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해도 좋아

by 오행

Day2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아니 밝지는 않았다. 오전 아홉 시가 지나도 새벽 어스름 같았다. 이날 저녁엔 오로라 투어를 가야 했기 때문에 오전부터 점심까지는 소소하게 트롬쇠위아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트롬쇠는 공원묘지가 예쁘다고 해서 구글 지도에서 Gravlund를 검색했다. Gravlund는 노르웨이어로 묘지라는 뜻이다. 생각보다 여러 곳에 묘지가 있어서 그냥 숙소 근처에 있는 Vangberg 묘지를 목적지로 찍었다. 근처에 노르웨이의 슈퍼마켓 체인점인 KIWI가 있어서 간식도 살 수 있었다.

Vangberg 공원묘지(Vangberg Gravlund) 근처
트롬쇠 주택가

도착해 보니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봤던 그 묘지는 아니었지만, 이곳도 멋있었다. 작은 언덕길을 오르면 보이는 산과 바다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눈 쌓인 공원묘지 옆 벤치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열 시가 넘어가니 제법 밝은 빛은 비쳤는데, 산 너머 해는 보이지 않았다.

간식을 다 먹고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어제 보았던 주택가와 다르게 작은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심플한 디자인이 북유럽다웠다.

Kvaløyvegen 도로를 따라 보이는 풍경

전날 잠시 둘러봤던 시내를 꼼꼼히 둘러보고자 시내 행 버스를 탔다. 해안도로인 Kvaløyvegen과 Strandvegen을 거쳐 가는 버스였기 때문에 바다 너머 멋진 풍경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트롬쇠 항구 근처에 하차한 뒤 북극권 도달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안내소 직원이 Polar Certificate라고 써진 종이에 내 이름을 적은 뒤 도장을 찍어줬다. 다 해서 2분도 안 걸린 것 같은데 20,000원이나 내야 했다. 그래도 마냥 행복했다. 우리나라도 분단국가 방문증 같은 걸 발급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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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쇠 메인 거리 / 트롬쇠 공립 도서관 내부

트롬쇠 시내 구석구석을 돌았다. 소비 다이어트 중 떠난 여행이라 기념품샵이나 잡화점은 최대한 들르지 않았다. 밖에서 걷기만 하며 보낸 시간이 많았는데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시베리아 북서풍이 뒤덮는 겨울이 익숙한 한국인들에겐 온화하게 느껴질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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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쇠 공원묘지(Tromsø Gravlund) 근처

걷기만 해도 좋았던 시내 구경을 마치고 트롬쇠 공원묘지를 찾아갔다. 아침에 인터넷에서 봤던 그 공원묘지였다. 오후 12시가 되자 잠깐 얼굴을 비췄던 해님이 벌써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과 강렬한 태양이 어우러져 거대한 주황빛 노을을 만들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직도 이때 마주친 찬란한 햇살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눈을 감고 그때를 생각하면 그날의 공기와 온도까지 느껴지는 기분이다.

Charlottenlund 레크레이션 공원(Charlottenlund Recreational Park)

트롬쇠 공원묘지에서부터 느릿느릿 걸으며 동네 구경을 하다 레크레이션 공원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공원 언덕에서부터 썰매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평지에서 노르딕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스키는 젬병이지만 썰매는 좋아해서 근처에 포대자루가 없는지 둘러봤지만 작은 비닐봉지조차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괜히 눈만 가지고 놀다가 발걸음을 뗐다.

북극대성당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보이는 트롬쇠 전경

오로라 투어 전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이때 버스를 반대 방향에서 타는 바람에 정신 차려 보니 다리 건너 북극대성당까지 와 있었다. 짝꿍과 헐레벌떡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정류장에서 해 질 녘 트롬쇠의 전경이 보였다. "우와,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서둘러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숙소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별로 한 건 없지만 추억을 많이 쌓은 반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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