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니까."
한창 업무 중일 때 사무실 창가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한쪽 귀를 사로잡았다. 팀장님이었다. 팀원 중 한 사람이 팀장님께 보고하던 도중 나온 말이었다. 팀장님은 늘 본인이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상대방 말을 수수깡 부러트리듯 뚝 잘랐다. 보고서를 열심히 설명하던 팀원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꽤 중요한 부분일 텐데 저렇게 설명을 멈춰도 되나 싶었다.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팀원의 끙끙 앓는 속이 느껴졌다.
우리 팀장님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다 내가 있는 곳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분이다. 팀의 수장이라지만 당연히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보고받을 때는 물론 일상 대화에서도 상대가 자신이 모르는 얘기를 시작하면 말을 끊었다. "아니, 그러니까"로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팀원들은 그의 특징을 파악한 뒤로는 무언가를 애써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행히 이런 경우가 아주 많지는 않아서 다들 그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그게 뭐야? 알려줘!"
어릴 적, 한 친구가 나에게 해맑게 물어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평소 아는 게 많은 친구였는데 이 친구도 모르는 게 있다니 신기했다. 그보다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로 질문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어릴 땐 모르는 게 있어도 아는 척하곤 했는데, 그 친구를 보고 스스로를 반성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살면서 그런 친구를 만났다는 게 참 행운이었다.
요즘엔 워낙 검색 플랫폼이 많이 발달해서 웬만한 궁금증은 혼자서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 찾아보지 않고 남에게 물어보기만 하는 사람을 핑프(핑거 프린세스)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서만 정보를 습득하다가는 잘못된 내용을 배울 수도 있고 확증편향에 빠질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가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언제든 "저는 모르는 분야입니다" 또는 "난 모르겠어" 같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그럴 땐 당황할 필요 없이 그냥 모르겠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배워 가면 된다.
모르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자. 그래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