어느 곳을 가더라고 항상 좋을 테니 말입니다.   


 

정각이 되면 모두가 손을 올려 휴대전화로 촬영을 한다. 그 손들이 마치 구원을 바라는 듯했다.


프라하의 시계탑


1410년 프라하 시청의 요청으로 시계공은 시계탑을 만듭니다. 완성된 시계탑이 너무 아름다워서 관람 온 귀족들이 시계공에게 자신의 나라에도 제작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알게 된 프라하 시의회는 천문시계탑을 독점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해 버립니다. 이후 슬픈 마음을 안고 시계탑에 올라간 시계공이 시계탑에 가만히 손을 대자 시계는 그대로 멈추어 버립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860년, 400년이 지난 뒤였고, 지금은 기계장치의 도움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천문시계는 정각이 되면 소리가 나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시계탑 우측의 해골이 종을 치며, 들고 있던 호롱불을 기울어진 상태에서 수평으로 만듭니다. 안에 촛불이 있다면 촛불이 꺼지겠지요. 해골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해골이 종을 치는 행위는 죽음이 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옆의 기타 치는 인형은 탐욕을, 왼쪽의 지팡이 짚은 인형은 욕심, 거울 보는 인형은 증오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인형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데,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해골이 다시 줄을 당기면 시계판 위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12 사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계판 앞을 지나가며 죽음을 맞아하는 인간 인형들을 지켜봅니다. 12 사도가 모두 지나가면 그 위에서 황금 수탉이 나와 울음소리를 냅니다. 새벽이 오고 새로운 삶이 시작됨을 알리며 인형의 움직임들은 멈춥니다.


프라하의 시계탑 아래에서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죽음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모든 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삶이 있으므로, 삶이란 더욱 허무하고 비극적이게 보인다.'


정물화의 한 장르로 '바니타스'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주로 해골, 꺼져 가는 촛불, 시든 꽃이나 썩은 과일 등으로 표현되며, 인간의 유한함,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의 무가치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유한성과 무가치함이 허무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손에 무언가를 쥐려 할 필요가 없다는 안부, 삶의 영화나 고통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겸손 혹은 안도, 이것이 바로 죽음을 통해 전달해 주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1. 프라하가 좋았던 이유는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분위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무채색의 화려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유럽의 도시들보다는 화려하지도, 고풍스럽지도 않지만 순백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2. '프라하'라고 말하면 왠지 마음이 풀어집니다. 숨을 부드럽게 내뱉으며 나오는 세 글자는 공기 중에 흩어지며, 도시 속으로 나를 스며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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