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년을 기다릴 수 있는 민들레, 당신은?

- 삶은, 꿈과 희망은 이어진다. 줄스 라포르그 '슬픈, 참으로 슬픈'

by 가을에 내리는 눈

'민들레 홀씨 되어',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 뻥 뚫리게 시원한 가수의 목소리가 좋고 가사 또한 제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민들레는 꽃을 피우는 유성생식의 식물이니 무성생식 식물들의 생식 세포인 홀씨 혹은 포자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고, 오히려 홑씨가 맞다고. 그렇게들 얘기하지요? 그럼에도 저는 이 노래에서는 홀씨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홀로 된 씨앗'이라는 철학적 의미도 내포한 것이 되구요! 어머니 곁을 떠나서, 그동안 함께 다닥다닥 붙어 있던 많은 형제들과도 작별을 고하고 씨앗 하나에 자신의 날개를 달고 그저 바람이 몰아가는 그 어느 곳으로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아기 민들레의 씨앗 하나! 비로소 자신의 시대, 자기의 삶을 찾아 자신도 모르는, 아마도 바람조차도 모르는 그 어딘가로 가는 것이겠지요?


아 참, 이런 민들레의 씨앗은 7만 년이 지나도 발아에 성공한다는 것 아세요? 대단하지요? 병아리처럼 샛노란 색깔의 수줍음 가득 혼자 고개 내민 그 작은 꽃의 대단한 생명력이라니! 물론 흰색 테두리에 가운데 부분만 노란 민들레도 있기는 해요. 뿌리가 굉장히 깊이 내리기 때문에 짓밟혀도 쉽게 죽지 않는답니다. 민들레의 뿌리는 한약재로 쓰고 차로도 만들어 마시고, 그 쌉쌀한 맛이 고기 먹을 때 쌈이나 샐러드로 함께 먹어도 참 좋지요. 서양에서는 꽃을 사용해서 잼을 만들기도 합니다. 맛과 향이 독특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해요. 꽃말이 행복과 감사라는 것도 저는 좋아요. 저의 이번 글에서 민들레가 그 제목으로 우뚝 자리잡은 이유를 이제 짐작하시겠지요? 외유내강, 강한 생명력, 다양한 일상 속 쓰임새, 자유로운 영혼, 늘 현재 자신이 손에 쥔 그 작은 행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존재...


본격적으로 오늘 시 얘기를 해볼까요? 슬퍼요, 네 저는 지금 많이 슬픔니다. 그런데 그 슬픔이 나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내가 아무 것도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슬픔이 아닌 그런 순간을 맛본 적이 있나요? 네, 슬프지만 그래서 오히려 힘이 나고 의욕이 솟구치고, 권토중래 무엇인가를 새롭게 다시 해보게 만드는 그런 힘을 주는 슬픔? 공부를 위해 어머니와 헤어집니다. 버스의 유리 창가로 아니면 이제 막 출발하려는 기차 창문 밖으로, 애써 당신의 슬픔을 참으며 저를 위로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슬프지요, 하지만 떠나는 버스 혹은 출발하는 기차와 함께 그 순간 제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꼭 이루어보겠다는 각오가 가득 차 오릅니다. 네, 지금의 이런 슬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하루 빨리 어머니와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도 저는 제가 해야 할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저의 최선을 다해서 할 겁니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달을 보며 저를 생각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하는 소중한 분이 제게는 있으니까요. 지금의 슬픔요? 오히려 제게는 좋은 자극제이고 그저 잠시 지나가는, 뻔히 보이는 끝이 있는 일시적인 것이지요.


이 시, 제가 번역한 것을 한번 읽어 보세요. 이 시, 슬퍼요? 아니지요? 오히려 불끈 힘이 나지요?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도 유사한 분위기와 느낌, 그리고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결국은 긍정, 결국은 우리들에게 주는 힘과 응원의 메시지, 좋잖아요?


'비는 나의 창문을 거슬러 흐르고', 생각 없이 옆집의 누군가는 피아노로 간주곡 하나를 연주하고, 불어오는 바람도 무엇이 슬픈지 눈물 흘리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이고. 늦가을 무렵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가 그 공간적 배경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답답한 현실과 음울한 날씨,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의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리고 분연히 일어나 그렇게 하지요. 내가 알고 있는 그 작고 귀여운 노란 민들레가 새삼 내게 힘을 주지요. 고맙게도 거대한 우주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일깨우고 교화하고 교정합니다, 따뜻하게! 무섭고 엄한 얼굴이 아니라 다정스러운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근차근 우리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게, 납득할 수 있도록 그렇게! '그럼에도 (자주 슬프고 맥이 빠져도) 하나하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이곳 (현세, 우리네 지구)에서 다시 이어지게 하라고!'


거대한 존재 우주, 그 안의 수많은 별들. '스타 (stars)'가 스스로 타는 존재인 것은 아시지요? 태양 역시 별이지요. 하지만 지구는 별이 아닌 것도 아시지요? 별이었다면, 늘 스스로 타고 있는 존재였다면 지금 우리는 이곳 지구에 살고 있을 수 없지요. 지구는 스타가 아닙니다, 우리 또한 당연히 스타가 아닙니다. 그러니 늘 겸손하게, 언젠가는 그 끝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결코 그것을 잊지 말고, 그럼에도 언제나 희망을 갖고, 우리들의 노란 민들레를 다시 꽃피게 하면서 현세를 살아가면 될 일이겠지요?


우주 얘기가 나오니까 문득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연'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우주는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 (Natura naturans)' -본능적 필연성에 의한 창조의 힘을 가진 그 존재-에 해당할 것 같네요. 이 적극적으로, 스스로 다른 자연 ('소산적 자연' - Natura naturata)을 만들어내는 능산적 자연은 바로 신의 존재에 다름 아니라고 그는 말하지요. 신과 동격인 그의 자연, 아니 대자연, 그 우주가 늘 우리를 지켜보며 수시로 우리들의 가는 길을 바로잡아주고 교정시키고 격려하고 있다는 시인의 따뜻한 말, 그냥 힘이 나지 않나요? 뭐가 겁나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자연이, 신이 우리를 돕고 있는데? 우리들의 편인데?


줄스 라포르그는 우리가 잘 아는 화가 르노아르의 1881년 그림 '보트 위 파티에서의 점심 식사'의 모델이었습니다. 그저 이런 조금은 썰렁한 멘트로, 조금은 낯선 시인을 커버해 봅니다. 상징주의 시인으로 분류되고 우르구아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프랑스 시인이지요. 때로는 인상주의적인 시풍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27세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슬픈, 참으로 슬픈 일이지요! 시를 소개합니다.


슬픈, 참으로 슬픈 (Sad, Sad)

- 줄스 라포르그

나는 나의 불꽃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품을 애써 참는다.

바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비는 나의 창문을 거슬러 흐른다.

옆집에서는 피아노가 리토르넬로를 연주한다.

우리네 삶은 얼마나 슬픈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는가.


나는 현세를 향해 노래를 부른다, 그저 순간에 불과한 극히 작은 존재,

영원한 별들의 그 끝이 없는 화면 속에서,

그나마 희미한 우리의 눈길을 읽어내는 소수의 존재들을 향해,

냉혹하게 우리에게는 이미 닫혀버린 그 모든 것들을 향해.


그런데 우리들의 틀에 박힌 그 뻔한 행태라니! 항상 똑같은 코메디, 악행, 음울함, 역겨움.

그리고는 이내 사랑스러운 황금빛 민들레를 꽃피운다.


우주는 우리를 바로 잡아 알게 한다, 우리가 가진 그 어느 것도 끝까지 지속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하나하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이곳에서 다시 이어지게 하라고.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삶은 얼마나 슬픈 것인가!


<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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