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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소리

by 오행
배부른 소리네.

가볍게 툭 던져진 "쉴 때 뭐 해?"라는 질문에 너무 재미없는 대답을 해버렸나 보다. 글을 쓴다고 하기엔 쑥스러워서 삶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상대는 농담조였다. 여유가 있으니까 생각도 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코앞에 닥친 고민거리를 해결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거라고. 그런가? 싶었다.




첫 번째 문단까지 쓰고 글이 풀리지 않아 저장만 해 두고 있던 나에게 제법 큰일이 생겼다.

이런 식으로 글이 써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자세히 서술하자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간단히 줄여 보자면, 키우던 강아지에게 작은 사고가 있었다. 한동안은 강아지에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일은 마무리되었고 조금씩 일상을 되찾았다. 집필을 위해 브런치에 접속했을 때는 예약해 뒀던 스토리 몇 화가 발행된 후였다. 발행된 글을 다시 읽으며 내가 정말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배부른 소리나 했던 건가 싶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나아가서 헤아려 보니, 아니었다. 오히려 큰일을 겪는 동안 생각이 더 많아졌다. 어려움을 극복할 때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든지, 삶의 변곡점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신념이라든지.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됐다.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힘들 때마다 생각이 깊어졌던 것 같다. 배부른 사람들만 시간이 남아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니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 범접할 수 없이 깊은 이야기를 풀어낸 여러 철학자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철학자만큼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정신 차려 보니 서른일곱이었다'도 벌써 10화까지 연재했다. 그동안 나의 얄팍한 경험과 견해로 감히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아닌가 늘 고민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크고 작은 일을 통해 성장해 온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를 스스로 조금 높여 보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앞으로의 내가 어떤 글을 써 가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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