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기를 낳아주셨기에 나보다 더 소중하다고
내가 아플 때는 눈길 한 번 안 주시던 아버지가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고민도 없이 달려가시는 걸 보고
그 말이 진짜였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다는 말에도 요즘 기력에 없다는 말에도
아버지는 할머니와 관련된 소식이라면 항상 먼저 나섰었다.
난 평생을 아버지가 무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거지만
나에겐 그 당연함이 없다는 게 그렇게 서글펐었다.
하기야 나는 아버지의 주변 사람보다 못한 존재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내 생일도 모르시는 부모님
내 나이도 모르시는 부모님
내 친구 이름 하나 모르시는 부모님
나는 내 생일에 그 흔한 미역국조차도
부모님이 끓여주신 적이 없었다.
생일날 오늘이 무슨 날 인지 아냐고 묻는 질문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는 무심한 대답만 돌아올 뿐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으셨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과 연을 끊겠다 생각하기 전 까진
매년 손수 생일상과 용돈을 준비하곤 했었는데
뭘 바라고 한건 아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내게 부모를 잘 만난 거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밥 굶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넌 밥 안 굶고 여태까지 잘 자랐으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애정도 관심도 없던 부모가
내가 자라남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나에게 행하던 수많은 폭언과 폭행
그냥 나를 내버리듯 방치했던 수년간의 시간들
나는 이걸 다 이해하고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바퀴벌레가 득실대더라도 누울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고
365일 중 360일을 라면으로 때워도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 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대체 힘듦의 크기는 누가 정하는 걸까?
다 각자만의 힘듦과 사정이 있는 건데
누가 더 힘들고 안 힘든 게 뭐가 중요한 걸까?
왜 일반적인 가정과의 비교가 아니라
정말 삶이 힘든 사람들과 비교하며 위안을 찾으라는 걸까?
나는 정말 불행하고 힘들었는데
왜 내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나는 정말 부모님이 진심으로 나에게 미안해만 한다면
과거는 잊을 용기도 있었는데
부모님은 나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나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우리 같은 부모도 없다고 하며
상처받은 나 보단 자신들의 마음이 편해지는 걸 택하셨다.
그러니 나도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