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왕따인가 봐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에서
며칠 전 시어머니 댁에서 TV를 보았다. (우리 집엔 TV가 없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나와서 보게 되었다. 2년 전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홀로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이다. 그때도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함께 있던 쌍둥이들이 봐도 전혀 지장이 없는 전체관람가이기에 나는 또다시 보게 되었다.
처음 볼 때와 두 번 볼 때 인상 깊은 장면은 다르다. 내가 처한 상황, 감정, 관심사에 맞게 내 마음에 닿는 대사와 인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리틀 포레스트'를 두 번째 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혜원의 과거 회상씬 중 하나이다.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동갑내기 고향 친구 재하와 함께 농사일을 하다가 자신도 기억 못 하는 초등학교 3학년 일 이야기를 꺼내는 재하의 말을 듣는다. (대사는 내가 기억하는 대로 적어 본다.)
"너 초등학교 3학년 때 잠깐 왕따 당했었잖아."
"내가?"
"기억 안 나? 그때 너 되게 멋있었는데."
"...?"
"오히려 네가 나머지 애들을 왕따 시키는 것 같았다니까."
".....(순간 멈칫하는 혜원의 독백 : 생각났다.)"
어느 여름날, 혜원의 엄마는 원피스를 만들어주기 위해 혜원의 몸에 천을 두르고 시침핀을 꽂고 있다. 그때 시무룩한 얼굴의 혜원이 한 마디 한다.
"엄마, 나 왕따인가 봐."
"왕따?"
"응, 애들이 내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노는 데도 안 끼워 줘."
그 말을 듣고 혜원의 엄마는 잠시 멍하다 이내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무시해버려."
"어떻게 무시를 해? 난 이렇게 속상한데!"
엄마의 말에 발끈 화를 내는 혜원.
"너 걔네들이 진~짜로 바라는 게 뭔 줄 알아? 바로 네가 속상한 거.
그러니까 네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 그게 바로 복수 성공!"
하면서 개구지게 웃는 혜원 엄마.
하지만 혜원은 쉽사리 따라 웃을 수 없다.
함께 놀 친구도 없이 홀로 툇마루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혜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는 달콤하고 근사한 디저트를 뚝딱 만들어 혜원의 기분을 풀어준다.
그때의 엄마를 떠올리며 혜원은 이렇게 독백한다.
"이럴 때 엄마는 마법사 같다.
내 기분을 이렇게 단숨에 바꿀 수 있는 마법사."
이 장면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의 어려움과 고통을 마주 했을 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가 아이보다 더 괴로워하고 심지어 화를 내서 아이의 마음을 몇 배로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별 일 아니라고 안심시켜주고,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어 어려움에 맞설 힘을 주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202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