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3개월 차가 되니 동경하던 '물에 대한 초연함'이 나에게도 생긴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레인은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자유형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진도는 배영을 나가고 있을 때였다.
숨이 턱끝까지 차는 자유형을 하다가, 배영을 하니 천국 같았다. 얼굴이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아무 때나 쉬면서(선생님은 음파를 하라고 하셨지만) 수영을 할 수 있다니. 그러나 천국에 온 듯한 기분도 잠시, 무방비 상태였던 코와 입으로 한가득 물이 들어왔다. 수영을 배우며 꾸준히 물을 먹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언제 물을 먹는지 알면서, 최대한 물을 먹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금 먹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가 많은 양의 물을 먹은 것이다. 코와 입에 동시에 물이 들어가니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당황하니 발차기와 팔 돌리기도 되지 않아서 버둥거리다 가라앉았다.
물은 나만 조심한다고 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옆레인에서 파이팅 넘치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면, 하필 그게 접영이라면 내가 숨 쉬는 타이밍과 접영 팔 돌리기 타이밍이 맞아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숨 쉬기는커녕 물만 잔뜩 먹고 다시 얼굴을 물속에 담가야 한다. 살면서, 숨을 쉬려고 했는데 공기가 아니라 물만 들어오고 코와 입에 물이 들어간 채로 다시 얼굴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상황에 빠질 때가 있다. 한 번이면 좋겠지만 종종 있다. 죽어라 죽어라 하는 그런 상황이.
그럴 때,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이밍이 그랬을 뿐이다. 옆레인의 그날 진도를, 팔 돌리는 타이밍을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는 당황스럽고, 힘들지만 잠시 멈춰서 코와 입의 물을 빼내고 숨을 고르고 잠시 쉬는 것밖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살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야 한다. 그저 타이밍이 그랬을 뿐인데 '나는 안돼'라고 체념하고 계속해서 멈춰있다면 그다음은 없다.
'또 물을 먹으면 어쩌지?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옆레인에서 튀는 물은 어쩔 수가 없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나한테만 닥치는 불행이 아니고 누구나 만날 수 있는 해프닝이다. 그 해프닝을 겪고 계속 나아갈지, 거기서 멈출지는 나의 선택이다. 나는 가능하면 계속 나아가는 길을 택하고 싶다. 숨 고르기 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조바심 내지 않고, 괜찮으니 천천히 하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켜 주면서 그렇게 계속 앞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