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과 경험의 가치, 그것에 대한 존중. 성숙. 이성부 '스승'
내가 지금 거의 매일 쓰고 있는 이런 글들을 어느 날 어느 귀인이 자기가 돈을 주고 사겠단다. 글 한 편에 백 불씩 (나는 그 반인 오십 불이라도 좋은데? 물론 우선 글이 많이 다듬어지고 그 질이 훨씬 좋아져야 하겠지?), 편 수에 별다른 제한 없이. 와우! 그런데 왜?
그는 유럽의 귀족이다. 당연 돈도 많고 취미 또한 다양하고 고상하다. 우연히 내 글을 보고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안을 얻게 되었단다. 자신과 소위 코드가 맞는 것을 느꼈다나? 이런 고마울 데가! 당연 글에 대한 모든 소유권은 그가 갖는다. 나야 오불관언, 구워 먹든 삶아 먹든, 그의 것이다. 딜!
혼자 읽고 싶단다, 그리고 후일 따로 출판해서 하드본으로도 소장할 것이란다. 나의 사인과 자신의 증정의 말을 첨부해서 지인들에게도 귀한 날에 줄 것이란다. 어찌 이런 기적같은 일이 내게?
내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우선 '다시' 경제활동을 한다는 자부심과 긍지.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아들 녀석에게 당당하게 자랑할 큰 것 하나를 손에 쥐는 것이 된다. 그가 나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앞으로의 아버지 삶의 새로운 모습을 짐작할 것이니까!
또한 한 달에 '추가적인' 돈 천 불이면 작금의 내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다시 많아진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 그림을 보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르미따쥬 박물관에도 갈 수 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도 매년 다시 가게 될 것이다. 프랑스 파리 외각에 있는 피카소 뮤지움에도 갈 것이다. 아예 한 달 살이를 하며 매일 이른 아침 동네 빵집에서 나오는 닭가슴살 찢어지는 느낌의 바게트를 즐길 것이다. 파리지앵들처럼 비 내리는 날 노천 카페에 앉아 쇼팽의 '프렐류드' (Prelude 전주곡, 그중 특히 '빗방울')를 들을 것이다. 파리의 가을을 즐길 것이다.
버건디 지역으로 가서 우리나라 어느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실제로 그 양반이 마시고 나서 사인을 했다는 그 와인 병도 보았다, 내가 즐겨 가던 압구정동 집앞 와인 샵에서) 로마네 꽁티 그 포도밭에도 다시 한번 가볼 것이다. 키작은 단단하게 생긴 피노누아 포도나무에 여전히 달려있을 아주 떫은, 당찬 작은 구슬 모양의 껍질 두꺼운 포도도 입에 넣어보고.
가끔 이런 턱도 없는 몽상을 한다. 그러나 결코 파괴적이거나 소모적인 공상 혹은 망상은 아니다. 이런 꿈같은 생각이 그래도 나를 잠시나마 흐뭇하게 한다. 뭐 굳이 나쁜 사고의 유희는 아니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툴이 좋은 것이다.
법에 보면 '표현되지 않은 동기는 처벌되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다. 그저 내 머릿속에서 나 혼자만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대학 때 일찌기 이런 '지적 소유권'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를 파고 든 친구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분야는 아직 덜 발전된 학문의 영역이었다. 그 친구는 그것으로 결국 대학교수가 되었다. 내 지도교수의 뒤를 이어 그 분야 권위자가 되었다. 어느 여름 장마철,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나의 집으로 찾아와 막스 부르흐의 귀한 LP판 하나를 불쑥 내게 내밀던 그. 아까운 나이에 일찍 더 좋은 세상으로 갔다.
그와 우리들의 스승의 이름 대신 이제는 자기 이름으로만 처음 나온 판본이라고 내게 슬쩍 내밀던 그 두꺼운 전공 서적 한 권.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 '순이'였다)가 집을 나갔다고 어찌나 슬퍼하던지. 몇 달 하버드 연수를 갔다 왔다고 내게 주던 마크 찍힌 천가방. 그와의 많은 추억이 갑자기 소환되는 순간이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서는 책 한 권만 제대로 내면 평생 웬만큼 먹고 산다고. 또 이런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미국 유명 출판사가 출간한 책에서 오타를 하나라도 찾아서 보고하면 큰 금액의 보상이 따른다고.
지금도 세계의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꼭 읽는 책 중에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라는 단편이 있다. 미국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소설이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씩 매년 꾸준하게 판매된단다. 이 책이 195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74년의 세월이 흘렀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누적 판매 부수가 거의 7천만 부에 달한다. 권당 천 원의 로열티가 있다면 무려 700억 원의 수입이다. 가족들은 좋겠군!
아들 녀석 세컨더리 스쿨 9학년 때 그와 함께 나도 다시 읽고 그의 독후감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 기억이 있다. 큰 글러브를 끼고 호밀밭에 숨어 내내 세상을 감시하던 주인공. 자신이 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그런 몽상 속 이상과 과욕을 가지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병적인 추억, 그 속에서 길러진 현실 속 괴리. 그것이 그의 그런 병적인 집착과 공상 속 행동을 현실로 옮기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는 그 호밀밭에서 빨간색 모자를 쓰고 큼지막한 글로브를 끼고 저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건져 올리려고 노심초사하고 있을까?
20년 전쯤 전공서적 한 권을 출간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선인세로 5백만 원정도 받은 것 같다. 출판사측에서는 그 책을 토대로 동영상 이러닝 프로그램도 제작했다. 물론 내가 깊게 관여했다. 시장의 반응은 좋았다. 오히려 이 이러닝 프로젝트를 통한 수입이 좋았다.
누군가의 지적 창조물 혹은 지적인 활동의 생산물이, 이 세상 많은 사람들 아니 누군가에게는 (내 몽상 속 그 유럽 귀족처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그런 존재로 여겨지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누군가의 지적 경험의 축적물이, 그리고 그런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가진 그런 존재가 세상에서 할 일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보게 보면 참으로 좋겠다. 꼭 나의 세대가 아니더라도!
로마제국에서 충분한 명예와 금전적 보상의 의미 있는 대우를 받으며 귀족 자제들의 스승으로 남은 삶을 고귀하게 보냈던 그리스의 많은 지식인들이 부럽다. 내가 나이 들고부터는 늘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의 시를 본다. 시인이 자신의 시 스승 고 김현승선생을 그리며 쓴 시다.
스승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지금도 그 옛날 당신이 태어난 평양 어딘가 친구 집이나 알던 마을에 계실 것이라고. 그리운 마음을 애써 참으며 그리 표현한다. 몇 달 보지 못한 남쪽에 있는 자식들 걱정도 하실 것이고, 이제는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는 이 작은 땅덩어리를 하늘에 부끄러워 하시면서 그렇게. 그래서 지금도 늘 고개 숙이고 걸으실 나의 스승.
결코 이 세상 떠나신 것은 아니라 애써 자신을 위로한다. 금새 또 일어나 어디론가 다시 갈 채비를 하실 것 같다고. 분명 그러실 것이라고. 그 좋아하시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찾아, 그리고 영혼의 자유를 찾아서 어느 동구 밖에 서 계실 것 같다고.
# 고 김현승시인은 커피를 그렇게나 사랑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호가 '다형'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 귀에 참으로 익숙한 시 '가을의 기도'를 쓰신 분. 오늘 시의 시인은 김현승시인에게 사사하였다.
# 조만간 다른 글에서 소개할 목적으로 '가을의 기도'에 대한 묵상은 이미 끝냈다. 아름답고 그 사유의 깊이가 대단한 시다. 고 김현승시인이 44세의 나이에 쓰신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