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롬쇠에 도착했다

by 오행

Day1

인천에서 출발해 코펜하겐에서 1박을 한 뒤 트롬쇠(Troms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피곤해서 잠시 잠에 들었다 깨니 트롬쇠에 다다르고 있었다. 비행기 창문 아래로 펼쳐진 설경에 정신을 못 차리며 사진을 찍고, 보고, 찍고, 보고, 하니 어느새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트롬쇠의 오후 세 시

규모가 작은 공항이라 짐은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바깥에 나오자마자 느껴진 건 생각보다 온화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사방에 쌓인 눈과 오후 3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둑한 하늘을 보고 있으니 진짜 북극권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나와 짝꿍이 머물렀던 숙소는 트롬쇠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트롬쇠 시내와는 거리가 있지만, 시내까지 버스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만에 내린 뒤 호텔까지 약간 걸어갔다. 사방이 눈과 빙판이라 밑창이 미끄럽지 않은 겨울용 부츠를 신었음에도 길이 꽤 미끄럽게 느껴졌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내내, 아 이곳은 배낭을 메고 와야 하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현지인들은 달랐다. 도로 위에 눈이 수북했는데 차들이 제법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모두가 운전 고수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얼마 전 눈길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인대를 다친 나에겐 입이 떡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역시 아주 빠른 걸음걸이로 척척 다니고 있었다. 그들에겐 일상인 모습이 나에겐 생경하게 다가왔다.

몇 번을 미끄러질 뻔하며 종종걸음으로 숙소에 다다랐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올라가니 오후 세 시 반 정도였다. 창밖은 공항을 나설 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남은 시간을 호텔에서만 보낼 순 없었기 때문에 짐만 풀고 숙소를 나섰다.

트롬쇠의 오후 세 시 반

트롬쇠는 버스가 이곳저곳 잘 다녀서 차량을 렌트하지 않아도 편했다. 눈이 쌓인 언덕과 골목을 능수능란하게 운전하는 기사님 덕분에 늘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 버스가 다니지 않을 땐 우버를 이용했다. 비싸긴 했지만 주요 관광지가 있는 트롬쇠가 있는 트롬쇠위아 섬은 크기가 작아서 아주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트롬쇠 북극대성당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트롬쇠 북극대성당이었다. 북유럽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이 성당에도 녹아들어 있었다. 안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는데 왜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난다. (과거의 나야, 안에도 구경하지 그랬어.)

성당 외부를 계속 둘러보고 있는데 짝꿍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성당 건너편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 보자고 제안했다.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 길로 많이 가고 있다며, 뭐라도 있을 거라고 날 설득했다. 그 얘기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먼저 가고 있던 여행자 두 명을 무작정 따라나섰다.

주택가를 따라 한참을 걷고 있는데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짝꿍이 급하게 구글 지도를 돌려 보더니 저쪽에 전망대(Tromsø city view point)가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지도를 확인하니 도보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시간이 늦은 것도 아니고 날이 그리 춥지도 않아서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주택가를 다 지나자 비탈진 산길이 등장했다. 경사가 꽤 가파르고 길 위엔 눈과 얼음이 뒤덮여 있었다. 가로등도 없었고 'Challenging conditions ahead'라고 쓰여 있는 경고성 표지판까지 있었다. 먼저 가고 있는 사람 역시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인 나와 짝꿍은 포기하지 않았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미끄럽지 않아 보이는 부분만 밟아 가며 조심히 길을 올라갔다. 천천히 걸어 도착하니, 구글 지도가 알려 준 예상 도착 시간보다 10분이 지나 있었다. 고생해서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트롬쇠의 야경은 그림 같았다. 소복이 쌓인 눈이 흡음재 역할을 해서 그런지 소음도 잘 들리지 않았다. 도시와 차단된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눈 위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았다. 야경이 예뻐서 엉덩이가 시린 줄도 몰랐다.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트롬쇠 전경

전망대에 있는 동안 헤드 랜턴을 끼고 성큼성큼 등산하던 현지인 몇 명을 마주쳤다. 신발에 아이젠을 두른 건지 걸을 때마다 경쾌한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트롬쇠 여행 내내 길거리에서 자주 듣게 될 소리였다.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다시 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길은 더 지옥이었다. 일부 구간은 앉아서 양손을 짚으며 내려왔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산길은 눈이 녹으면 계단인 곳이었다. 계단 위로 눈이 쌓여 아주 가파른 언덕을 만든 것이다. 어쩐지 너무 힘들더라니….

트롬쇠 주택가

다시 주택가로 내려와 버스를 탔다. 트롬쇠는 여기까지 버스가 온다고? 싶은 곳에 정류장이 있다. 어느 집 바로 앞에도 있었고, 언덕길 중간에도 있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트롬쇠 항구 쪽으로 가니 잔잔한 바다 위에 정박한 배들이 보였다. 바다 너머로는 눈 덮인 산이 있었다. 설산과 바다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야경이 근사했다.

설산과 바다

시내를 돌다 최북단에 위치한 맥도날드에 들렀다. 'Welcome to the northernmost McDonald's in the world'라고 써진 포스터 앞에서 여러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사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트롬쇠 공립 도서관도 방문했다. 앞에서 보면 마치 백상아리가 입을 벌린 것처럼 생긴 이 도서관은 어둠 속에서 작은 도시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트롬쇠 공립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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