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포효하자, 지금껏 한번도 하지 않은 그런 멋진. 정종배 '약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무신론자다. 자신의 편지에서 그는 이리 말한다. "내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고.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이렇게 쓰고 있다. '피실이격허' (상대방의 실한 곳 튼튼한 곳은 피하고 허한 곳, 그 약점을 공격하라). 살짝 방향을 돌려서 이 말을 살펴보면 이렇게도 들린다. '내가 약한 곳을 적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니 분명 그쪽으로 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그 점을 예상하고 오히려 어퍼컷을 복부에 강하게 먹여라. 그것이 결정타가 되게 그렇게. 반면 나의 강한 곳은 상대방도 쉽게 밀고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니 그 지점에서 시간을 벌어라. 그동안 서둘러 나의 약한 곳을 보강하고 대비책을 세우고, 그래도 시간과 여유가 조금 남으면 강한 곳에 성벽을 한 겹 더 쌓자!' 그저 내 해석이다.
갑자기 나를 잡아끌어 내리는 음울한 파괴적 감정이 나를 덮친다. 장이 고장난 틈을 타고 그동안에는 쥐 죽은 듯 그저 가만히 있던 다른 놈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마구 몰려온다. 감정과 육체가 한패가 되어 나를 공격한다. 한동안 없던 위기다. 위험한 순간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한 번 밀리면 어디까지 밀려나야 할 지 알 수 없다. 지금 내 반응이 중요하다. 열 번 맞더라도 한 번은 꼭 받아치는 그 한 방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름칠을 하고 닦고 조이고, 내가 상대방에게 보여줄 그것들을 준비한다. 나의 최선을 다한다. 그것 외에는 달리 이 위기를 헤쳐나갈 방도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궁즉통, 나는 이번에도 그 힘을 믿는다.
우리네 삶의 수많은 승부처에서 100 대 0은 없다. 간발의 차가 대부분이다. 57대 43 혹은 51대 49. 우선은 겨루는 서로가 또는 나와 맞서고 있는 상황이 다 나름의 준비라는 것을 하고 전투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저 손 놓고 당하는 경우는 없다, 나도 나의 상대방도! 각자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승부는 아주 작은 차이에서 결정된다. 비슷한 상대끼리 붙는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싶으면 아예 싸움을 걸어보지도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지레 포기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다. 지나고 보면 그때 그 순간 내가 혼자 성급하게 판단하고 아예 판 자체를 내려놓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사실 승패는 그때마다 간발의 차로 결정되었다. 그러니 내가 미리 포기하지 않고 나의 최선을 다했다면? 이겼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끝난 게임!
학교 다닐 때 미대에 엄청난 미인이 있었다. 다들 마음은 두었으나 그저 그림의 떡으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에이 내가 뭐 경쟁이 되겠어? 그리고 당연 이미 있겠지, 대단한 놈이!' 그 후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광경이 목도되었다. 아니 저런 인물이? 나도 시도는 해볼 것을? 그는 시도를 했고 그래서 얻었고, 우리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차이는 오직 그것! 어느 그룹 왕회장님의 '어이, 임자 해봤어?'가 떠오른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Low Roar (낮은 소리로 포효하라)'라는 그룹이 부른 'Give Up' (포기)이라는 곡이 있다. 뮤직 비디오를 보면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한번 들어보시라. 나이 들고 몸과 마음은 당연 늙어만 간다. 그러나 그냥 쉽게 '에이 이제 저 사람은 안 되겠어!' 그렇게 포기하지는 말아주세요.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살아보려, 살아내려고 애를 쓴답니다. 그래서 힘든 때에도 힘든 내색 하지 않아요. 그저 여전히 행복한 듯 그런 표정을 짓지요. 두렵거든요, 나의 슬픈 모습과 약한 모습을 보면 바로 저를 포기해버릴까 봐요.
'저를 포기하지는 말아주세요 (Don't give up on me)!' 이게 진짜 제목이지요. 가사를 제가 살짝 옮겨적어 보았어요. 이 그룹의 리드 싱어는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좋은 노래들이 아주 많습니다. 아일랜드 출신답게 노래와 가사에 깊이가 있어요. 듣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철학적 묵상을 요구하지요.
지난해 아들 녀석 사는 곳을 방문했을 때 아침 산책길에 거리에서 이런 플랭카드를 보았어요. 'Roar, never before!' - 포효하라, 온 힘을 다해 한번 소리 질러 봐라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힘찬 내 주장을! 희망을 얻고 자신감 가득한 상태로 산책을 마쳤지요. 좋았습니다,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때 그곳에서 그런 문구를 발견하다니! 우연의 형태로 온 또 하나의 필연? 이 또한 저의 '아전인수'입니다!
이제 시를 본다. '약점이 살아가는 자산이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자신감 가득 찬 말이다. 용기 있는 분이다.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뭐 창피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공격을 자초할까 그것이 걱정되는 까닭이다. 내게나 공격을 하는 사람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다. '약점을 털어놓고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는 시인의 그 여유가 나는 마냥 부럽다. 아무리 나를 내려놓는다 해도 글쎄,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나는 아직 멀은 듯하다.
약점
- 정종배
제 자랑하는 사람치고 반기는 사람 없고
제 약점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치고
주위에 사람 없는 경우는 드물다
약점이 살아가는 자산이다
무시와 비웃음을 당하는
한겨울 나목이 가을이면
단풍잎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듯
꼴찌가 되는 걸 두려워 않고
약점을 털어놓고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