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와 하루꼬, 그 둘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 보이는 봄. 그저 유행 혹은 변하는 인식? 헤르만 헤세 '봄'

by 가을에 내리는 눈

한국의 가을을 좋아합니다. 초장에 찍어먹는 기분 좋게 쌉싸름한 삶은 오가피순처럼, 살짝 쌀쌀한 늦은 시월의 어느 날, 비까지 내리면 분위기는 최고! 봄날의 5월도 사실 좋았지요. 하지만 이제 서울의 5월은 더 이상 봄이 아닙니다. 이미 그 소속을 바꾸어버린 한국의 5월!


겨울 내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많은 것들을 이제 다시 눈으로 볼 수 있는 계절, 그래서 봄이랍니다. '봄을 보다', 멋지지요? 용수철처럼 힘 있게 튀어 오르는 역동적인 기운, 혹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왕성한 생명의 흐름, 서양의 봄 스프링 (spring)입니다. 중국 한자의 봄 춘 자는, 뽕나무에 새순이 돋고 잎이 나고 하는 기쁨의 날을 그린 것이랍니다. 실크 로드 (Silk Road, 비단의 무역을 위한 길)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그 귀한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의 유일한 먹이 뽕나무에 싱싱한 잎이 돋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었겠어요?


일본 여성들의 이름에는 지금도 '-꼬'로 끝나는 예쁜 이름들이 많습니다. 아들 자, 그들에게는 자식 또는 아이 뭐 그런 의미랍니다. 하루꼬, 봄에 낳은 아이 또는 봄과 같은 아이라는 뜻이지요. 소리도 그 뜻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소망도 참으로 예쁘지요? 아사코 (아침과 같은 아이), 미치꼬 (아름다움과 지혜를 닮은 아이), 요시코 (어질고 현명한 아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루꼬를 우리말로 옮기면요? 그들과 똑같은 한자 '춘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소리와 느낌, 연관된 이미지는 왜 이리 다른가요? 유행이 무섭다, 우리들의 인식과 새롭게 형성된 관념이 무섭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1945년 한국에서 출생한 아이들의 이름 순위 4위에 올랐던 나름 유명 인기 이름입니다. 그러나 2008년 이름 통계 이후로는 단 6명, 그나마 2012년생을 끝으로 전무하며 현재 초등학생 이하에서는 이 이름을 가진 아이는 없답니다.


서양 사람들 또한 이 아름다운 봄을 주제로 한 이름을 많이 씁니다. 블로썸 (Blossom, 꽃이 피다)/준 (June, 6월, 봄의 끝자락이자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데이지 (Daisy, 봄을 대표하는 데이지 꽃)/아이리스 (Iris,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의 이름을 딴 것,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오로라 (Aurora, 로마 신화 속 새벽의 여신, 봄의 밝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자스민 (Jasmine, 봄에 피는 향기로운 꽃), 많고도 많지요.


헤르만 헤세, 거의 150년 전에 태어난 분이니 그때 독일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춥고 길었겠지요? 눈이 오고 음울하게 비가 내리고, 그 긴 겨울 시인이 기다린 따뜻한 봄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 시의 모든 구절이 쉽게 공감이 갈 겁니다. 푸른 하늘, 당신의 그 향기, 번쩍거림, 화려함, 홍조, 시인에게는 그저 흥분되고 신나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다시 온 봄도 이내 나를 기억하고는 반갑게 내게 손짓하네요? 가까이 오라고, 자기에게로 다가오라고! 시인의 기쁨과 흥분은 더욱 커졌겠지요?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두 팔과 두 다리에 그저 힘이 쑥 빠지고 마치 두려움과 공포에 떨듯 그렇게 기쁨에 떨고 있겠어요?


이렇듯 기뻐하던 그의 모습이 그의 또 다른 시 '구월' (September)에서는 정말 초상을 만난 사람처럼 그렇게 그려집니다. 물론 시 속에서 그의 정원에 등장하는 다른 존재들의 충격과 아쉬움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봄이, 여름이 그에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지요.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하지만 볼상 사납게 막무가내로 버티거나 악다구니를 쓰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그냥 한참을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 그렇게 미적거리다가, 특히 장미가 그래요, 결국은 사라지지요, 자연의 이치를 어찌 거스르겠어요?) 모습이 정말 리얼하고 안스럽고 그랬어요.


이 아름다운 시를 가사로 해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네 개의 마지막 노래' (Four Last Songs)라는 성악곡을 만들었습니다. 웅장하고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꼭. 저는 체코 출신의 소프라노 루치아 포프 (Lucia Popp) 버전을 좋아합니다.


한 인간의 목소리와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멋진 '콘체르타타' (Concertata, 두 개 이상의 악기가 서로 대립적으로, 대등하게 연주하는 악곡의 양식)를 보는 듯 감동적입니다.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아슬아슬하게 마치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첫 노래, 바로 이 시를 가사로 한 부분은 묘한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키지요.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싯다르타'/'나르치스와 골드문트'/'유리알 유희' 등 대단한 작품들이 많지요.


사실 우리들에게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의 시 세계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동양적 사고의 향취가 강하게 납니다. 아버지는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는 선교사였고, 외삼촌은 일본에서 활동한 교육가로 불교연구의 권위자였습니다. 당연 헤르만 헤세에게 불교를 포함한 동양 철학의 영향이 스며있겠지요.


그는 1946년 제게는 참으로 난해한 소설 '유리알 유희' (비즈 같은 유리 구슬을 가지고 하는 게임)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알몸 등산이 그의 취미였답니다. 그의 첫 번째 아내가 찍어준 알몸 등산 사진도 남아있습니다. 그의 나이 33세 때 스위스의 유명한 산악 지역 암덴 (Amden)에서 찍은 것인데, 엉덩이를 비롯한 뒷몸 전체가 나체로 그대로 드러난, 그가 서있는 절벽과 바위 사이로 난 나무들, 그와 동무하고 있는 희고 검은 구름이 배경으로 있는 아주 멋진 흑백사진입니다. 멋져요, 그 사진도 그 사진 속의 헤르만 헤세도. 물론 그의 그런 자유로운 정신도!


봄 (Spring)

-헤르만 헤세

둥근 천장을 가진 조금은 컴컴한 방에서 나는 당신의 나무들과 푸른 하늘과, 당신의 향기와

새들의 노래에 관해 오랜 시간 늘 꿈꿔왔지요

이제 당신은 번쩍거리는 화려함 속에 빛과 함께 홍조를 띠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네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놀라운 존재처럼 그렇게.

당신은 다시 나를 기억하고는 내게 가까이 오라고 다정하게 손짓합니다.

그 순간 나의 팔과 다리는 내게는 더없이 행복한 당신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그저 떨립니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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