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니스프리, 그곳에 작은 오두막은 지었을까요?

- 런던 그리고 아일랜드의 슬라이고. 예이츠 '작은 호수섬 이니스프리'

by 가을에 내리는 눈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모든 게 변한다' 신라의 선덕여왕이 한 말이란다. 요는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가에 있다. 젊었을 때 이 말을 처음 접하고 이 안에 담긴 무서운 다자 역학관계에 감탄한 적이 있다. 자, 나와 일곱 명의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그들과의 관계 변화, 개선을 바라고 있었다. 내가 한 일은 고작 그들이 먼저 그 변화의 단초를 제공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가 바라던 대로 변화의 행동을 시작했다. 이제 나와 그와의 관계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겨우 한 사람과의 변화가 끝났다. 아직도 여섯 건이나 남았다.


그런데 그 변화에 대한 나의 바람과 의지가 정말 강하다면, 그들이 변화하기를 그냥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변화하면 어떨까? 그 효과는 즉각적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변하면 그 순간 나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일곱 명 모두와의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내가 먼저 시작한 변화의 시도, 나의 변화 단 하나, 반면 나는 그냥 있고 상대방이 모두 변화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들 일곱 명이 모두 변화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무려 일곱 번의 개별적 변화가 일어나야 비로소 나와의 관계에서 변화가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살짝 다른 얘기 하나 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무언가 바뀌고 개선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일단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한다. 누워있었든 앉아있었든 무조건 일어서야 한다. 둘째, 그리고는 원하는 그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시작이다. 최소한이다.


예이츠가 이 시의 첫머리를 '나는 분연히 일어나서 가리라' (I will arise and go)라는 구절로 시작한 이유다. 어디서 많이 본 구절 같지 않은가? 성경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돌아온 탕자' 이야기, 성경에 보면 둘째 아들 (탕자)이 온갖 고생 끝에 결국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는 일어나서 갈 거야, 내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갈 거야!'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나온다.


런던의 최대 중심가 플릿 스트리트 길 한가운데서 예이츠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제는 일어서서 갈 거야,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저기 작은 호수섬 이니스프리로!' 이 섬은 아일랜드의 북서쪽 슬라이고 카운티에 있는 호수 안에 있다. 그곳에는 모두 20개 정도의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니스프리다. 이 섬에 얽힌 전설 때문에 흥미를 느끼고 이 섬을 택했다는 말이 있고, '-프리'로 끝나는 그 부분 때문에 택했다는 설도 있다. 이제는 예이츠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이 호수 자체가 작고, 이 섬 이니스프리는 굉장히 작다. 물론 굳이 그곳에 오두막을 지으려면 지을 수야 있는 면적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 섬의 지형이 대단히 울퉁불퉁해서, 웬만한 사전 정지 작업이 없으면 아예 무언가를 지을 수 없단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그곳은 엄격한 자연보호구역이라 건축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좀 맥빠지는 소리를 보태자면, 시를 통해 머릿속에 지으니 그렇지 사실 그곳에 오두막을 지은 들 어찌 살겠나? 전기도 없고 물도 또한 제대로 없을 것이고 호수 한가운데의 나무 빽빽한 그곳, 모기는 또 어찌할 것인가? 재를 뿌리고 초를 치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시인은 그걸 모르겠나? 어릴 적 자기 고향인 그곳을? 그저 각박한 도시 생활, 숨이 막히는 경쟁 사회 속에서의 하루하루, 시인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 것이다. 오두막을 짓고 못 짓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아니 짓지 않으면 또 어떤가? 그저 그런 마음의 고향, 영혼의 평온을 위한 이상향이 내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에서의 그 돌아온 탕자가 부러웠다. 돌아갈 곳이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 스토리대로라면 나 또한 탕자가 되어도 좋겠다 그런 생각도 했다. 돌아갈 아버지의 집이 있는 그,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는 예이츠, 두 사람 다 행복한 사람들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은 슬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이츠는 아주 젊은 시절에 쓴 시들이 나이 들어 쓴 것들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준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 시는 그가 불과 27세 때 쓴 것이고, '당신이 나이 들면 (When You Are Old)'은 26세 때 쓴 것이다. 젊음의 힘은 시에서까지 그 존재감을 떨치나? 그런가? 오호통재라! 하긴 아르튀르 랭보도 그랬다. 그의 나이 58세 때 아일랜드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예이츠, 어쩌면 이 시 한 편이 일찌감치 그 초석을 깔아준 것인지도 모른다. 저 먼 나라 시인의 시를, 대한민국 국어 교과서에 실을 정도라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 시를 읽었겠나?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와는 또 그 결을 달리한다. 시의 힘이라니! 시인의 그 위대함이라니!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는 이런 주제를 다른 적이 있다. '러시아가 특히 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 '아일랜드에서 문학과 대중 음악이 그렇게 강세를 보이는 이유나 배경은?' / '영국에는 어떤 이유에서 뛰어난 팝 뮤지션들이 그리 많을까? 비틀즈, 비지스, 엘튼 존, 그룹 퀸, 아델...' 우울한 날씨 탓일까? 늘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고, 높은 산 하나 없이 사방이 양떼 가득한 구릉지대이고, 뭐 특별한 밤문화도 없고 그저 펍에 모여 기니스 흑맥주나 마시고, 얼핏 스치듯 보면 음식 또한 맛없는 피시앤칩스가 다인 것 같고. 그런가?


런던에서 중부 랭카셔를 지나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로 향하는 긴 길을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거의 수직의 낮은 산비탈에서 치열하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이 보인다. 양들이 목초를 뜯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그 풀 뜯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정말 진심으로 풀을 뜯는다, 베어 무는 것도 아니고 당겨서 뽑아먹는 것도 아니고, 정말 절묘하게 당기듯 똑똑 끊어먹는다. 그 소리가 참으로 신기했다. 진심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비가 자주 내리면 어떠랴? 음식이 별로 맛이 없으면 또 어떠랴? 체다 치즈가 특히 맛있고 기니스 흑맥주가 맛있고 빵이 맛이 있고 비프 스테이크 또한 아주 맛있다. 스테이크용 고기로 유명한 블랙 앵거스는 원래 스코트랜드가 그 원산지다. 지금은 미국을 포함한 아무데서나 나오지만. 함께 공부하던 케임브리지 공대 나온 친구가 만들어준 사과조림 소스와 함께 먹는 푹 삶은 돼지고기, 머그 컵에 담아온 따끈하게 데운 적포도주 한 잔,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늦가을 내리는 빗속의 만찬은 그렇게 맛 있었다. 새로운 음식의 맛이고 지금 떠올리는 추억 그 맛이리라.


조금 옆으로 새는 느낌이라구요? 아닙니다, 원래 이러려고 했어요. 명색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인데, 쉽게 길을 잃지는 않는답니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자유쯤은 있어야지요? 제가 다른 글에서 시와 음악, 그림은 같이 간다고 했지만, 거기에 와인과 음식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가 함께 하면 뭐 끝난 게임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오늘 제 이 글을 읽으시고 아주 잠깐이라도 기분 좋으셨으면 된 것 아닌가요? 부디 그러셨기를!


자 그럼, 제가 번역한 예이츠의 시 한 번 읽어보세요. 나쁘지 않은 번역일 겁니다. 시는 결국은 읽는 자의 것입니다. 느끼고 즐거워하고 소화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것이지요!


작은 호수섬 이니스프리 (The Lake Isle of Inisfree)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나는 지금의 이 일상을 털어버리고 일어나 이제는 떠나리라, 그래 호수섬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진흙과 나뭇가지를 엮어 작은 오두막 하나를 그곳에 짓고 밭에는 콩을 아홉 줄 심고

꿀벌들을 위한 벌통도 하나 둘 것이다. 그리고는 벌들의 소리 요란한 그 탁 트인 숲에서 혼자 살리라.


분명 나는 그곳에서 어느 정도는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로움이란 조금씩 천천히 물방울 떨어지듯 그리 오는 것이니

여러 겹 아침을 여는 장막에서 그리고 귀뚜라미들이 노래하는 은밀하고 구석진 곳에서 그렇게 조금씩

한밤중에는 모든 것들이 그저 희미하게 보이는, 하지만 이어지는 한낮에는 온통 보랏빛이 타오르고

그리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온 붉은 가슴 방울새들의 화려한 날개짓으로 가득한 그곳


나는 이제는 정말 힘껏 일어나서 갈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항상 밤에도 또 낮에도 호수 가장자리로 찰싹찰싹 낮은 소리로 밀려오는 그 호수의

물결치는 소리를 이리 듣고 있으니

도심의 도로에서도 혹은 회색빛 포장된 길 위에 서 있을 때도

나는 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그 소리를 듣는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keyword
이전 09화'꽃뱀과 국수', 지금 당신의 상상력을 시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