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양말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by 오공부

잘 시간이다.
애들도 다 방 안으로 몰고 들어왔고 불도 껐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보통은 안방에 있어도 거실 화장실을 이용하지만 지금 방 문을 열면 아이들이 '와~' 하고 거실로 뛰어나갈 게 뻔하기 때문에 안방 화장실로 갔다.

안방 화장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서 곰팡이가 잘 생기기 때문에 아이들 목욕할 때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고 나면 환풍기를 꼭 돌리고 평소에 문을 자주 열어 환기시켜 주었다가 밤에 잘 때 닫는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에 문을 열면 수증기 냄새가 난다. 깜빡하고 문을 닫은 채 며칠 동안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곰팡이 냄새를 각오해야 한다.

안방 화장실 문을 여니 익숙한 목욕탕 냄새가 났다. 오늘따라 대야에는 물을 받아둔 채 그대로였고 바닥에는 젖은 양말이 놓여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아이들을 씻기다가 벗어둔 내 것이었다. 너무 피곤했고 안방을 나서면 아이들이 동요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소변만 보고 양말을 그대로 두고 나오고 싶었다. 화장실 밖으로만 꺼내 두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기에는 물에 흠뻑 젖어있어서 세탁실에 갖다 두지 않는 이상 그냥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소변을 보며 갈등했다. 다음 날이 되면 정신이 없어서 화장실의 젖은 양말 따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보다 시어머니가 먼저 발견하실 수도 있다. 어머니가 젖은 양말을 수습하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가만, 이건 단순히 양말을 치우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인생을 사는 방식에 대한 문제 아닐까.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앞에서 나는 일단 외면하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닌지. 우연히 나 대신 그 일을 수습하는 사람은 무슨 죄이며 나라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내가 지금 이 양말을 외면하고 잠든다면 훗날 나는 나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며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지. 나는 그러지 못했으면서 아이들에게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나의 망상이 거기까지 뻗고 나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대야에 있는 물을 버리고, 양말의 물기를 꼭 짜서 세탁실에 던져놓았다.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 잠시나마 환풍기도 켰다가 껐다. 그리고 다시 손을 씻고 화장실 문을 닫으며 전혀 잘 생각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자야 돼!'하고 힘주어 말한 뒤 이불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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