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저마다의 소소한 삶이 역사이고, 삶은 사랑이 지탱한다

by 제이슨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에드워드 브룩 히칭/현대지성/2025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줄리언 반스/다산북스/2023


늙은 남자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1983년 이 땅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온 나라가 열병을 앓았다. 장장 138일, 총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이 진행됐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 오르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됐다.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이야기다. 1983년 휴전 30주년을 맞아 1시간30분짜리 특집 방송으로 시작했지만,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면서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송 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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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일단 가족을 확인한 사람들은 단 5분도 기다리지 못했다. 산골 벽지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밤을 새워 서울 여의도 KBS 본관까지 달려왔다. 새벽 1시에도 오고, 4시에도 오고… 당시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열 시간 스무 시간을 달려왔다.


나는 사람 몸이 그렇게 심하게 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야간에 상봉을 위해 오시는 분들을 맞아서 방송에 나갈 때까지 안내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여의도까지 경찰이나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 도움을 주는 분이 당사자를 모시고 와서 지금의 여의도공원을 바라보는 현관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가 좌우에서 팔을 끼고 널찍한 홀을 가로질러 대기실로 모신다.

이 분들은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온몸을 와들와들 떤다. 걸음도 발이 땅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것 같다. 대부분 방송에서 자신의 가족을 확인한 순간부터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상태다. 극도로 흥분해 있다. 문학 작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몸을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다”는 표현이 실감 난다. 정말 금방 바스러질 것만 같다.


나는 이산가족이 아니다. 고향에 일가친척 모두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 전해지는 그분들의 떨림으로 그 비극과 한을 고스란히 느꼈다. 종종 방송 스태프는 물론 지원인력, 자원봉사자들까지 함께 울면서 일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짓밟는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부부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약 없이 헤어진다. 남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고향을 중심으로 다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은 같이 ‘남한’에 살면서도 소식을 모른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니까 몇 년 후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살다 보니 3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세월이 한이 되어 가슴에 맺혔다. 그런데 TV 화면에 그리운 얼굴이 나왔다. 그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분들의 한이 얼마나 깊은 지 깨닫게 해주는 일화 하나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십중팔구 헤어질 당시의 상황이 화제에 오른다. 식사 도중에 어떤 일로 급히 자리를 떴다가 그대로 헤어졌던 분들이 있었다. 이 분들은 당시 밥상에 올랐던 반찬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다. 그때 그 순간이 한이 되어 사진처럼 가슴에 ‘박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내가 형, 누나라고 불렀던 분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아원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에 나와 자립해야 한다. 전쟁고아들은 갈 곳이 없다. 당시에는 부자가 아니어도 ‘먹고살 만’하고, 일거리가 좀 있으면 전쟁고아 한둘은 거두었다. 우리 집에도 그런 ‘형’과 누나들이 있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 가까이 살기도 했다. 그들도 이 시기에 전쟁통에 헤어졌던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아무리 많은 시간 생방송을 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신청이 밀려 방송을 탈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이 여의도 광장에 모여들어 저마다 사연과 사진을 붙인 각양각색의 패널이나 피켓을 들고 사람을 찾았다. 광장은 금방 거대한 구인시장처럼 변했다. 특히 전쟁고아 출신들은 광장 한 곳에 샌드위치맨처럼 앞뒤로 패널을 뒤집어쓰고 24시간 앉아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되어 밥과 물을 제공했다. 우리 집 ‘형’ 하나도 그렇게 일주일을 버틴 끝에 헤어진 친누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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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정보화시대를 맞은 오늘날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커녕 일반 유선 전화도 사치였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1983년 당시 전화 보급율은 인구 100명당 약 12대, 가입자 수 480여 만 명이었다. 당시 인구가 4천만 명을 막 돌파했으니, 4인 가구로 계산한다면 가구당 보급율은 절반이 채 안 된다. 여기에 기업 공공기관 등 회선을 많이 쓰는 곳을 감안하면 그 비율은 훨씬 떨어질 터이다. 주민등록 정보가 전산망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해 보통 사람은 어딘가 가족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확신은 하지만, 찾아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생이별’은 이런 경우에 딱 맞는 말이다. 아무 잘못도 없고, 이유도 없다. 네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다. 그냥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재난은,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에 따른 것이건, 전쟁 같은 인간이 만든 재난이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가지런했던’ 삶을 파괴하고 짓밟는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평온한 삶이 ‘정상’이고, 재난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세계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지금 평온한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것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지금 재난 속에 있다면, 그것은 삶의 한 부분이고, 과정이다. 고난 없는 삶은 없다. 평생 고난이 없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다. 그러니 역사의 수레바퀴가 ‘내 삶’을 짓밟아도 비관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다락방 서재’(제2화 「다락방 서재」)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 중세 유럽, 발칸반도, 이슬람세계, 러시아, 중국, 인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을 거쳐 미래의 디스토피아까지… 지금까지 달려온 책을 통한 긴 문명 여행, 그 여정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위대함의 서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도, 역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토대는 그 수레바퀴에 짓밟힌 평범한 사람들의 신음과 한숨과 눈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알렉산더 대왕의 것도 아니고, 칭기즈칸의 것도 아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것도 아니다. 발칸에서, 페르시아에서, 콩고 강변에서, 시베리아에서,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 남미의 정글에서, 인도의 시장통에서 소소한 자신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 그 소소한 저마다의 삶이 역사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랑이다.

따라서 역사를 지탱하는 것은 사랑이다.


40여 년 전 이산가족 상봉장에 들어서면서 와들와들 떨던 한 늙은 남자. 그 떨림은, 그러므로, 역사가 무엇인지를 응축해서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잊어버린 세월에 맺힌 한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 그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 아니었을까?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역사다.


그러므로 그들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혔다”라고 하는 말은 틀렸다. 전쟁의 포연 속에서 스러져간 청춘도 아름다운 인생이요, 시베리아 수용소군도나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서 허무하게 사라져 간 사람들의 삶도 아름다운 인생이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러므로 인생은, 누군가는 단 하루를 살고, 누군가는 백 년을 살아도, 그 하나하나, 한순간한순간이 빛나는 보석이다. 그 보석들이 모여 역사를 만들고, 우주를 지탱한다.


우리 중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고, 가족의 중심은 부부다. 결국 사랑의 최대 화두는 역시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성애(性愛) 쪽으로 흐르게 된다. 지금 소개할 책이 바로 그렇다. 책을 펴면 서두부터 적나라한 외설적 표현에 화들짝 놀란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을 때는 삶을 포근히 감싸주는 사랑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고상하고 심오한 서사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1만 년 사랑의 역사를 그냥 눈길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에드워드 브룩 히칭/현대지성/2025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라는 번역본 제목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원제를 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원제는 “LOVE: A Curious History in 50 Object”. 책은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저자 에드워드 브룩 히칭은 영국의 논픽션 작가로 영국왕립지리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소개 글을 보면 한마디로 역사의 ‘뒷이야기’를 좋아하고, 그런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고서적과 고지도를 주로 취급하는 골동품상의 아들로 자랐다는 성장 배경이 그의 성향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이 책 제목은 “우리가 몰랐던 사랑의 역사 50장면” 정도로 번역하면 대략 원제, 또는 책 내용과 잘 맞을 것 같다. 책은 각각 5~6 페이지 정도 되는 50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은 사랑과 관련된 50가지 주제 또는 키워드를 역사와 신화, 예술로 ‘버무려낸다’.


글은 간략하고, 원색 사진이 풍부하다. 그것은 주제에 따른 고대 유물, 조각 작품, 명화, 사진 등이다. 그러므로 어떤 주제를 깊이 천착하는 내용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자료와 함께 사랑과 관련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 역사 속의 부부 또는 연인의 애틋한 사연, 여러 시대의 풍속도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러므로 가볍게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는 것도 읽는 것이지만, 마치 박물관 또는 미술관의 도록처럼, 수록된 많은 원색 사진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걸작 미술품도 많고, 쉽게 볼 수 없는 각종 유물 사진도 많다.


<너무 외설적인 고대 유물?>


책의 앞부분은 ‘외설적’이다. 고대 유물 사진이 너무나 적나라해서 들여다보기가 약간 민망한 것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유물이란 거의 모두가 기록물이 아니라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거기서 ‘사랑’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포옹하고 있는 남녀 상이나, 직설적이거나 은유적이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의 조각이나 벽화 등일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적나라한 것이 많아서 놀란다.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굴되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니, 꾸며낸 이야기도 아닐 터이다.

포옹하고 있는 남녀 상은 점잖은 편이다. 성관계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 조각상도 있다. 앞서 힌두 사원에서 그런 탄트라 조각상을 보았던 이야기를 했지만(제22화 「인도, ‘신의 나라’의 인간」) 전혀 다른 문화권에도 비슷한 것들이 발견된다. 물론 그 맥락은 다르겠지만, 고대인에게는 섹스가 쾌락의 측면이 아니라 생존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성기를 그대로 묘사한 유물도 많이 발굴된다. ‘남근 숭배’가 대부분 고대 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임을 감안하면, 이 유물들은 주술적 의미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작고 휴대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들도 있다. 이는 그것이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행운이나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마스코트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고대인의 ‘포르노’가 아니다.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것으로 추정한다고 해서 ‘미신’이라고 일축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고대인이 세계와 자연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섹스가 단지 종족 보존을 위한 행위라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단지 육체적 행위일 뿐인 섹스에서 사랑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이끌어냈다는, 또는 부여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인간 되는’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그냥 보면 요상한 고대 유물 사진들이 그렇게 보니 다시 보인다.


<50개 주제>


50가지 주제를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목차 일부를 살펴보면 책의 방향과 내용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01. 인류의 가장 오래된 입맞춤 / 02. 사랑과 정욕의 고대 신들 등 첫 2개 장은 기원전 9,000년과 6,000년 경의 여인상이 주인공이다. 이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 로마 등 주요 고대 문명의 유물을 통해 러브 스토리를 파헤친다. 그다음은 유물과 예술작품 등을 통해 메소아메리카, 바이킹, 유럽, 인도 등지의 사랑 이야기를 다양한 주제로 풀어나간다. 이런 스토리는 후대로 갈수록 기록된 역사가 뒷받침되는 것이 많아 더욱 사실적이다.

이 외에도 정조대, 일본의 춘화, 사기꾼, 카사노바, 외도, 질투, 간통, 결혼 등의 주제가 펼쳐지고, 근대 영국의 뒷골목 환락가, 약간은 변태적인 비밀 섹스 클럽 같은 것도 폭로된다.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선물이나 비법, 흑마술, 안내서 같은 것도 있다.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에서 오늘날의 데이팅 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렇게 열거하다 보면, ‘사랑’을 빌미로 ‘성애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이라는 것은 연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유물로 드러나는 것은 결국은 ‘행동’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은 아내를 위한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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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4세기 포르투갈의 페드루 1세와 그의 아내 이네스 드카스트루의 러브 스토리다. 사진 중 빨간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이 아내이고, 그 옆에 선 사람이 페드루 1세 왕이다. 페드루 1세가 왕자 시절, 이들 둘은 서로 사랑해서 자녀까지 두었지만, 부왕이 허락하지 않아서 결혼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네스는 죽임까지 당한다. 사진은 대관식 후 대신들의 인사를 받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페드루 1세는 왕위에 오르자, 죽은 아내 이네스의 왕비 대관식을 치른다. 그러므로 그림 속 왕비 이네스는 시신인 것이다.

그렇게 알고 보면 괴기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페드루 1세의 지극한 아내 사랑을 보여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5백 년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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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서아프리카 도곤족의 부부상으로 삶의 동반자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부상도 멋지지만, 아래 사진은 이 책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장면이다.

루마니아의 한 묘지에서 발굴된 유골로 두 남녀가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마주 보는 자세로 묻혀 있었다. 사진 설명은 이들이 “지난 5천 년 간 손을 잡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저자가 잘못 알았거나 단순 실수일 수 있다. 실제로는 5천 년 전이 아니라 16세기의 유골로 확인되기 때문이다.(수도원 묘지에서 발굴되었다는 설명도 5천 년 전이라는 연대 설정과 맞지 않는다.)

이들이 함께 묻힌 사연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얼마나 애틋한 사랑이었기에 이런 자세로 묻어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0세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연인이기보다는 부부였을 가능성이 높고, 그 죽음에 얽힌 사연도 간단치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죽어서도 이처럼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묻혔으니, 가히 ‘5백 년의 동행’이라 할 만하다. 아니, ‘5백 년 간의 사랑’이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 장(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구절은 그리하여 -


우리가 본능적으로 진실에 가깝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바로 우리 중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 말이다.
(필립 라킨/’아룬델 무덤’/1956)


<클림트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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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으로 갈수록 명화가 많이 등장한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 툴루즈 로트렉의 ‘침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등의 걸작은 물론이고, 중세 필사본의 다양한 그림들, 일본의 춘화 등 볼만한 작품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그림은 ‘성취’이고, ‘키스’는 이다음 페이지 전면에 실려 있다. 그런데 사실 ‘키스’는 그냥 달콤한 키스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같은 의문을 툭 던진다.


“이 그림은 정말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서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왜 그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무엇을 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그냥 의문으로 남겨둔다.


클림트는 이 그림에 대해 어떤 설명도 남기지 않았기에 <키스>에 담긴 비밀은 황금빛 고치에 쌓여 영영 지켜질 것이다.

<심장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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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도 재미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 연인, 또는 부부로 새 출발 하는 사람들에게 지도의 은유로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것이다. 지도에는 강과 바다가 있고 그 사이에 집들이 그려져 있다. 연인(또는 부부)은 아래(남쪽)에서 출발해 강을 따라 올라간다. 각각의 집은 ‘배려’, ‘순종’, ‘지속적 우정’ 등 덕목도 있고, ‘소홀’, ‘미지근함’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좋은 경로를 잡아 덕목을 따라가는 커플은 ‘존경을 바탕으로 한 애정’에 다다른다. 반대로 부정적인 경로로 잘못 들어서면 ‘무관심의 호수’에 빠지거나, 최악의 경우, 서쪽(왼쪽) 바다의 난파선이 된다.

17세기 프랑스의 작가가 만들어낸 우의적 지도 그림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하트 모양으로 그려진 ‘여인의 마음속 지도’도 있고, ‘결혼의 바다’ 지도도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사랑이다!>


저자는 앞서 소개한 “바로 우리 중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 말이다”라는 시 구절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이 ‘사랑의 가치’였던 것이다.


고대의 유물에 남겨진, 사랑의 흔적, 지금 보면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한 표현은 외설적이라면 외설적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오늘날까지 인류의 삶을 이어준 원초적인 힘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뭉뚱그려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이다. 내밀하지만,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공개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사랑’이 없이는 삶은, 세상은,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유일한 책도 아니고, 가장 뛰어난 책도 아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꽤 독특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또는 ‘훑어볼’ 만한 책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줄리언 반스/다산북스/2023


이것 역시 번역본 제목에 ‘속아서’ 읽게 된 책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원제는 『Levels of Life』로 전혀 엉뚱하다. 책 내용 전체는 지금 이 글의 취지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번역본의 제목을 이 글의 제목으로 인용했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줄리언 반스는 현대 영국 대표작가 중 한 사람으로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2012),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시각으로 조명한 『시대의 소음』(다산책방/2017) 등이 대표작이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 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저자가 아내인 출판기획자 팻 캐바나를 잃은 후 5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사랑과 상실, 슬픔의 깊이를 그려낸 에세이집이다. ‘비상의 죄(The Sin of Height)’, ‘평지에서(On the Level)’, ‘깊이의 상실(The Loss of Depth)’ 등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19세기 열기구 비행과 공중 사진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비상과 탐험을 그린다. 실존인물인 영국인 프레드 버나비와 프랑스인 사진가 나다르, 그리고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비행 기록인 셈이다. 2부는 프레드 버나비와 사라 베른하르트의 가상의 로맨스 스토리다. 이어 3부는 아내의 죽음 이후 겪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표현한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얼핏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3가지 에피소드는 하늘, 땅, 지하의 3가지 층위를 그림으로써 사랑의 고양에서 죽음의 상실에 이르는 행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3편에 비로소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그리는 것은 마치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는 평이다. ‘Levels of Life’라는 원제가 책의 전체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초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저자와 같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줄리안 반스의 아내 팻 캐바나는 작가도 아니면서 영국 ‘문단의 별’로 추앙되는 사람이다. 그만큼 뛰어난, 그리고 영향력이 큰 출판 기획자였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줄리안 반스도 아내의 이런 출판 기획에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아내의 상실은, 가정에서는 안주인을, 정신적으로는 연인을, 직업적으로는 가장 든든한 기획자를 잃은 3중의 상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주변의 위로다. 많은 사람들의 위로는 그에게 오히려 더 깊은 상처가 된다. 사실 망자가 좋은 곳으로(천국이나 극락) 갔을 것이라는 둥, 시간이 약이라는 둥, 힘을 내서 빨리 다시 일어서라는 둥… 우리가 흔히 위로랍시고 하는 말들은 사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저자처럼 섬세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상처를 할퀴는 행위가 된다. 저자는 3부에서 이런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것이 내게는 속이 시원했다. 사실 나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적절하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다. 우물쭈물하다가 상투적인 말을 되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실제 우리는 이런 경우, 보통 위로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어떤 말을 한다. 즉 상대방이 진짜 위로를 받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위로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말은 십중팔구 위로가 아니라 상처를 준다. 위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고, 세월이 흘러 상실의 상처라 아물고…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그렇게 사랑은 우리에게 남아있고, 그렇게 삶을 지탱한다.


그러므로 역사가 끝난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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