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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뱀과 국수', 지금 당신의 상상력을 시험해 보세요

- 생각의 힘, 우리네 음식의 추억. 백석 '국수'

by 가을에 내리는 눈

영국에서 공부할 때다. 첫 학기 수업 첫날부터 나는 동료 학생들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필수 과목 중에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이 들어 있었는데 그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4명이 한 팀이 된 팀별 프로젝트의 진행, 그 과정의 수시 발표와 최종 사업계획서 제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첫 주가 끝나기 전 나는 드디어 '나의 팀' 구성을 마무리했다. 고맙게도 다른 세 명 모두 흔쾌히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알란, 케임브리지 공대 출신의 영국인/야스 (야사시이), 동경대 도시공학 전공의 일본인/로버트, 홍콩 출신의 사업가, 그리고 나.


다양한 구상과 논의 끝에 우리가 선정한 사업 계획은 작은 동양 국수집 (Noodle House)이었다. 일본, 우동과 소바를 비롯한 국수의 천국, 홍콩 또한 다양한 국수의 나라, 한국도 물론 빠질 수 없는 국수 강국. 영국? 사실 맛있는 음식 문화가 그리 발달한 나라는 아니지만 (오죽하면 그 맛없는 '피시앤칩스'가 그 나라 대표 음식이겠나, 물론 나름의 사정은 있지만!) 그들 또한 일상 속에서 다양한 파스타를 즐기고 있으니까. 특히 그 무렵 영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 또한 크게 주목받았다.


우선 점포 후보지를 알아본다. 리테일은 결국 위치가 다 아닌가? 유력 후보지에 대한 시간대별 유동 인구의 조사, 실제 임차 비용을 기초로 한 운영 비용의 산출, 마진과 예상 매출액을 고려한 손익의 계산, 손익분기점 도달의 시기 예측, 다행스럽게도 수익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사업 타당성은 긍정적이었다. 3주 정도 현장에 나가서 유동 인구 등 시장 조사를 하는 일은 주로 내가 나서서 맡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몸과 절대적 시간을 을 쓰는 일 (그때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그 배인 48시간이었어도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을 그런 때였다!)은 내가 먼저 손들고 나서자, 그게 평소의 내 신조였다. 그것으로 일단 하나는 먹고 들어가는 것이니까!


가족을 위한 기숙사에 살고 있던 나의 거처가 우리들의 회사였다. 메뉴의 구성, 그것들의 시식 또한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모두들 아내가 준비한 국수와 김밥 등 메인 메뉴를 좋아했다. 본토 영국인 알란도 참 좋아했다. 지금도 큰 키의 그가 여전히 서툴게, 끙끙 거리며 젓가락질을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서 식당에는 젓가락과 함께 포크와 숟가락도 기본 세팅으로 함께 놓기로 했다. 고객들과의 르포 형성 (초기 원만한 관계의 설정)을 위한 기회로, 메뉴 설명 때 젓가락 사용법에 대해 준비한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동선도 있었다. 실제 오픈만 하지 않았지 모든 것은 이처럼 거의 리얼, 실전이었다. 과정 끝 마지막 시간, 우리들의 프로젝트는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 팀원 모두 크게 만족하며 기뻐했다.


족발이 자기의 소울 푸드라고 말하는 젊은 내 고마운 동무가 있다. 내게는 어머니의 국수가 내 영혼의 음식이다. 정말 단순화한 중면의 잔치국수, 긴 홍두깨로 직접 밀고 바닥에 밀가루를 살짝 깐 커다란 둥근 상에 꽉 차게 펼쳐 접은 후 큰 부엌 칼로 적절한 두께 그리고 최적의 넓이로 쓱쓱 단번에 썰어낸 조금은 넓은 면의 칼국수. 멸치 국물에 애호박 숭숭 썰어 넣은 담백 칼국수, 고기국물에 조금은 걸쭉하게 끓여낸 고기국수, 맑은 된장 국물 혹은 칼칼한 고추장 국물에 끓인 장칼국수, 그리고 섬섬하게 끓인 김칫국에 넣어먹는 국수까지. 지금은 그 맛을 볼 수 없는 어머니의 음식이니 더욱 입맛이 다져진다.


위의 기업가 프로젝트 최종 프리젠테이션 때 내가 그 자리의 모든 학생들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동양에서는 이 길고 가는 국수의 면은 장수를 상징한다고, 끊지 않고 연이어 후룩후룩 혹은 훅훅 빨아들이듯 먹는 것이 묘미이자 하나의 덕목이라고, 그때는 소리를 조금 내도 괜찮다고. 음식점에서야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그렇겠지만, 내 집에서야 뭐 마음껏 소리 내며 흡입하듯 먹는 그 맛있는 국수 혹은 라면!


오늘날 일반화된 세계인의 국수 파스타, 이태리가 그 원조라 하겠지만 중국 송나라에서 시작된 국수가 그들과 교역하던 무슬림들에게 전해지고 그후 그들이 지배하게 된 시칠리아까지 전파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무슬림들은 오늘날 국수를 그리 즐겨 먹지는 않는단다. 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그들의 섭생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젓가락, 포크 혹은 숟가락으로 국수를 먹을 수는 있지만 글쎄 뿌실리 같은 짧고 단단한 파스타조차 사실 손으로 집어먹기는 좀 그렇지 않겠나? 비슷한 이유에서 인도에서도 국수 먹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어이쿠야, 그 맛있는 국수를!


이제 시로 들어갈 시간이다. 시인 백석은 미식가 중의 미식가다. 그의 시 속에는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그의 시 속에 나오는 음식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쓴 식품영양학과 전공인도 있다지 않은가? 내가 그의 시를 즐겨 자주 읽는 또 다른 이유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어릴 적 먹었던 그리고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맛과 모양이 그대로 그려지는 음식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추억들도 함께!


그가 기억하는 어릴 적 국수 먹는 날은 잔칫날이다. 그 옛날 국수는 면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육수 내는 일도 사실 수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시절 국수는 당연히 특별한 날, 좋은 날, 잔칫날에나 먹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다.


육수를 위한 꿩사냥을 한다. 꿩고기는 기름이 거의 없다. 그러니 그 국물 또한 참으로 담백하다. 국수의 육수로 굳이 꿩고기를 쓰는 이유다. 엄마는 마당 한편에 지어놓은 김치 항아리 묻어둔 헛간으로 간다. 척박한 산비탈 그나마 해가 잘 드는 평평하게 턱이 진 밭에서 자란 메밀로, 펄펄 물이 끓는 가마솥을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설치한 국수 뽑는 장치에서 힘을 주어 메밀 반죽을 아래로 꾹꾹 눌러 내리면, 그때 신기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를 만큼 신이 나는 그 광경, 드디어 예쁜 산무애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가늘고 작은, 조금은 귀여운 듯도 한 화려한 색깔의 꽃뱀이 그 몸을 이리저리 구불구불 굴리듯 그렇게 국수 가락이 뽑아져 나온다. 그리고는 이내 끓는 물 속으로 떨어져 삶긴다. 엄마는 얼른 건져내어 찬물에 헹구고 적당한 양으로 돌돌 말아 채반에 준비해 놓는다.


특히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 늦은 밤에 먹는 국수의 그 맛이라니! 아버지에게는 큰 사발 가득, 어린 내게는 작은 사발에 가득 그렇게 넉넉하게 담아 엄마는 하루 종일 힘들게 준비한 그 귀한 국수를 내어오신다. 신나는 순간이다. 얼마나 기다리던 것인지 마치 곰의 등에 업혀서 자랐다는 그 옛날 시인의 할머니가 다시 살아오신 듯, 아니면 집에서 한번 재채기라도 할 것 같으면 그 소리가 저 산너머 마을까지 들렸다는 기골이 장대한 큰아버지가 오신 듯 그리도 반갑게!


희끄무레 (국산 유기농 메밀 100%니까!)한 면의 빛깔, 뚝뚝 쉽게 끊어지는 (이것이 메밀 국수의 참맛이다!) 부드러운 식감, 뭐 특별한 고명도 많이 없고 간이 세지 않은 (이북 음식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 맛. 함께 먹는, 마치 한겨울 강의 얼음이 더 단단한 밀도로 얼기 위해 쩡쩡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내듯 그렇게 이가 시린 동치미 국물, 싱싱한 산꿩의 고기, 어른들의 담배냄새와 상큼한 식초의 냄새, 거기에 수육을 삶는 따뜻하고 구수한 냄새까지, 갈대로 만든 자리가 깔려있는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특히 제맛인 이 국수!


함박눈 내리는 평안도 어느 산골 늦은 겨울밤, 이 고요함, 서로 위하고 챙기는 살뜰한 마을 사람들. 참으로 예스럽고, 속된 모습 없는 담담하고 담백한 이 소박함이라니!


을지로 3가 우래옥 본점의 그 이층 자리, 2-3일 전 예약때 미리 주문한 생갈비 2인분을 먼저 먹는다. 여전히 숨이 살아있는 배추 겉절이. 물냉면 하나를 시키고 두 그릇으로 나누어달라고 한다, 그게 과하지 않은 양이다. 이때는 그 좋아하는 드라이 레드 와인도 함께 마시지 않는다, 혹여 그 섬세한 음식의 맛들을 다치게 할까 봐. 물론 저녁 시간 고기를 중점적으로 먹을 때는 또 다른 얘기다. 그때는 와인이 꼭 필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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