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등원 길에, 걷다가 넘어져 팔꿈치에 피가 맺힌 첫째는 집으로 돌아가 약을 바르겠다며 악을 쓰고 울었다. 어린이집까지 조금밖에 안 남았으니 도착하면 약을 바르자고 하는 나의 말은 울음소리에 묻혔다. 나는 포기하고 그냥 앞서 걸었다. 잘 걸어오던 막내는 신호등 점멸 신호에 조급해진 엄마가 자신을 들쳐 메고 횡단보도를 건넜다는 사실에 분개해서 보도블록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럴 때 아이를 건드리면 싫다고 더 울기 때문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옆에서 첫째도 함께 합창으로 울고 있었다. 나는 좀 정신이 나간 것처럼 가만히 유모차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었다. 한 노부부가 지나가며 우리를 보았다. 할머니가 "아이구~ 그렇게 울면 엄마 힘들어."라고 막내에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자 막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음을 그쳤다. 그때 재빨리 아이를 일으켜 걷게 했다. 첫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조금 걷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친정 엄마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밴드였다. "이거 붙이고 한 번 안아주면 그칠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이거 저 주려고 걸어오신 거예요?" "응, 그냥 다 가져요." 하고 다시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상자를 열어 얼른 밴드를 첫째 팔꿈치에 붙여주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 셋 모두 평온한 얼굴이었다. 최악이다 싶은 상황에서 기적 같이 모르는 이의 관심으로 단숨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길을 가다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부모가 곤란해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모른 척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게 부모가 바라는 일일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이 유효한 상황이 실제로 많기는 하지만 열에 하나, 백에 하나, 나처럼 멘붕이 와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한 사람을 위해 오지랖 아줌마가 되야겠다고 다짐했다. 화가 난 아이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않고 말을 걸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있다면 '괜한 참견'이라고 욕을 먹을까 두렵더라도 일단 손을 내밀어 볼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듯이 기꺼이 그 마을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그 마을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