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가 녹아있는 공간
몇달전 나간 여행에서 야심 차게 카메라 썼는데 멋모르고 실력 키우겠다며 전부 수동으로 했다. 번들렌즈로 노출 0 맞춘다고 셔터스피드, 조리개, ISO 전부 수동으로 조작하려니 사진 한 장 찍는데 고려시대 화포 쏘는 시간 걸렸다. 스냅샷 찍어야 할 타이밍 다 놓치고 사진도 손쓸 수 없이 뜨거나 어두운 게 대부분이었다. 그때 나를 만나면, 노출 0 맞출 필요 없고 셔터스피드 적당히 높게 올리고 ISO는 자동으로 두라 하고 싶다. 그리고 픽쳐프로파일 조금만 건드려라고.
실망해 지내다 35mm 단렌즈를 구해 동네 밖으로 나왔다.
북촌 주변은 이미지가 방대하다. 센터와 박물관만 들렸는데 고려하지 않았던 CPL 필터를 사기로 결심한 하루였다. 나와 비상구등이 찍혀 사진을 많이 망쳤다. 반사를 활용하면 의도하지 않은 맘에 드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찍기 전 반사 이미지를 쓸지 말지 판단하려면 역시 경험과 지식이 더 필요하다.
사진 및 카메라 초보라 이 매거진만큼은 댓글 허용해 조언과 정보를 구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악플이나 무플이 무서워 게시만 하기로 했다. 여전히 카메라 꺼내기 부담스럽고 부자연스럽다. 도착해 아이폰으로 먼저 찍었다. 입구 오른편 벤치에서 땀 식히며 덮개겸 번들렌즈를 35mm 단렌즈로 바꾸고 사진 찍었다.
이해찬 전 이사장 인터뷰로 부지매입 사연을 들어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작았다. 당연히 여기서 규모가 척도는 아니다. 문명의 끝자락에 와서도 인본은 여전히 들풀로 퍼져있고 숲이 되기에 아득하다. 외관 벽돌처럼 모두가 힘 모아 세운 곳 마주하니 뿌듯하면서 서글프다.
센터 중앙은 '노무현의 서재'로 3층은 카페, 2층은 도서관 열람실 같았다. 여느 카페처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즐겁게 얘기하는 사람들 있다. 대부분 이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편하고 밝아 보였고 나머지는 나처럼 숫기 없이 잠시 머물다 자리 떴지만 계단식 좌석에 앉아 책보는 사람들도 있어 아늑하며 고상한 정취 있다.
2층 복도 책장에, 이틀 전부터 배송 지연소동 겪어 아직 못 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이 비치되어 있었다. 배송 지연되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 않고 그 책 안 어디로 갔을 거다. 대답 없는 택배기사로 인해 일정을 바꿔 찾은 노무현시민센터는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느낌이 좋다.
관계자인지 손님인지 삼삼오오 줄곧 열리는 승강기에 사람들이 나온다. 행정사무실로 알았던 2층 공간은 알고 보니 강의실이었다. 훌륭한 사회자본이자 개방 공동체로 느껴지는 것이 일상에서 타자에게 느끼는 정서와 좋은 의미로 다르다. 무시하지도 경계하지도 과한 친절, 일방적 강요나 숨긴 목적도 없는, 나도 타자도 불편 없이 있고 싶을 때 있어도 되는 딱, 톨레랑스가 녹아있는 곳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이 있고 북촌 쪽 창덕궁 곁에 센터가 있다. 관광 명소와 가깝고 분위기 좋아 커피 마시러 와도 좋겠다. 자연 채광을 잘 다룬 건물이라 실내는 밝고 맑다. 창 안쪽 맞은편 가장자리는 따뜻하고 포근한 톤 조명으로 우아하게 꾸몄다. 혼자 과한 해석인가 싶지만, 인물에 대한 메타포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만약 공간을 연출한 사람이 의도한 메시지였다면 충분히 전해졌다. 건축 모르는데, 여기 와 보니 건축도 언어 같다.
여기는 다시 찾고 싶고 더 있고 싶은 공간이다. 집 가까운 사람 부럽다. B1층에 '노무현의 길'이 있다는데 못 갔다. 그의 동지들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웃지만, 아무 인연 없던 난 아직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