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파라다이스 - 해방과 배신

by 제이슨


<치누아 아체베의 아프리카 3부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민음사/2008

『더 이상 평안은 없다』/치누아 아체베/민음사/2009

『신의 화살』/치누아 아체베/민음사/2011


<다른 아프리카 이야기>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타예브 살리흐/아시아/2014

『검은 새의 노래』/루이스 응꼬시/창비/2009

『죽음 뒤의 삶』/소니 라부 탄시/2020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아마두 쿠루마/문학과지성사/2022

『그후의 삶』/압둘라자크 구르나/문학동네/2022

『프랑세파의 향기』/프랜시스 니암조/글누림/2020

『십자가 위의 악마』/응구기 와 티옹오/창비/2016


<천년 아닌 만년 단위의 역사>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웅진지식하우스/2005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리처드 J. 리드/삼천리/2013

『오브 아프리카』/월레 소잉카/삼천리/2013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인이다


소말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김에 아프리카를 좀 더 돌아보자.

솔직히 나는 지금도 “아프리카”하면 아랫도리만 풀로 얼기설기 가린 ‘토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릴 때 위인전, 예를 들면 슈바이처 박사 전기 같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삽화가 그렇게 그려져 있지 않았던가? 만화의 경우라면 코에 뼈도 하나 꽂혀 있고… 이런 이미지와 ‘토인’과 같은 용어는 사실과 완전히 다른 것은 물론이고, 지독하게 차별적이다. 실제 유럽 사람들이 처음 만난 열대 아프리카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왜 아프리카인가? 그것은 첫째, 우리 모두의 본향(本鄕)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하나가 되어가고 있어서 함께 번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되어 있다. 인류학은 “현생 인류는 약 20만 년 전 동아프리카 대지대(Great Rift Valley), 특히 에티오피아–케냐–탄자니아 일대에서 출현하여, 약 6만 년 전부터 전 세계로 퍼졌다”라고 말한다. 그 과학적 근거는 인류 진화의 주요 화석이 모두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전학도 결론은 같다.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Y염색체 분석에서도, 가장 오래된 계통이 동아프리카 지역 집단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모든 과학적 증거가 인류의 발상지로 동아프리카를 가리키고 있다.

루씨 화석.jpg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일명 ‘루시’(Lucy) 화석. 루시는 약 318만 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이자 여성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대륙으로 남아있다. 이제 ‘한 몸’이 되어 있는 이 ‘지구촌’에서 어느 한 지체가 병들었다면 몸 전체가 병든 셈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은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앞서 ‘아프리카의 뿔’ 지역, 그중에서 소말리아의 어지러운 현실을 만나보았다. 또 지리학에서 아프리카가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8가지를 제시한 것도 살펴보았다.(제20화 『아수라장 속의 평화 - ‘‘「지리 문맹」이 세계를 위태롭게 만든다”』) 그 8가지는 기후변화, 생태적 충격, 이슬람에 의한 분열, 노예무역으로 인한 인구 감소, 식민주의, 냉전, 세계화, 리더십의 실패 등이다.(『왜 지금 지리학인가』/ 하름 데 블레이/사회평론/2015)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를 뭉뚱그려 하나로 본다.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은 같은 아시아라도 우리나라와 인도, 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얼마나 다른 지를 보면 간단하게 드러난다. 아프리카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수많은 국가와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유엔 회원국이 54개국이고, 미승인이지만 사실상 독립국인 지역이 2곳이다. 민족 집단은 학자에 따라 최소 1,500개에서 3,000개 이상으로 추산되며 사용 언어도 약 2,000개를 헤아린다. 지구에서 가장 다양성이 풍부한 대륙인 것이다.


아프리카는 우선 사하라사막을 기준으로 그 이북과 이남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사하라 이북은 아랍·이슬람권에 속하는 북아프리카이고, 이남은 ‘흑아프리카 복합권’이다. 그래서 보통 아프리카라고 할 때는 사하라 이남을 대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글 역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다.

사하라 이남은 다시 동, 서, 중앙, 남 아프리카 등 4개 지역으로 나뉜다. 이 분류와는 별도로 사하라사막과 사바나가 만나는 건조한 초원지대로 세네갈, 모리타니, 말리, 니제르, 차드, 수단 등은 ‘사헬’ 지역이라고 한다.

서아프리카는 수단과 차드를 제외한 사헬 지역과 나이지리아, 가나,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등이 있는 열대우림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중앙아프리카는 콩고민주공화국(DRC), 카메룬, 차드 남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가봉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가 열대우림 지역이다. 동아프리카는 바로 인류의 발상지가 있는 곳으로 스와힐리 해안과 내륙 고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남아프리카는 특이하게 백인 정착 식민주의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로디지아 등이 중심이 된 지역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 잠비아 등을 포함한다.

아프리카 지역 구분.jpg


아프리카 3부작


문학 작품을 통해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에 전 세계적으로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필독서, 또는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 문학의 대표작이자 ‘고전’으로 꼽히는 치누아 아체베의 장편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이다.


치누아 아체베 - 현대 아프리카 문학의 아버지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

치누아 아체베(1930~2013)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로 ‘현대 아프리카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이렇게 불리는 것은 그의 작품이 ‘아프리카인이 쓴 아프리카 이야기’로서 최초로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영어로 작품활동을 한 데 힘입은 바 크다.

치누아 아체베는 나이지리아 동부 이보족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이지리아의 제1세대 기독교 가문이라 할 수 있고, 부친은 목사였다. 이바단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방송국 프로듀서로 일했다. 1958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어 『더 이상 평안은 없다』(1960), 『신의 화살』(1964) 등을 발표했다. 이 세 작품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나이지리아의 토착 신앙과 문화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 나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쓰러지고 부대끼고 방황하면서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힘겨운 삶을 그려 냄으로써 ‘아프리카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는 비아프라전쟁에서 ‘비아프라 공화국’을 지지, 외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공보처 장관을 역임했다. 비아프라전쟁은 1967년 7월부터 1970년 1월까지 나이지리아 동남부의 이보족이 '비아프라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을 선언하며 벌어진 내전이다. 전쟁은 나이지리아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고, 비아프라 독립은 물거품이 되었다.(정부군은 북부 하우사와 동서부 요루바 족의 연합 세력) 이때 정부군은 철저한 봉쇄작전으로 극심한 기근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견디다 못한 비아프라 측이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참혹한 기근과 그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국내에서도 ‘비아프라’란 말은 ‘기근’, ‘굶주림’, ‘피골이 상접한’ 등의 말과 동의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비아프라 전쟁을 소재로 한 나이지리아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장편 소설도 있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예/민음사/2010(절판))

전쟁 후에는 미국과 나이지리아에서 영문학 교수를 지냈고, 이보 시선집을 출판하는 등 이보족 문예 발전을 위해 힘썼다. 1987년 마지막 장편 소설 『사바나의 개미 언덕』을 발표, 신생 아프리카 독립국의 무질서와 혼란, 그리고 그 속에서의 지식인의 역할과 고뇌를 한 가상국가의 알레고리로 표현해 냈다. 그가 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 20여 년간 단편과 에세이, 시 등만 쓰면서 침묵했던 것은 비아프라전쟁의 상처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치누아 아체베는 2007년 뒤늦게 맨부커국제상을 받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민음사/2008


거대한 역사의 조류에 맨몸으로 맞서 산산이 부서지는 한 사내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끝내 무너졌지만, 가장 엄혹한 처벌 방식으로 스스로를 응징함으로써 적어도 패배하지는 않았으며 정체성도 잃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영웅서사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는 19세기 말엽, 무대는 이보족의 한 부족 공동체인 ‘우무오피아’다. 공동체는 전통 관습과 토착신앙의 든든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삶은 그렇게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로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이런저런 갈등과 크고 작은 사건은 끊이지 않지만 그런 것은 사람 사는 곳이면 으레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멀리서 한걸음한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주민들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누군가’가 주권을 가져가고, 알지도 못하는 법으로 재판을 하며, 생소한 종교가 들어와 새로운 ‘진리’를 설파한다. 어떤 사람은 적응하고, 어떤 사람은 저항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다.’


중심인물은 나이지리아판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할 만한 인물 오콩코다. 그는 ‘이보족 전통문화의 총아’이다. 전통 씨름 챔피언으로 ‘우무오피아 아홉 마을과 그 너머까지’ 명성을 떨쳤고, 전쟁에서 ‘적의 머리를 따온 첫 전사’였다. 부지런히 일해 곳간은 가득 차고, 아내도 셋이나 얻었다. 더욱이 그것은 부친의 덕을 전혀 입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일구어 낸 것이다. ‘칭호’를 이미 둘이나 받았고, 탈을 쓰고 조상의 혼령을 받아 중요한 재판을 하는 아홉 사람 중 하나로 마을에서 지위도 높다. 공동체와 전통의 관습에 충실하게 모든 것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힘 있는’ 사람으로 그 사회의 중요한 기둥인 것이다.

그가 이룩한 모든 것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우노카는, 오콩코의 시각에서는, ‘실패자’다. 일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으며 피리 부는 것만 좋아하고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지는 사람이다. 그는 아무런 ‘칭호’도 없고,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오콩코에게 그것은 남자답지 못하고 나약한 것으로 보여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달리 강인한 ‘남자’가 되었고, 재산을 모았다.

오콩코는 전통적 이보족, 나아가서는 나이지리아, 더 크게는 아프리카적 남성이다. 그 공동체, 사회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일구어 낸 것, 지켜내고 있는 모든 것과 추구하는 미래는 자신들의 시야에만 갇힌 것이다. 외부의 변화에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은 취약한 것이다. 오콩코는 위대한 전사이지만, 혼자서는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막아낼 수 없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지도 못했다.


그는 두 소년을 죽인다. 둘 다 고의가 아닌 것이지만, 그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을 바꿔놓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첫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이웃 마을에서 볼모로 잡혀온 소년 이케메푸나를 죽인 일이다. 이웃 마을에서 오콩코 마을의 주민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의 해결책으로 소녀와 소년 한 명씩이 인질로 오게 된다. 소녀는 마을 한 남자의 아내로 주어지고, 소년 이케메푸나는 오콩코가 맡게 된다. 이케메푸나는 오콩코를 아버지처럼 따르게 되고, 오콩코의 장남인 은워예는 그를 형처럼 의지한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후 마을에서 이케메푸나를 죽이기로 결정이 되었다. 오콩코는 자신이 직접 이 결정을 집행한다. 이 사건은 훗날 그의 아들 은워예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아버지를 떠나는 한 원인이 된다. 이케메푸나를 죽임으로써 오콩코는 자신의 미래를 죽인 셈이다.


둘째는 오발사고다. 마을 원로의 장례식에서 추모의 춤을 추고, 총을 쏘는 과정에서 오콩코의 총이 잘못 발사되어 고인의 아들을 죽게 한 것이다. 이 사고로 오콩코 가족은 7년간 마을을 떠나 유배된다. 이런 처벌은 참으로 영리한 관습이다. 우발적인 사고이므로 강하게 처벌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가해자 가족을 일시 추방하고, 그 집을 파괴함으로써 처벌과 보상효과를 함께 얻는 것이다.(집은 흙 집이어서 짓고 부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오콩코는 7년간 어머니의 고향 마을에 살다 돌아옴으로써 그동안 쌓아 올렸던 여러 가지 지위와 명성, 그리고 영향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그 사이 마을에는 기독교 교회와 식민지 정부의 법규가 들어온다. 오콩코는 여기에 맞서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잃었다.


오콩코가 외가 마을에서 유배 중인 때 선교사가 들어왔다. 선교사가 기독교에 대하여 설파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오콩코는 그를 간단하게 미친 사람으로 치부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은워예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삼위일체의 이상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종교의 시, 뼛속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둠과 공포 속에 앉아 있는 형제들에 대한 찬송은 이 젊은 영혼을 괴롭혀 온 막연히 계속되는 의문에 답하는 것 같았다.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쌍둥이와 죽은 이케메푸나에 대한 문제였다. 찬송이 그의 목마른 영혼에 쏟아지자 마음 깊숙이 어떤 위안을 느꼈다.(p.174)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쌍둥이’란 버려져 죽는 아이들을 말한다. 이들 부족은 쌍둥이를 불길하게 여겨, 낳으면 키우지 않고 숲에 내다 버렸다. 은워예는 그런 관습과 자신이 형처럼 따르던 이케메푸나를 아버지가 죽인 것에 대하여 깊은 분노와 회의를 품고 있었고, 선교사들의 설교는 이런 그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이다.


선교사들이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아마도 전통신앙과 주술에 의존하던 아프리카의 다른 여러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선교사들은 처음에는 장터(마을마다 큰 공터가 있어서 축제나 장터로 쓰인다)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했다. 선교사들이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자 마을 지도자들은 의논 끝에 ‘악령의 숲’ 일부를 내주었다. ‘악령의 숲’이란 한센병이나 마마와 같은 ‘사악한’ 질병으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주술사가 죽으면 그의 영물(靈物)을 버리는 장소다. 즉 ‘어둠과 사악한 힘과 기가 살아있는 곳’이고 결코 범접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마을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머물면 나흘 안으로 모두 죽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선교사들은 악령의 숲 속 주어진 장소를 정리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나흘이 지나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영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지게 되었고, 실제 시간이 흐르면서 개종자를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의탁하는 사람들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오콩코의 장남 은워예와 같은 사례도 많고, 또 초기 개종자들은, 당연히 짐작할 수 있듯이,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오수’다. ‘오수’란 ‘신에게 바쳐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어떤 식으로든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방랑자’다. 오수는 대물림된다. 일종의 ‘불가촉천민’인 셈이다.


오콩코가 귀향한 이후 비극이 시작된다. 이 마을에도 교회가 들어섰다. 교회를 맡고 있는 브라운 씨는 현지 관습을 존중하는 온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브라운 씨가 떠나고 후임으로 원칙주의자인 스미스 신부(성공회)가 오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이에 따라 개종자 중에서도 광신적인 사람이 힘을 얻게 된다.


사건은 토속신인 대지의 신에게 경배하는 의식에서 벌어진다. 의식을 주도하는 사람은 아홉 명의 ‘에구구’다. ‘에구구’란 탈을 쓰고 조상의 혼령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주요 사안에 대하여 재판도 하고 결정도 내린다. 그것은 조상의 혼령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신성하다. 그런데 이 의식 도중에 마을의 개종자 중 한 사람인 광신자가 에구구의 탈을 벗겨버린다. 이것은 말하자면 ‘신성모독’ 행위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응징에 나서고, 교회를 파괴해 버린다.

물론 오콩코는 가장 강경한 입장이다. 교회 측은 당연히 지방 식민지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마을 지도급 인사 6명이 치안판사의 호출을 받고 출두한다. 거기서 그들은 기습적으로 무장해제돼 체포돼 구타당하고 감금된다. 결국 벌금을 물고 풀려나, 오콩코는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나 마을 회의에서 전쟁 쪽으로 의견이 모이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렇게 집회가 열리는 중, 다시 치안판사의 전령들이 와서 집회 중단을 요구하자 오콩코는 도끼로 전령의 우두머리를 살해하고 만다.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전령들은 도망가고, 얼마 후 치안판사가 무장 병력을 대동하고 오콩코를 잡으러 왔다. 오콩코의 친구가 치안판사에게 “당신의 부하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그들을 인도한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오콩코의 집 뒤 숲에 이르자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는 나무에 목을 맨 채 죽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란 말의 의미는 이렇다. 이들의 관습에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대지의 여신을 거역하는 큰 죄악으로 동족은 그 시신을 만지거나 묻어줄 수 없고 오직 이방인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오콩코는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적에게 사로잡히거나 죽는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주어진 공동체를 지키지 못한 자신의 ‘죄’를 스스로 벌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친구는 말한다.


“저 남자는 우무오피아의 가장 훌륭한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너희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이젠 개처럼 땅에 묻힐 것이야…”

그의 말처럼 오콩코는 부족의 마지막 전사였다. 그러나 그는 밀려들어오는 시대의 조류를 막을 수 없었다. 장남이 아버지를 버리고 기독교에 귀의한 것은 바로 이런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선교사들 모두가 현지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는 브라운 씨와 같고, 오콩코가 자신의 맏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즉 전통과 관습을 무작정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면, 어쩌면 기독교와 아프리카 전통의 가치가 충돌하지 않고 접점을 찾아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콩코의 좌절과 죽음은 바로 이런 실패를 상징하는 비극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예이츠의 ‘재림’이란 시 중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헤쳐진다.


‘네그리튀드’ 아닌, 내부로부터의 성찰


치누아 아체베의 사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는 당연히 아프리카인 당사자의 ‘내부로부터의 성찰’이다. 둘째로는 기독교와 전통적 가치관을 조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치누아 아체베는 이른바 ‘네그리튀드 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네그리튀드’란 프랑스 식민지권 흑인 지식인들이 주도한 흑인 정체성 재확립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에메 세제르,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레오낭 담마스 등이 주축이 되어 흑인 정체성의 긍정, 백인 중심 문명 비판, 아프리카의 감성·정서·공동체 중심의 문화적 가치 강조 등을 주창했다. 이것이 문학으로는 시적, 낭만적, 상징적으로 흑인 정체성을 찬미하고 흑인 특유의 감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형태로 구현되었다.

치누아 아체베는 네그리튀드를 “서구의 시선에 대한 반사적 대응”이라며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서구적 인식’을 뒤집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아프리카의 실재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흑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이유를 찾기보다, 아프리카의 삶을 사실대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썼다. 그는 “아프리카를 서구가 창조한 어둠의 대륙”으로도, “낭만적 신화로 미화된 유토피아”로도 보지 않았다. 다만 “아프리카인의 시점에서 진짜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아프리카를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내부로부터의 성찰’이다.


치누아 아체베는 앞서 지적한 대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영국식 교육을 받았다. 즉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가졌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등장인물을 예로 든다면, 그는 브라운 씨와 오콩코를 ‘합쳐 놓은’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는 교회가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거부하지도 않고, 전통 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이로써 그는 현실적, 구체적, 복합적인 아프리카 사회의 자화상을 그려낼 수 있었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아프리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신의 화살』/치누아 아체베/민음사/2011


『신의 화살』은 발표 순으로는 ‘아프리카 3부작’ 중 3번째 작품이지만, 작중 내용의 시대 순으로는 2번째에 해당하기에 먼저 소개한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토착 사회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다. 이 작품은 그로부터 한 세대 정도가 흐른, 대략 1920년대쯤으로 다수 주민은 여전히 토착 신앙에 머물러 있고, 기독교 교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양자가 공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에제울루’, 즉 울루 신(神)의 대사제다. 그는 ‘우무아로 여섯 마을’의 최고위 사제로서 공동체 삶의 전반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작가는 바로 이 에제울루가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는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끝내 몰락해 버리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에제울루는 아집에 갇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했다. 밀려들어오는 백인의 ‘가치’, 즉 행정과 교회에 맞서 방향감각을 잃고 떠밀려 전통의 ‘가치’를 하나하나 잃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사라져 가는 전통의 ‘보석’을 하나하나 되씹어보는 만가(輓歌)와도 같은 것이다.


에제울루는 태생적 약점이 있다. 여섯 마을이 ‘울루’를 하나의 최고신으로 같이 섬기기로 함으로써 연합체 우무아로가 탄생했다. 그리고 강자의 전횡을 막고 연합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대사제, 즉 에제울루는 여섯 마을 중 가장 약한 쪽에서 맡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온 에제울루는 ‘백인’의 세력이 밀고 들어오면서 애매한 위치가 되어 버린다. 이웃이 옥페리와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전쟁을 벌였으나, 백인들의 현지 식민 행정 당국이 개입해 전쟁을 중지시켜 버린 것이다. 백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무아로의 총기를 모조리 회수한 다음 폐기처분 해버렸고, 문제의 땅도 옥페리 소유로 판결해 버린 것이다. 이 판결 과정에서 우무아로의 원로들은 모두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거짓 증언’을 했지만, 유일하게 에제울루 만이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제울루는 홀로 공동체에 맞서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우무아로의 위상은 추락했고, 에제울루는 백인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에 에제울루는 백인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 중 하나인 오두체를 교회로 보낸다. 자신의 ‘눈’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두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고, 심지어 선교사는 그에게 베드로가 되고,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선언한다.(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한 말과 같다)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첫째는 비단뱀 사건이다. 우무아로에서는 비단뱀을 신성시해서 잡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오두체가 이를 시험하려는 유혹이 생겨 비단뱀을 잡아 상자에 넣어 숨겨둔다. 이것이 발각되어 온 마을이 발칵 뒤집어진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사제의 아들이 금기를 깨트려 마을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에제울루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백인 행정관 윈터바텀이 에제울루를 대족장으로 임명하기로 한 상태에서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 사건이다. 영국은 식민지에 일종의 제한적 자치를 허용하는, 즉 현지의 권위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통치했다. 왕이나 족장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해당 지역을 관리하도록 하고, 식민지 당국은 그 통치자들을 관리 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마다 대족장을 임명하니, 어떤 족장은 왕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실제 대부분은 족장으로 임명되기를 원하고, 그 자리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윈터바텀이 에제울루를 대족장으로 내정한 것은 그가 앞서 토지 분쟁 당시 유일하게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윈터바텀은 전령을 보내 에제울루를 지역 행정 중심지로 출두하라는 통지서를 보낸다. 에제울루는 전령에게 에제울루는 마을을 떠날 수 없다며 돌려보내고, 마을 원로들의 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듣는다. 늘 에제울루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과 장황한 연설로 논쟁을 벌이지만 뾰족한 결론은 없다. 다음날 에제울루는 행정 중심지를 향해 출발한다. 반면 출두 거절 통보를 받은 행정 당국은 에제울루를 연행해 오라며 경찰을 보낸다. 그동안 행정관 윈터바텀은 쓰러져 사경을 헤맨다.

에제울루는 이유도 모른 채 감옥에 갇혔지만, 이 사건은 현지인들에게는 토착 신의 권능이 ‘백인들의 신’을 압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윈터바텀의 대리인에게서 대족장 취임 권유를 받은 에제울루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자신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대사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위상은 한때 크게 높아진다.


에제울루는 절기를 보고 수확기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다. 주식인 얌을 수확해야 하지만, 대족장 직을 거절하고 마을로 돌아온 에제울루는 ‘햇얌 축제’를 선포하지 않는다. 이 축제를 치러야 마을 사람들은 얌을 수확할 수 있다. 이들의 달력은 1주가 4일이다. 에제울루는 얌을 수확하면 13개를 따로 보관해 두고 매번 초승달이 뜰 때마다 하나씩 먹는다. 즉 초승달이 13번을 뜨면 햇얌 축제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에는 이미 얌을 수확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에제울루는 13개의 얌 중 2개 또는 3개가 남았다는 이유로 ‘햇얌 축제’를 선포하지 않는다. 자신은 신의 뜻을 받들지 사람의 요구에 따라 어떤 일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에서는 ‘햇얌 축제’ 대신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주민들을 설득한다. 울루 신이 아닌 ‘백인의 신’에게 얌을 바치고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에제울루가 햇얌 축제를 선포하지 않음에 따라 점점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권유 쪽으로 기울고, 결국 추수감사절은 성황을 이룬다. 그동안 마을 원로의 죽음에 따라 장례식을 앞두고 조상의 혼령을 받아 탈을 쓰고 온 마을을 달리는 절차를 맡은 에제울루가 총애하는 아들 오비카는 달음질을 마치고 쓰러져 돌연사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사경을 헤매던 윈터바텀도 죽지 않고, 영국으로 가서 건강을 회복해 돌아온다. 울루 신이 ‘백인의 신’에게 진 셈이다.


이렇게 에제울루는 자신의 공동체를 ‘백인의 신’에게 빼앗기고, 아들 하나는 ‘백인의 신’에게, 또 하나는 조상의 혼령에게 빼앗긴 채 몰락하고 만다. 에제울루는 공동체에 ‘신의 화살’을 겨누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이것은 전통 사회가 어떻게 그 가치와 질서를 잃고 새로운 규범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에제울루는 왜 고집스럽게 ‘햇얌 축제’를 선포하지 않았을까? 그는 인간의 삶, 인간의 가치를 중히 여기지 않고, 전통 규범에만 집착했다. 열세 번의 초승달은 농사를 위한 절기로 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법칙이 어긋났다. 에제울루는 현실을 보지 않고 남은 ‘얌’만 바라보았다. 아들을 교회로 보내 백인에 대해 배우라고 한 것은 꽤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본 것을 자신의 지식, 또는 지혜로 활용하지 않았다. 치누아 아체베는 이 모든 과정을 단지 침탈과 수탈로만 바라보지 않고, 내부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성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런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뜻 외에도 문화인류학적 저술로도 큰 가치를 가진다. 치누아 아체베는 모든 작품에서 이보 문화의 요소들을 최대한 부각한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첫머리부터 이보 족의 세련된 대화를 그대로 소개한다. 그들은 속담과 경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수사법을 동원한다. 상대방을 비난할 때도 최대한 예를 갖추고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선조의 지혜와 신화를 가르치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정 사안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이 장터에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수준 높은 직접 민주주의를 보여준다. 연설 수준도 높다. 축제나 다른 여러 가지 행사는 각각의 순서가 모두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를 이어 보면 그 축제 또는 행사의 일관된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보면 이들의 전통 신앙이나 주술은 애니미즘이나 미신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작품 『신의 화살』은 전통 의례의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마치 문화인류학의 ‘참여 관찰’ 보고서처럼 결혼, 장례, 각종 축제, 제의 등 이보 족 사람들이 삶에서 떼 놓을 수 없는 행사의 세세한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로써 그들이 결혼을, 죽음을, 또는 다른 삶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지 잘 알 수 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치누아 아체베/민음사/2009


『신의 화살』이 전통 가치의 고통스러운 붕괴 과정이자 이보 족의 삶에 대한 문화인류학 보고서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식민지 엘리트의 비뚤어진 자의식과 타락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이 모습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 엘리트들이 독립 후 이해할 수 없는 타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더십의 실패를 초래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은 『신의 화살』로부터 다시 한 세대 정도 후의 이야기다. 즉 대략 1950년대 말경이므로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하기 직전이다. 그리고 중심인물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주인공 오콩코의 손자인 오비 오콩코다. 이미 기독교와 백인 식민 정부는 뿌리를 내린 상태이고, 현지 주민들도 돈을 벌기 위해 대거 도시로 이주하거나, 똑똑하거나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들은 공부를 위해 영국 유학까지 가는 시대다. 현지인 엘리트들이 식민지 정부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고 영국인 관리들과 함께 근무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다.


오비는 오콩코의 장남으로 일찍이 아버지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삭 오콩코, 즉 은워예의 아들이다. 이삭 오콩코는 평생을 교리문답 교사로 봉사한 끝에 은퇴하여 ‘쥐꼬리만 한’ 연금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 한편 오콩코의 고향인 우무오피아 사람들도 대거 당시 수도인 라고스로 이주해 ‘우무오피아 진보연맹’ 라고스 지부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부족 연맹체가 아니라 나이지리아라는 새로운 ‘국가’ 체제에 녹아들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소설은 오비가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데서 시작해서 그가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식민지 정부의 고위직에 올랐다가 체포되어 재판정에 서게 된 과정을 되짚어 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책의 제목은 T.S. 엘리엇의 ‘동방 박사들의 여행’ 중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인 이 왕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에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저희들의 신을 부여잡는
이방인들의 낡은 율법하에서는,
나는 또 한 번 달갑게 죽어야 하리라.


오비 오콩코는 뛰어난 학생으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낸 끝에 ‘우무오피아 진보연맹’이 지원하는 영국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연맹이 지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부족에서도 고위직을 배출해 이익을 대변케 하려는 목적이다. 이들은 일찍이 이른바 ‘코트마’의 횡포를 경험한 바 있다. 코트마란 법정을 뜻하는 영어 ‘코트’(Court)와 ‘메신저’(Messenger)의 나이지리아식 합성어로 법원 전령을 뜻한다. 이들은 식민지 권력을 등에 업고 마치 자신들이 권력자인양 행세했다. 특히 그들이 다른 부족 출신이라는 점에서 우무오피아 사람들은 굴욕감과 함께 맹렬한 적개심을 느꼈다. 그러므로 연맹은 오비와 같은 수재가 영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어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해 주기를 바란 것이다. 연맹이 제공하는 학비는 무료 지원이 아니라 학업을 마치고 취업하면 연차적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 안 되는 품삯으로 살아가는 회원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에서 나오는 것이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비극은 오비의 다소 ‘몽상적인’ 사고방식에서부터 싹튼다. 오비는 연맹의 기대를 저버리고 법학이 아닌 영문학을 전공한다. 그리고 역시 이보 족으로 유학 중인 한 여성을 보고 반한다. 클라라라는 이 여성은 간호학을 전공했고, 처음 모임에서 만났을 때는 전혀 오비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는 배편에서 둘은 다시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클라라가 ‘오수’의 딸이라는 점이었다. ‘오수’는, 앞서 설명했듯이, 일반인과 어떤 형태로든 어울릴 수 없는 이른바 ‘신에게 바쳐진 사람’으로 대물림되는 일종의 ‘불가촉천민’이다. 접촉도 금기인데 하물며 결혼은 말할 것도 없다. 클라라는 자신이 오수라는 사실을 밝히며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오비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것은 오비 개인과 그의 가족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무오피아 진보연맹’ 측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우려를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 오비가 클라라와 부부가 되면 연맹은 이들과 상대할 수 없고, 따라서 애써 키운 인재는 허공에 날아가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오비는 영문학을 전공한 덕분에 고위직을 얻게 된다. 교육부에 지원한 오비는 영문학에 관심이 많은 면접관을 만났고, 그에게 자신의 영문학 지식을 과시함으로써 호감을 얻어낸 것이다. 그 자리도 변호사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는 자리였다. 왜냐하면 당시 고속 출세의 지름길은 영국에서 학위를 받는 것이고, 유학을 위해서는 장학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고위직은 그 열쇠를 손에 쥐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 오비가 앉게 된 것이다.


오비는 여러모로 영리하지 못했다. 현실감각이 모자랐던 것이다. ‘우무오피아 진보연맹’이 학자금 상환일정을 협의하면서 취업 후 4개월 거치기간을 둔다고 했지만, 오비는 연맹이 클라라와의 관계를 문제삼은 데 대한 반발로 거치기간 없이 바로 매월 20파운드씩 갚겠다고 오기를 부렸다. 총상환금은 800파운드. 급여가 50파운드로 서민의 10배에 달하지만, 부담이 될 수 있는 액수다. 게다가 대도시에 정착하려면 돈은 또 얼마나 들겠는가? 이런 점을 감안해서 연맹 측이 거치기간을 뒀지만, 그것을 걷어차버린 것이다.


오비의 ‘철없는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아파트에 입주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새 자동차를 구매한 것이다. 집에 하인도 부리고, 운전수도 고용하는 등 씀씀이가 커졌다. 게다가 고향의 부모님에게도 생활비를 송금해야 하고, 동생 학비도 부담한다. 처음부터 빠듯한 살림이 되어버린 것이다.


클라라와의 결혼 문제는 결국 발목을 잡는다. 오비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기독교 사상을 무기로 부모를 만나 설득하려 했지만, 일단 실패한다. 특히 어머니는 오수와 결혼을 하려면 자신이 죽은 다음에 하고, 그전에 하면 자신이 자살해 버리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차세 보험료 소득세 등등 미처 생각지 못했던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오비는 빚을 내기에 이르렀다. 클라라와도 결국은 헤어지기로 했지만, 그녀는 임신 중이다. 불법 임신 중절 비용으로 또 목돈이 들어갔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 비용도 컸다. 아들이 고위직에 있으므로 장례도 거창하게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장례에 참석하지 않는다.

오비가 ‘금의환향’했을 때 사람들은 외세에 맞서 혼자 싸운 ‘오콩코의 손자’라며 할아버지까지 칭송했다. 그러나 어머니 장례식에 불참하자 사람들은 개종하여 아버지를 버린 ‘그 아비의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해 댄다. 세상인심이란 그런 것이다. 심지어 우무오피아 진보연맹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비 오콩코는 나이지리아를 사랑하여 나라의 운명을 위한 절절한 시까지 지을 정도였고, 뇌물 등 부패가 사회를 좀먹고 있다면 개탄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 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내몰리면서 어느 날 찾아온 사람이 뇌물로 돈봉투를 놓고 간 것을 묵인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다.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했던 뇌물은 한번 길이 뚫리자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장학금을 받으려는 여학생의 몸을 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 날 부패 함정 수사에 걸려들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독립 후 첫 지도자와 엘리트들은 모두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또한 서구 각국 유명 대학에서 공부한 최상위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손에 넣자 변하기 시작했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독재로 치달았다. 그 탐욕은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 부분 만은 아프리카 전체에 대체로 공통적이었다. 바로 그런 리더십의 실패가 오늘날 아프리카를 낙후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사실 그동안 아프리카의 어려움은 식민지배가 할퀸 상처 때문인 것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몇 세대가 지난 지금, 같은 이유를 들이대기는 쉽지 않다. 그 상처는 분명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 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바로 그런 뼈아픈 반성의 단초가 여기 이 작품에 제시되어 있다.


오비 오콩코는 나이지리아를 사랑하는 뛰어난 엘리트다. 그러나 아직 숱한 인습이 그를 옥죄고 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성장했지만, 신앙은 현대성에 의해 훼손되고, 전통문화와도 단절할 수 없다. 부모의 신앙과 현대성,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낡은 인습에 얽매인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정의할 수 없다. 그의 행동은 한편으로는 고위직 엘리트의 태도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무서움을 모르는 철부지와 같다. 그의 몸에 밴 것은 탄탄하게 다져진 문화가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겉멋일 뿐이다. 선조들이 야자술을 마신데 비해 이 젊은이들은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선조들이 탈을 쓰고 혼령의 춤을 추었다면, 이들은 멋진 밴드의 음악에 맞춰 세련된 춤을 춘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돌아온 왕국에 더 이상 평안은 없는 것이다.




<다른 아프리카 이야기>


아프리카를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치누아 아체베의 ‘아프리카 3부작’을 보면서 마치 그것이 아프리카 전체의 것인 양 이야기했다. 그것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민주의, 기후변화, 생태적 급변, 노예무역, 세계화 등 아프리카에 재앙을 가져다준 8가지 요인은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를 볼 때는 그 다양성을 염두에 두면서 전체를 조망하면 된다. 치누아 아체베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서사를 풀어놓았지만, 그 속에서 다양성을 잊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아프리카 문학 작품이 국내에 의외로 많이 소개되어 있다. 소설로서 재미있게 읽으면서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 몇 가지를 간단히 소개한다.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타예브 살리흐/아시아/2014

수단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화자는 수단의 시골 구석에서 영시를 줄줄 외우는 기인을 만난다. 알고 보니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수재로 말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영국에서 많은 부인들을 농락한 ‘파렴치범’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범죄적 행위에는 식민주의와 저항의 ‘철학’이 숨어있었다.


『검은 새의 노래』/루이스 응꼬시/창비/2009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의 아파트헤이트 관련 장편소설.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처럼 저항의 서사가 섹슈얼리티로 표현되는 독특한 소재다. 사형수인 주인공의 사연을 통해 남아공 원주민의 정체성과 인간 실존의 문제, 위선 등을 다룬다.


『죽음 뒤의 삶』/소니 라부 탄시/2020

콩고 작가의 장편소설. 아프리카식의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할 만한 우화 소설. 기상천외한 독재자의 대를 잇는 만행으로 아프리카형 독재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열대적”이란 말로 정의되는 ‘식인(食人) 체제’의 전말로 그로테스크하지만 왜 이런 황당한 우화가 더 사실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아마두 쿠루마/문학과지성사/2022

『죽음 뒤의 삶』과 짝을 이루는 듯한 우화. 반어와 풍자가 난무한다. 인간과 들짐승이 얽히고, 역사적 연대기와 설화가 뒤섞이는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가상의 국가 골프 공화국의 희대의 독재자 탄생 과정을 그린다. 한바탕 ‘해원(解怨) 굿’을 보는 듯하다. 작가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이다.


『그후의 삶』/압둘라자크 구르나/문학동네/2022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출신 작가의 식민주의 경험. 독일 식민지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기록에 남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상흔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만, 전쟁과 식민주의의 상처는 생각보다 크다.


『프랑세파의 향기』/프랜시스 니암조/글누림/2020

카메룬 작가의 장편소설로 아프리카에 파고든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의 세태와 탐욕, 그리고 아프리카적 주술이 어우러진 가정의 비극을 그린다.


『십자가 위의 악마』/응구기 와 티옹오/창비/2016

작가는 케냐 출신으로 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꼽힌다. 이 소설은 독립 후 케냐의 절망적인 상황을 구비문학의 전통을 빌어 표현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울지 마 아이야』, 『피의 꽃잎들』, 『한 톨의 밀알』 등 이 작가의 작품은 모두 일독을 권할 만하다.




<천년 아닌 만년 단위의 역사>


우리는 보통 역사를 말할 때 백 년, 길어야 천 년 단위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역사는 그 단위부터 다르다. 만 년 단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역사를 논할 때 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대륙이며, 따라서 아프리카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지구의 역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통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엿보았다면, 역사를 정리함으로써 그 배경을 더 깊이 안다면 그 이해의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내가 읽고 도움을 받은 책도 함께 소개한다.


『처음 읽은 아프리카의 역사』/루츠 판 다이크/웅진지식하우스/2005

아프리카 대륙의 생성에서부터 인류의 출현과 문명의 발달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될 때까지 긴 아프리카의 역사를 마치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듯 서술한 아프리카 역사 입문서다. 책 말미에 보통사람이 쓴 사연도 있고, 아프리카 작가의 시와 에세이도 한 편씩 실려있고, 특히 사진 대신에 가나 출신 화가가 그린 삽화가 들어있어 더욱 정감이 간다.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리처드 J. 리드/삼천리/2013

본문 내용만 700쪽에 육박하는 본격 역사서. 저자는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스쿨 역사학과 교수로 아프리카 현대사와 정치를 전공한 학자다. 본론이 19세기부터 시작되므로 최근세사와 현대사를 꽤 깊이 접할 수 있다. 이 한권이면 반(半) 아프리카 전문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브 아프리카』/월레 소잉카/삼천리/2013

작가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1986년 아프리카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현실과 꿈을 설파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이 보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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