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찰코아틀 – 추방된 신, 단절의 땅

혼돈의 라틴 아메리카, '경이로운 현실'

by 제이슨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2000

『이 세상의 왕국』/알레호 카르펜티에르/문학동네/2019

『연애소설 읽는 노인』/루이스 세풀베다/열린책들/2009

『족장의 가을』/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2021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아마두 쿠루마/문학과지성사/2022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카를로스 푸엔테스/까치/2015(초판 1997)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메스티사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보는 쿠바는 멋지다. 카리브해의 포말이 부서지는 방파제, 낡은 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길,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반세기도 더 된 클래식 카, 그리고 잊혀진 음악가들… 미국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가 아바나에서 활동하던 노장 뮤지션들을 발굴한다. 꼼빠이 세군도, 이브라힘 페레르, 오마라 포르투온도, 루벤 곤잘레스… 이들은 쿠바 혁명 후 뿔뿔이 흩어져 음악을 잃어버리고 긴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다시 뭉친 이들은 그 오랜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멋진, 감동적인 선율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1999년 작품으로 2001년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나는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고, 2015년 재개봉되었을 때 관람했다.(2023년 작품으로 이듬해 국내에도 소개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도 빔 벤더스 감독 작품이다!)

그 음악은 독특했다. 쿠바 전통 음악으로 스페인 풍의 멜로디와 아프리카적인 리듬이 뒤섞인 ‘혼종’ 음악 ‘손 쿠바노(Son Cubano)’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갈래는 미국의 재즈와 만나 새로운 음악으로 탄생한 아프로-쿠반 재즈로 이것은 라틴 재즈로 진화한다. 그러므로 이들 음악의 공통의 뿌리는 ‘혼종성’이며, 그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름하여 ‘메스티사헤(Mestizaje)’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멋지지만 그 이면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메스티사헤 맞은편에는 ‘우연하게도’ ‘네그리튀드(Negritude)’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 서해안과 남미 브라질의 동해안은 음과 양의 굴곡을 가지고 있다. 퍼즐처럼 딱 들어맞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대륙은 원래 하나였기 때문이다. 1억 4천만 년 전 둘이 아닌 하나의 대륙이 있었다. 초대륙 곤드와나(Gondwana). 지구 맨틀의 열이 분출하면서 판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서양이 대륙을 둘로 찢어 놓았다. 이것이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에 따른 설명이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해안선의 굴곡 외에도 많다. 양쪽에서 동일한 화석이 발굴되고 있고, 동일한 지질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도 동일한 방향, 즉 남미는 서쪽으로 아프리카는 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페인적 멜로디와 아프리카의 리듬이 쿠바에서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1억 4천만 년 전이라면 인류 출현 전이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의 대륙에서 산 적은 없었을 터이다. 그러나 인간은 대지(大地)의 자녀다. 땅이 가진 기운과 무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대륙의 ‘재회’는,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폭력과 노예, 그리고 문명의 파괴와 강제 이식으로 이루어졌다. 아프리카는 파묻혔고, 라틴 아메리카는 지워졌다. 아프리카는 유럽인 지배자와 원주민 피지배자의 엄격한 계층 구조 속에서 고유 문명은 이식된 유럽 문명 아래 파묻혔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는 원주민들의 절멸에 가까운 희생과 아프리카인의 유입, 그리고 대량 혼혈로 고유 문명은 기억에서 지워졌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기억’의 대륙이고, 라틴 아메리카는 ‘창조’의 대륙이다. ‘창조’라는 것이, 여기서는, 아름답고 위대한 그 무엇이 아니다. 지워진 문명 속에서 ‘혼종’으로 남게 된 남미인들의 고통스러운 정체성 창조 과정이다.


‘네그리튀드’는 자아 회복이다. 식민주의에 의해 파괴된 아프리카적 자아를 되찾는 운동이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근원의 기억을 찾아내고, 그래서 파묻힌 문명을 현대적으로 되살린다.


반면 ‘메스티사헤’는 잃어버린 뿌리, 정체성의 창조다. 그 질문은 ‘우리는 이제 누구인가?’이다. 그래서 멕시코의 철학자이자 교육개혁가인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라 라사 코스미카’ (La Raza Cósmica/우주 인종)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메스티소’는 유럽인과 남미 원주민의 혼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메스티사헤’란 그 혼종성을 긍정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우주 인종’으로 정의하는 것은 곧 인종의 혼합으로 인류의 새로운 이상형이 된다는 뜻이다. 그곳에 유적과 기록은 있지만, 문명의 기억은 없다. 아프리카처럼 되살릴 수 있는 기억이 없다는 뜻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바로 그 ‘메스티사헤’의 음악이다. 그리고 그 혼종성은 삼바, 쿰비아, 아프로-쿠반 재즈, 레게 등의 리듬으로 폭발한다. ‘라 라사 코스미카’의 정신이 음악을 통해 가장 먼저 발현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


시몬 볼리바르와 체 게바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를 정의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두 사람의 이름, 시몬 볼리바르와 체 게바라다. 시몬 볼리바르는 ‘해방자’(Libertadores/리베르타도레스), 체 게바라는 영원한 ‘사령관’(Comandante/코만단테)이다. 시몬 볼리바르를 ‘석공’(石工)에 비유한다면, 체 게바라는 ‘유성’(流星)이라 할 수 있다. 시몬 볼리바르는 ‘제도’(制度)를 남겼고, 체 게바라는 ‘신화’(神話)를 남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가슴에 살아있다.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무장투쟁으로 파나마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라틴 아메리카 독립사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상징적인 인물이다.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를 해방시킨 또 한 사람의 해방자 호세 데 산 마르틴(1777~1850)이 있지만, 그 업적과 권위는 시몬 볼리바르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정식 국호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고, 볼리비아 역시 볼리바르를 기리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몬 볼리바르가 추구한 것은 미국 모델이었다. 즉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하는 ‘남미합중국’을 꿈꾸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중앙 정부와 대통령중심제의 엘리트 정치를 주창했다. 그의 엘리트주의는 당시 라틴 아메리카의 형편을 고려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사리사욕, 권력남용,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멀고, 독재와 군국주의를 반대했다고 한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 종신 대통령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도 있다. 칼 마르크스는 볼리바르를 “비겁하고 비참한 악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바르가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해방자’ 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의 라틴 아메리카 연방의 꿈은 남미가 분열될 경우, 미국 등에 의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종속될 위험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이미 ‘먼로 독트린’으로 유럽의 영향을 차단하고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패권’ 추구에 나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볼리바르의 판단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그 실패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유명한 명언이 있으니…


“불쌍한 멕시코여, 하느님은 너무 멀고, 미국은 너무 가깝구나.”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간섭 속에 자주성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을 풍자한 이 말은 19세기말 ~ 20세기 초 멕시코 독재자였던 포르피리오 디아스 전 대통령의 탄식이다. 만약 볼리바르의 꿈이 이뤄져서 ‘남미합중국’이 탄생했더라면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체 게바라(1928~1967)는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이상주의, 저항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 셔츠를 볼 수 없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학 시절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혁명가가 된다.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 혁명에 진력한다.


쿠바 혁명은 성공한다.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카스트로의 공산당 체제가 들어선다. 체 게바라는 쿠바 시민권을 얻고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 요직을 맡는다. 체 게바라가 종신 집권한 카스트로와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더라면 신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콩고와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안락의자’를 버렸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정부군에 생포, 처형된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이상주의자, 혁명적 헌신, 저항의 아이콘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사진은 세계 좌파와 반제국주의의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무장투쟁을 옹호하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로 혹독한 규율을 강제하는 게릴라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혁명에 헌신한 그의 행보는 민중의 해방자, 순교자, 사회 정의의 상징으로 ‘거리의 성자’ 도는 ‘거리의 예수’로까지 신화화되기에 충분했다.


그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이다. ‘체(Che)'는 스페인어로 '어이', '이봐', 또는 '친구', '동지'등을 뜻하는 애칭이다.


사진 외에도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하는 또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노래 ‘Hasta siempre, Comandante’다. “아스타 시엠프레”란 아주 오래 또는 영영 헤어질 때 쓰는 인사말이고 코만단테는 사령관, 즉 체 게바라를 가리킨다. 실제 노래 가사에도 그의 이름이 명시되어 나온다. 이 곡은 혁명 확산을 위하여 쿠바를 떠나는 체 게바라를 기리는 뜻에서 1965년 쿠바 작곡가 카를로스 푸에블라가 만든 노래다. 체 게바라가 죽고, 이 곡이 혁명의 찬가가 되었지만, 음악 자체는 꽤 흥겨우면서 곡도 좋아서 오늘날에도 인기가 많다.


이 노래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서두에 언급한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이 노래가 나온다는 주장이 있어서 이다. 나는 영화도 보고, OST 전곡을 수록한 CD음반도 사서 즐겨 들었지만, ‘Hasta siempre, Comandante’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 봤다. 결론은 내 기억이 맞다는 것이다. 사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Hasta siempre, Comandante’는 절대로 연결될 수 없는 조합이다. 왜냐하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뮤지션들은 혁명 후 ‘부르주아적’, ‘퇴폐적 미국풍’ 등으로 몰려 밀려나거나 탄압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십 년간 활동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노년이 되어서야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체 게바라를 기리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이것은 단지 대중음악이나 체 게바라의 이미지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낭만적인 이미지 소비가 얼마나 동떨어진 현실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것이다. 쿠바에 대한, 혁명에 대한, 이상주의에 대한 막연한 낭만적 이해가 이질적인 모든 요소가 뭉뚱그려진 엉뚱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시몬 볼리바르와 체 게바라는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를 두 개의 창(窓)이 된다. 두 눈을 다 뜨고 봐야 올바른 거리감으로 입체적인 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뿌리 없는 창세기

책을 통해서 보는 라틴 아메리카는 이처럼 혼란스럽다.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북미와 중남미는 왜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가? 그 답은 북미의 경우, 원주민을 배제한 정착 식민주의, 즉 식민지배 제국의 사람들이 이주, 정착해서 완전히 다른 나라를 세웠고, 중남미는 반대로 유럽인, 원주민, 흑인 노예가 섞이면서 모든 것을 식민지배 제국처럼 바꾸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갈등이 적고, 부작용이 적은 체제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명확하다. 즉 북미는 ‘균질한’ 사회와 유럽식 국가가 만들어졌고, 중남미는 원주민·유럽인·흑인이 혼합된 피라미드 사회가 되면서 구조적 갈등과 불평등이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종’이라는 말은 이런 사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몬 볼리바르의 ‘남미합중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것은 좀 과격한 표현이 되겠지만,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가상의 한 공간에 한 가문의 역사로 축약해서 설파한 소설이 있다. 그것은 ‘뿌리 없는 창세기’라 할 만하다.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2000


가상의 공간 ‘마콘도’와 그 ‘설립자’ 격인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 흥망성쇠의 역사를 기록한 장편 소설이다. ‘흥망성쇠’라기보다는 몰락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부엔디아 가문은 기묘한 집착과 불가사의한 열정, 창조적 광기와 파괴적 방탕, 정의감과 근친상간의 유혹이 얽히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되풀이되는 가운데, 끝내 고독이라는 원죄를 지고 파멸로 치닫는 - 불의하지만 불의하지 않고, 현실적이지만 현실을 넘어선 비범한 가문이다. 책 제목이 이미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 집착, 방탕, 근친상간 등은 바로 고독의 변주(變奏)이자 산물이다. 그리하여 마콘도는 라틴아메리카의 표상이 된다. 방탕 폭력 재난 등은 과잉이고, 기억 정체성 언어는 소멸된다.

이 작품의 내용을 일별 할 수 있는 표현을 나는 이렇게 밖에 찾지 못한다. 이해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터이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해하기’ 보다는 ‘느끼기’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내게는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는 콜롬비아 출신 작가로 스페인어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그를 특징짓는 말은 ‘마술적 사실주의’ 일 것이다. 그가 창시자는 아니지만, 이를 가장 잘 구현해 낸 대표적 작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백년의 고독』은 1967년 작품으로 그가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걸작이다. 이 외에도 『낙엽』,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불행한 시간』, 『족장의 가을』, 『콜레라 시대의 사랑』등 많은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내 기억으로는, 『백년의 고독』은 국내에서 한 문학지에 연재물로 처음 번역 소개되었다. 당시 제목은 “백 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그리고 단행본으로도 같은 제목으로 나왔다. 그것은 영문 번역판의 중역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꽤 감명 깊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었다. 기억과 달리 난해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번역도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민음사 판은 스페인어 직역이고, 원작의 문체를 살렸다. 그래서 많은 부분의 묘사가 장황하기 짝이 없고, 횡설수설하는 느낌도 있다. 한 문장이 두세 페이지에 걸친 경우도 있을 정도다. 2권의 별책으로 각각 300쪽이 넘는다. 고백하자면, 1권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2권으로 넘어가면서, 문체에 적응이 되었고, 그 장황한 듯한 문장을 읽는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번역자가 원작의 맛을 잘 살렸다고 보게 되었다. 혹시 1권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기를 권해드린다. 비유컨대 ‘귀한 원석’을 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다. 게다가 같은 이름이 세대를 이어가며 되풀이된다. 헷갈리고 머리가 아프다. 다행히 가계도를 실어 놓아서, 수시로 들춰보면서 읽으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남자 이름은 아우렐리아노와 호세 아르카디오 둘 중 하나다. 여자 이름은 아마란타와 레메디오스다. 아내들, 즉 부엔디아 가문의 며느리들은 가계가 다르므로 이름도 다르다.


이름은 그 사람의 특징을 나타낸다. 아들들은 이름에 따라 2가지 성향으로 갈라진다. 호세 아르카디오 ‘계열’은 ‘육체성’이며 욕망이 강하고, 원초적이며 파괴적이다. 반면 아우렐리아노 계열은 고독하고 내면을 향하며 철학적이고, 예언자적인 모습도 보인다. 딸들은 아마란타 계열은 금욕과 죄성이 뒤섞인 복합적인 성격이며 근친상간의 욕망이 들끓는다. 반면 레메디오스 계열은 아름다운 여성의 전형으로 비논리적이고 순수하다. 레메디오스 중 한 명은 천사가 되어 승천하기까지 한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2가지 상반된 속성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 『백년의 고독』은 라틴 아메리카의 자화상이다.


마콘도와 부엔디아 가문의 ‘시조(始祖)’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이다. 그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마콘도를 건설한다. 특기해야 할 사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의 뿌리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상세하게 가계를 이어가면서도 그 뿌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자손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의 아내 우르술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 즉 역사와 문화의 단절을 드러내는 장치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정체성은 단절 그 자체다. 원주민의 역사는 식민지배의 폭력 속에 사라졌고, 아프리카의 기억은 노예선 위에서 끊어졌으며, 유럽의 기원은 이식되었지만 피의 뒤섞임 속에서 희석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므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인디오도, 아프리카계 흑인도, 유럽인도 아니며, 특정 인종의 혼혈도 아니다. 태초에 아담처럼 처음 시작하는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르술라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녀 역시 첫 인간, 첫 여성으로 사실상 부엔디아 가문의 창시자로서 존재 자체가 기원이다. 남편이 연금술에 미쳐 있는 동안, 아들이 32번의 전쟁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대의 출생을 관리하고, 이름을 지으며, 집안을 ‘먹여 살리고’, 재산을 지키며, 전쟁과 재난 속에서도 집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부엔디아 가문을 유지하는 것도 남자들이 아니라 우르술라다. 그러므로 비유컨대 마콘도는 창세기의 공간이며 우르술라는 하와의 ‘원형’이며, 태초의 대모신(大母神) ‘가이아(Gaia)’인 셈이다. 우르술라가 중심이지만, 다른 여자들, 즉 아내들은 물론 심지어 정부들까지도 부엔디아의 집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한다.


우르술라는 고손을 넘어 현손까지 보면서 오랜 세월 부엔디아 가문을 지탱한다. 그러면서 금기를 설정한다.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를 낳게 될’ 근친상간과 재앙을 불러오는 ‘피의 뒤섞임’이다. 그러나 후손들은 선을 넘나 든다. 그녀는 완전히 눈이 멀었음에도 집안 구석구석을 훤히 꿰고 있으며, 그래서 누구도 그녀의 실명 사실을 모른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자 무너지고 있던 부엔디아 가문은 버팀목을 잃고 급격하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만다.


반면 ‘시조’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집시들이 들여오는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시험하지만, 연금술에 몰두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게 되고, 결국은 미치광이가 되어 밤나무 아래 묶여 오랜 세월을 보낸 뒤 죽는다.

제1세대 집시들은 문명을 들여왔지만, 제2세대 집시들은 오락과 환락을 들여온다. 마콘도에는 퇴폐적인 사창굴이 자리 잡고, 부엔디아 가문의 남자들은 이곳에 틀어박혀 삶의 위안을 얻고, 심지어 후손도 얻는다. 그리하여 부엔디아 가계는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가 아니라 매춘부의 몸에서 이어진다. 우르술라의 금기는 일찌감치 깨지기 시작했고, 부엔디아 가문은 몰락이 예정된 것이다.


부엔디아 가문 서사의 중심인물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다. 그는 원래 금화를 녹여 황금물고기를 만드는데 몰두하는, 내면지향적이고 사색적인 인물이지만, 자유파의 전설적인 지휘관이 되어 보수파 정부와 전쟁을 벌인다. 부엔디아 가문의 정의 추구이자, 마콘도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20년간의 전쟁 끝에 휴전 협정을 맺고(사실상 패전이다) 다시 방에 틀어박혀 황금물고기를 만든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어쩌면 가문의 가장 위대한 인물일 수 있지만,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형인 호세 아르카디오와 매춘부 뻴라르 떼르네라의 아들인 아르까디오다. 그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전쟁을 하느라 마콘도를 떠나 있는 동안 전권을 부여받지만, 전횡을 일삼다가 처형되고 만다. 그러나 그는 딸인 미녀 레메디오스와 쌍둥이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를 남긴다.


쌍둥이 아들은 너무나 다른 성향의 삶을 살지만, 한날한시에 죽는다. 가계의 중심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다. 그는 아내 페르난다와의 사이에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와 딸 메메, 아마란따 레메디오스를 낳는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복권 장사를 하는 정부 뻬뜨라 꼬떼스와의 관계에 더 몰입한다. 한편 딸 메메는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들 아우렐리아노를 낳는다. 이 아우렐리아노가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남자다.


메메와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의 사랑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마콘도에 외국 자본이 들어온다. 그링고, 즉 미국인들이 투자해 바나나 농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는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다. 즉 부엔디아 가문과는 계층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천민’이라는 것이다. 바빌로니아라는 성 자체가 ‘죄악의 존재’를 상징한다. 그가 가는 곳은 노란 나비가 너울댄다. 노란 나비는 금지된 사랑, 운명, 기억과 순수성을 상징한다. 노란 나비는 떨칠 수 없고, 결국 메메는 마우리시오의 아기를 잉태한다. 그러나 마우리시오는 메메를 만나러 가다가 도둑으로 오인한 경비병의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고, 그렇게 병원에서 죽어간다. 한편 메메는 정신 병원에 감금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중요한 역사적 의미라는 것은 이것이 라틴 아메리카의 강고한 차별을 드러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메메가 그것을 깨뜨리는 첫 여성이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은 라틴 아메리카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의 후손(크리오요)을 차별하고, 크리오요는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메스티소)을 차별하고, 메스티소는 백인과 아프리카계의 혼혈(물라토)을 차별하고, 물라토는 원주민(인디오)과 아프리카계의 혼혈(사보)을 차별하고, 사보는 인디오를, 인디오는 아프리카계를 차별하는 계층구조다. 이 인종적인 계층은 직업과 사회계층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강고한 계층 구조가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메메와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는 그 희생자인 것이다.


마지막 부엔디아 남자인 아우렐리아노는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는 ‘동굴’로 표현되는 골방에 틀어박혀 백과사전을 읽고 예언이 수록된 양피지의 기록을 해독한다. 이 양피지는 집시 멜키아데스가 남긴 것이다. 멜키아데스는 마콘도에 문명을 가져온 집시다. 그는 ‘죽은 후’ 부엔디아 집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자신의 방과 양피지 기록을 남겼다. 그 양피지 기록은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고, 아우렐리아노는 그것을 끝내 해독해 낸다. 여기까지 보면 아우렐리아노는 영락없이 부엔디아 가문의 아우렐리아노 계열 남자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성정이 바뀌는 전환기를 맞이한다. 바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던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늦둥이 딸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들 둘은 어릴 때 같이 놀던 사이이지만, 사실은 이모와 조카 사이다.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돌아왔지만, 그녀를 향한 욕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 아우렐리아노는 틈을 타서 아마란타 우르술라를 덮치고, 처음에는 피하며 저항하던 그녀도 내면의 끓어오르는 욕정에 굴복해 결국 둘은 선을 넘고 만다.


한번 벽이 무너지자 분출하는 욕망은 저지할 수 없게 되고, 아우렐리아노의 육체성, 폭력성은 한계를 모르고 분출한다. 이럴 때 그는 아우렐리아노가 아니라 호세 아르까디오 계열이다. 아마란타 우르술라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의 남편은 유럽으로 돌아가고, 오로지 욕정에만 몰두한 두 사람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오직 육욕의 향연에 온몸을 바친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출혈이 멈추지 않아 그녀는 죽음을 맞게 되고,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에는 일찍이 우르술라가 경고했던 대로 돼지꼬리가 나 있다. 그 아기마저 죽어 썩기 시작하고, 아우렐리아노는 그 시신을 개미 떼가 자신들의 소굴로 끌고 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서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따라서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자기 이모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아우렐리아노의 호세 아르까디오 계열 성향은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할아버지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사실은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였기 때문이다. 이들 쌍둥이 형제는 이름을 바꾸어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장례를 치를 때 사람들이 실수로 바꿔 묻는 바람에 무덤은 오히려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가 이름을 바꿔 살아왔다는 것은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실제로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삶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미국인의 바나나 재배지역 노무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된다. 이 운동은 처참한 비극으로 끝난다. 시위대에 군이 발포한 것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한다. 또는 목격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이후 정부가 그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3천 명 이상이 학살당했으며 200량의 객차에 시신이 실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자신은 그 시신 더미에서 살아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는 멜키아데스의 방과 양피지 기록 속으로 침잠하고 만다.


이는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의 전형이다. 시조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마콘도에 들어오는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다가 마침내 연금술에 몰입해 결국은 정신병자로 밤나무아래에서 묶여 살다가 고독한 생을 마쳤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20년간 전쟁을 치르고 황금물고기 만들기에 몰두해 고독 속에서 삶을 마친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 실제로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노동운동과 학살에 대한 자신만의 고독한 투쟁 속에서 멜키아데스의 방에 틀어박혀 양피지 기록에 침잠하고 있다가, 그 최종 해독을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남자 아우렐리아노에게 넘긴다. 아우렐리아노도 아마란타 우르술라와의 근친상간에 빠지기 전까지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고독하게 살아왔다.


사실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우르술라의 광란의 최후가 있기 전, 이미 마콘도는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나나 농장은 사라졌고, 철도가 부설돼 다니던 기차도 끊겼으며, 4년 11개월 2일 동안 끊임없이 폭우가 쏟아져 모든 것이 좀과 녹으로 부식되었다. 폭우가 끝난 다음에는 10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모든 것이 말라죽어갔다. 그 소멸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절망적인 쾌락의 향연을 벌인 끝에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고 마콘도와 함께 파멸해 버린 것이다.


마콘도를 건설하기 위해 산맥을 넘었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엄청난 과단성, 무익한 전쟁을 이끌어갔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맹목적인 자존심, 가문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우르술라의 무분별한 집요함…(2권 p.16)


“무얼 바랐었니?” 우르술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란 흐르기 마련이잖니?”
“그래요” 아우렐리아노가 수긍했다. “하지만 그리 빨리 흐르진 않죠.”(1권 p.189)

……

“시간은 흐르기 마련인데 제가 뭘 바랐겠어요.” 그가 중얼거렸다.(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
“그렇긴 하지만, 그토록 빨리 흐르진 않아.” 우르술라가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사형수 감방에 있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으로부터 들은 것과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세월이 방금 전에 수긍했던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원을 그리며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한번 더 몸서리쳤다.(2권 p.201)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을 초래했던 네 가지 재앙인 전쟁이라든가, 싸움닭이라든가, 생활이 추잡한 여자들이라든가, 황당무계환 일 같은 것에 대해 입에 올리는 걸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그런 남자를 길러내는 데는 우르술라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권 p.280)


이 작품의 등장인물과 사건들은 모두가 각각의 상징성을 띤다. 또 모든 사람과 사물의 이름은 기호학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보려면 한이 없다. 문학 연구자라면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과 사건 하나하나에 대하여 각각 여러 편의 논문을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소설이란 독자의 손에 쥐어진 순간부터는 작가의 것도 아니고 연구자의 것도 아니다. 독자의 것이다. 독자에게 남겨지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 『백년의 고독』은 1,2권 합쳐 600쪽 정도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보다 훨씬 ‘광대’하다. 이 책 소개 서두에 ‘이해하기’ 보다는 ‘느끼기’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했다.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종잡을 수 없는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었다. 앞서 기술한 책 내용의 요지나 나름대로의 해석, 즉 여기에 쓴 글은 다 읽고 책을 덮은 후 그냥 ‘쏟아져 내렸다’. 말하자면 인물이나 사건이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고 이해되고 기억된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덩어리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은 덩어리를 풀어쓰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느끼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이 작품의 가치가 남다르다는 뜻이다.


아프리카나 이슬람세계, 발칸, 인도, 중국, 러시아 등등 지금까지 ‘책을 통하여’ 여행한 지역 어느 한 곳도 단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는 차원이 다르다. 혼돈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여기서 ‘혼돈’이라 함은 그 사회나 문화가 혼돈 속에 빠져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해의 혼돈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마술적 사실주의’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된다. 마콘도는 처음에는 창세기적 공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나라의 한 지역이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만, 고립된 공간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모순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다.


또 작품 전체에 비현실적이고, 황당무계한 묘사와 사건이 넘쳐난다. 밤나무 아래 묶여서 여생을 보내고, 승천하고, 죽은 사람이 와서 방을 차지하고, 유령과 대화하고, 140살이 넘게 살고, 4년 11개월 2일 동안 폭우가 계속되고, 객차 200량에 시신을 실어 나르고…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도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달리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이런 묘사가 사실적 묘사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다. 라틴 아메리카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을 이런 형식과 이런 문체로 쓰기로 했을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래서 노벨 문학상이 그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이다.


경이로운 현실


『백년의 고독』은 마술적 사실주의로 표현한 라틴 아메리카이다. 그러나 실은 라틴 아메리카에 그치지 않는다. 확장하면 그것은 세계이고, 개인의 차원까지 축소하면 그것은 가족이고, 또한 인생이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도구’가 된 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이 갖는 ‘경이로움’ 때문이다. 쿠바 작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이것이 작가나 시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초현실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모든 아메리카의 역사가 경이로운 현실의 연대기”라고 말한다. 그는 아이티를 여행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경이로운 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한 편의 소설에 담았다. 『백년의 고독』과 마주 세우면 서로를 지탱하는 벽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이 세상의 왕국』/알레호 카르펜티에르/문학동네/2019

알 수 없는 독(毒)이 풀, 건초더미, 여물통에 퍼져 가축이 죽어 나간다. 농장주의 침대 협탁에 놓인 컵, 수프 냄비, 약병, 빵, 포도주, 과일까지 독이 스며들어 마을에는 장례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 노예 해방을 위한 투사는 이구아나, 나방, 개, 펠리컨 등 온갖 동물로 변신해서 출몰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세상의 왕국』은 가상의 공간 마콘도를 무대로 한 ‘『백년의 고독』과는 달리 실제 아이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두 작품이 비슷하다. 역사는 신화적이고 전설적이다. 온갖 고난을 극복하면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지만, 지배자의 피부색만 바뀌었을 뿐, 억압은 변함없이 강고하다. 새로운 권력자는 ‘우리’와 같은 피부색, 같은 출생 배경을 가졌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강한 채찍을 휘두른다. 결국 ‘우리’는 “끝나지 않는 길로 거대한 짐을 날라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고 만다. 『이 세상의 왕국』은 1949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거기에 그려진 ‘현실’은 2025년 현재에도 아이티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다.


알레호 카르펜티에르(1904~1980)는 쿠바 작가이지만, 쿠바인이 아니다. 본인은 쿠바의 아바나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는 게 정설로 간주된다. 아버지는 프랑스계 건축가, 어머니는 러시아계 교사이자 피아니스트이며 유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쿠바로 이주해 아바나에서 자라났다는 것이다. 앞서 라틴 아메리카의 ‘혼종성’을 말했다. 그러므로 그를 쿠바인이 아니라고 한 말은 잘못이다. 본인이 쿠바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는 쿠바인이다.

성장 과정도 복잡하다. 유년기는 쿠바, 중등교육은 프랑스, 고등교육은 다시 쿠바에서 받았다. 아바나대학교에서는 건축학과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청년 시절 독재에 항거해 투옥되기도 했고, 이후 파리에서 사실상 망명생활을 한다. 1959년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 귀국해 카스트로 정부에서 문화부 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장편소설 9편, 단편소설집 2권, 시집 1권, 그리고 많은 에세이를 남겼다.

작가는 부두교를 접한 뒤 아프리카-쿠바 문화에 큰 관심을 갖는다. 또 1943년에는 아이티를 여행하고 그 매력에 빠진다. 특히 이 작품에도 묘사되는, 아이티의 황제를 자처했던 앙리 크리스토프가 건설한 요새 ‘시타델 라 페리에르’를 가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이 작품, 『이 세상의 왕국』을 쓰는 동기가 된다.


『이 세상의 왕국』은 본문이 170쪽에 못 미치는 짧은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4부로 이뤄져 간단치 않다. 전체적으로는 흑인 노예 티 노엘의 삶을 따라가는 형식이지만, 각 부는 시대별로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큰 주제는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한 시기 흑인들의 아이티 혁명을 다룬다. 제1부는 만딩고족 외팔이 마캉달이 프랑스의 지배에 대항한 1790년대의 반란, 제2부는 프랑스 혁명기의 또 다른 반란, 제3부는 독립 후 황제를 자처하면서 전제 권력을 휘두르던 앙리 크리스토프의 몰락, 제4부는 앙리 크리스토프 멸망 후에도 변함없는 압제에 대한 이야기다.


제1부의 주인공은 마캉달이다. 그는 만딩고 족으로 사탕수수 즙을 짜다가 굴대에 팔이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다친 팔을 절단한 ‘외팔이’다. 흑인 노예 중에서도 만딩고족은 “다루기 힘들고, 반항적이고, 불온하고, 악마 같다”라고 인식돼 있다. 이는 노예 소유주의 시각일 뿐, 객관적으로 바꿔 말하면 자의식이 뚜렷하고, 고집이 있어 소신대로 행동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마캉달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팔이 하나 없는 노예는 쓸모가 별로 없다. 마캉달은 가축을 돌보게 된다. 그렇게 가축을 몰고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풀과 버섯, 개미 등을 관찰해 약초와 독초의 지식을 쌓고, 부두교 주술사인 노파를 만나서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이 곳곳에 퍼져 가축과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다. 그 배후에는 마캉달이 있고, 그는 부두교 사제이자 식민 지배자와 농장에 대항하는 반란의 지도자가 된다. 그는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지도 않지만, 흑인 노예들에게는 초록색 이구아나, 털을 바짝 세운 커다란 개, 낮에 나타난 밤의 나방 등으로 몸을 바꿔가며 농장의 노예들을 방문한다.

그러나 마캉달은 결국 붙잡혀 화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 화형식을 보도록 광장에 끌려 나온 노예들은 마캉달의 몸이 날아올라 공중에서 부풀어 오르고, “검은 물결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마캉달이 살아났다!”라고 부르짖는다. 그렇게 마캉달은 사라지고, 반란은 진압되었다.


제2부는 프랑스혁명, 부크만이 주도하는 노예 반란, 프랑스 식민지의 와해 등의 격동기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노예 제도 폐지론이 대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티의 흑인 노예들이 자메이카 출신 부크만의 주도로 반란을 일으킨다. 노예들은 농장주 집을 약탈하고, 파괴하고, 백인 농장주들은 쿠바로 달아난다.

여기에는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과 그녀의 남편 르클레르 장군도 등장한다. 르클레르는 반란을 진압하고 식민지를 안정시켜야 하지만, 황열병으로 죽고, 폴린도 쿠바로 달아난다. 그리하여-

“폴린이 떠난 일은 식민지에 있던 모든 상식의 쇠퇴를 의미했다. 로샹보(르클레르 사후 통치를 맡은 인물) 정부하에서 과거의 번영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한 플렌 뒤 노르의 마지막 지주들은 한계도 휴지기도 없이 진탕 먹고 마시며 난잡하게 노는 파티에 빠졌다.(p.93)


부크만은 마캉달의 환생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도 결국 붙잡혀 처형당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민지배도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제3부는 황제를 자처한 앙리 크리스토프의 몰락 스토리다.

앙리 크리스토프는 요리사였다. 그의 식당은 티 노엘이 있던 농장 인근 도시 카프의 에스파냐인거리에서 백인 지주들이 많이 찾는 인기 있는 곳이었다. 그는 여관도 운영했었다. 그는 티 노엘과도 친분이 있었다.

티 노엘은 1장의 마캉달과 같은 주인의 농장에 있었으며, 그와 친하게 지냈었다. 마캉달은 그에게 자부심 넘치는 고향 아프리카의 삶과 문화, 그리고 특히 칸쿠 무사 황제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칸쿠 무사, 또는 만사 무사는 14세기 위대한 문명을 건설했던 말리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부두교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된다.) 그렇게 해서 티 노엘에게 아프리카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심어준 것이다.

이후 티 노엘은 도망치는 주인과 함께 쿠바로 갔다가 나중에 풀려나 아이티로 돌아온다.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강제노동에 투입된다. 그는 앙리 크리스토프, 즉 황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항변해 보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가 투입된 강제노동은 난공불락의 요새 시타델 라 페리에르 공사 현장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 위의 전략적 위치에 포대, 화약고, 생활시설, 물탱크, 대장간, 주물공장, 지하감옥, 왕궁, 광장 등이 터널, 비밀통로, 복도 등으로 연결된 사실상 요새화된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셈이었다. 이는 앙리 크리스토프 ‘황제’의 강박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프랑스군이 식민지를 되찾기 위해 쳐들어올 것이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 노엘이 맞닥뜨린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그는 기품 있는 부인들도 흑인이고, 각료도 흑인이며, 조리사도 흑인이고, 경기병도 흑인이며, 배우도 흑인이고, 고관도 흑인이며, 시종도 흑인이고, 음악가들도 흑인이며, 심지어 성당 제단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도 흑인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를 붙잡아 감옥에 집어넣고, 몽둥이질을 하는 자도 흑인이었다. 공사 현장에서는 흑인들이 흑인의 감독과 매질을 당해가며 인간 취급도 못 받으며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앙리 크리스토프는 결국 주민들의 저항과 군의 반란에 직면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상수시 궁전에서 소년 시동 5명과 시종 한 명만 남고 모두 달아난 가운데 권총으로 자살한다. 불길이 궁전을 삼키려고 다가오고, 폭도들이 몰려와서 마구 약탈한다. 시종과 시동들은 왕의 시신을 수습하고, 왕비, 공주 등과 함께 산 위의 요새 시타델 라 페리에르로 도망친다. 왕의 시신은 회반죽 속에 가라앉혀진다. 요새의 한 부분으로 용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새의 산 전체가 황제의 영묘가 된 셈이다.


마지막 제4부는 앙리 크리스토프가 몰락한 후 티 노엘이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그는 상수시에서 약탈한 여러 가지 물건과 가구로 자기 집을 꾸민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전 주인 농장 집의 폐허다. 벽난로 등 일부 구조물을 적당히 개조해 집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여러 동물이나 곤충으로 변신할 수 있다. 거위가 나타나자 그는 거위로 변해 그 무리에 받아들여 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그 씨족은 다른 계급의 모든 개인에게는 굳건히 닫혀 있는 여느 귀족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그래서 티 노엘은, 비록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애쓴다 할지라도, 그 씨족의 직분과 의례에 결코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그로 인해, 그는 모든 거위가 동등하다고 믿기 위해 거위가 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했다.(p.159)


티 노엘의 ‘궁전’에는 새로 정권을 잡은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의 측량기사들이 들이닥친다. 그는 새로 변신했다가 여의치 않아 종마로 변신한다. 그러나 물라토가 거세하려고 달려드는 바람에 장수말벌로 변신했다가, ‘싫증이 나서’ 개미로 변신한다.


생각을 잘못한 탓에 개비로 변신했다가 그는 르노르망 드 메지의 농장 십장들, 앙리 크리스토프의 근위대원들, 현재의 물라토들을 진저리날 만큼이나 상기시키는 큰머리개미 몇 마리의 감시를 받으면서, 끝나지 않는 길로 거대한 짐을 날라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p.156)


이제야 그는, 인간은 자신이 누구를 위해 고통을 받고 희망을 품는지 결코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인간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고통받고 희망을 품은 채 일하며, 그 모르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지 않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 것인데, 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에게 부여된 행복 저 너머에 있는 행복을 늘 열망하기 때문이다. … 하늘의 왕국에는 쟁취해야 할 만큼 위대한 것이 없는데, 그곳에는 모든 것의 위계가 정해져 있고, 알 수 없는 것이 없고, 존재가 무한하고, 희생이 불가능하고, 휴식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온갖 고생과 의무로 힘들어하고 불행을 겪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재앙을 겪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이 세상의 왕국에서 자신의 위대함, 최상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p.160)


<아이티>


『이 세상의 왕국』에 묘사된 아이티 혁명과 그 후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아이티 혁명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후손이 혁명으로 독립된 나라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해방된 노예들이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라이베리아라는 나라를 건설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티의 역사는 고난과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그 까닭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부담이다.


차별이라 함은 혼혈의 여러 계층의 차별을 말한다. 앞서 서술한 대로 중남미는 혼혈의 대륙이었다. 식민지 시대에도 같은 백인이라도 유럽에서 태어나 건너온 백인은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 ‘크리오요’를 차별했다. 크리오요는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물라토 등을 차별했다. 백인과 메스티소의 혼혈, 그 혼혈의 혼혈…. 그에 따라 데르세론, 마멜루코, 그리포, 마라부 등등 이 계층은 끝이 없다. 시몬 볼리바르의 독립 투쟁도 유럽에서 태어난 백인의 크리오요 차별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차별 문화는 혁명과 독립 후에도 그대로 지속되어 사실상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 하위 계층은 식민지시절과 똑같은 차별과 학대에 허덕였다. 『이 세상의 왕국』에서 티 노엘의 운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 현대에 들어서도 하위 계층 여성은 도시의 상위 계층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이라 함은 독립 당시 프랑스가 자국민 농장주들의 피해에 대하여 아이티에 부과한 막대한 배상금을 말한다. 아이티는 독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이 배상 의무를 받아들였다. 『이 세상의 왕국』에서 앙리 크리스토프 황제가 엄청난 요새를 건설하는 장면은 아이티가 프랑스의 위협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말해준다. 이것이 ‘원죄’처럼 아이티를 짓눌러 신생국가가 일어서는데 엄청난 장애물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앙리 크리스토프가 황제를 자처하면서 독재를 자행하는 것으로, 또 20세기에는 뒤발리에 부자의 세습 독재 등으로 이어졌다.(1957~1986) 그 사이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군정이 실시되기도 했다. 뒤발리에 부자 독재 종식 이후에는 내전이 있었고, 그 와중에 대지진, 콜레라 창궐 등 자연재해와 역병으로 나라가 피폐해졌다.


화해가 불가능한 계층 간의 갈등, 경제 건설의 어려움, 독재, 자연재해 등 아이티는 그야말로 한 나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온갖 고난의 ‘종합 세트’에 시달려 온 셈이다. 그 결과 오늘날 아이티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서 갱단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형편이다. 아이티는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부두교>


영화에서 흔히 이상한 향로에서 연기를 피워 올려 사람을 홀리거나, 인형이나 사진을 바늘로 찔러 해코지하는 등의 흑마술이나 커다란 유리구슬을 들여다보면서 미래를 점치는 등으로 묘사되는 미신이나 주술로 묘사되는 종교다.


‘부두(Voodoo)’란 서아프리카 토착어로 ‘영혼’이나 ‘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주술이나 원시 종교처럼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복잡한 철학, 의학, 정의를 포괄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서아프리카 전통 신앙과 로마 가톨릭 신앙이 결합되어 아이티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종교’로 정의된다.


부두교는 유일신 '봉디예(Bondye)'를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로아(Loa)’라고 불리는 많은 정령들과 조상 숭배도 병행된다. 로아는 신과 인간세계를 연결해 주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 ‘보살’과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톨릭의 ‘성인’과 같은 존재로 볼 수도 있겠다. 이는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이 주인의 종교인 기독교 의식에 따라야 하므로, 자신의 종교를 위장하기 위하여 혼합주의가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사실 중 하나는 약초에 대한 지식과 그 사용이다. 부두교 사제들은 자연에서 취하는 약제에 대하여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왕국』에서도 마캉달이 여러 가지 풀을 잘 살피고, 숲에 사는 할머니에게 관련 지식을 전수받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아프리카 전통 의술의 한 부분이다. 부두교는 이런 전통을 포함한다. 주술로 보이는 행위도 사실은 이런 약재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과정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독을 풀어 해를 입히는 것은 흑마술이 아니라 약초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과학’인 셈이다.


실제 춤 노래 북 연주, 약초를 이용한 환각 등 신들린 모습으로 로아와의 소통을 추구하고, 동물 희생제의도 있기는 하지만, 인신 공양, 동물학대 등 자학 또는 가학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도록 해준 영적인 버팀목이 되었다.


한 마디로 부두 인형, 좀비 등은 대중매체가 흥미를 끌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이다.


<더 읽기>

라틴 아메리카의 경이로운 현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면 다음 책들도 흥미가 있을 것이다.


『족장의 가을』/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2021

작가 스스로가 ‘대표작’,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1983년에 국내 초역 소개되었다가 2021년 다시 완역본으로 나왔다.

『백년의 고독』을 통하여 마르케스의 ‘문법’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면 읽어볼 만한 작품이지만, 좀 더 난해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가상의 공화국의 늙은 독재자의 자의적이고 편집광적인 권력, 불안과 강박, 거기서 비롯된 기행 등이 그려지는 ‘독재자 소설’의 전형이다. 여기서 그려지는 족장은 여러 라틴 아메리카 독재자의 모습을 조합한 모습이다.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아마두 쿠루마/문학과지성사/2022

아프리카판 『족장의 가을』이라고 할 수 있는 명작이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작가 아마두 쿠루마의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주술과 환상이 어우러진 신랄한 풍자로 읽는 맛이 남다르다.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비해 ‘주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원래 하나였다가 둘로 갈라진 두 대륙의 쌍둥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족장의 가을』에 비하면 훨씬 쉽게 읽힌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루이스 세풀베다/열린책들/2009

『백년의 고독』과 『이 세상의 왕국』의 주제를 자연으로 확장한 버전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칠레 출신의 환경운동가이자 라틴 아메리카 문학계의 대표적인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대표작이다. 아마존 오지 마을에 개발을 빙자한 주민 이주가 이뤄진다. 여기에 흘러들어온 ‘노인’은 아내를 잃고 혼자 살면서 연애 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러나 그는 겨우 문맹을 면한 수준으로 책을 줄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단어 한 단어 뜻을 생각하면서 겨우 읽고 그것을 음미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여기에 맹수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고, 그것이 이주 정착촌의 심각한 위협이 된다. 마침내 노인이 이 맹수를 잡기 위해 나서고 둘 사이의 쫓고 쫓기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 계속된다.

이 작품은 밀림의 법칙을 따르는 맹수와 도시의 방식을 들고 들어온 이주민들의 충돌을 그린다. 이주민의 방식이 밀림의 생존 법칙에 무기력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노인은 원주민들로부터 밀림의 법칙을 전수받은 상태. 그러므로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자연, 즉 밀림의 현실로 치환해서 보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카를로스 푸엔테스/까치/2015(초판 1997)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책 소개 문구를 인용해서 설명할 수 있다. 즉 “라틴 아메리카 지식인이 바라본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에 대한 일대기이자 라틴 아메리카인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뼈아픈 자기 성찰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저자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파나마에서 태어난 멕시코 소설가다. 내용이 꽤 방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기 어려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키워드로 제시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한다.


그것은 ‘케찰코아틀’이다. 케찰코아틀은 깃털 달린 뱀으로 아즈텍, 마야, 톨텍 등 중미 전역에서 숭배되던 중요한 신 중 하나다. 저자는 먼저 아즈텍 톨텍 문명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한쪽은 인신공양 전쟁 정복 등의 폭력성이고 다른 한쪽은 지식 도덕 금욕 등의 창조성이다. 이런 창조적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케찰코아틀이다. 저자는 이를 라틴아메리카 역사 전체의 원형적 갈등으로 본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케찰코아틀신전

신화의 비극은 음모와 배신, 질투, 세속 권력의 욕망의 다툼 속에서 케찰코아틀이 도시에서 추방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근원적 파열로 본다. “지혜의 신은 떠났고, 그 빈자리를 폭력과 공포의 제국이 채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찰코아틀은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겼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백색 피부, 수염, 동쪽에서 오는 자로 묘사되었다. 스페인 정복자가 왔을 때 이 묘사가 라틴 아메리카인들을 사로잡았다. 아즈텍의 지배자 몬테수마는 코르테스를 보고 “신이 돌아왔다”라고 확신한다.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케찰코아틀 신화를 라틴아메리카적 가치의 원형으로 해석하고, 회복의 대안으로 본다. 라틴 아메리카에 원래의, 고유한, 고도의 문명적 윤리와 대안적 발전 모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왜곡, 폭력의 카르텔… 이런 라틴 아메리카 역사의 비극을 보면, 지금도 그 모습이 그대로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케찰코아틀의 재림이라는 희망, 또 하나의 문명적 가능성도 있음을 볼 수 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가 다른 역사책과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 - '희망'의 철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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