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아 안녕

by 오행

Day4

(지난 편에 이어서) 언덕을 오르니 순록 여러 마리가 보였다. 속으로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순록들이 놀랄까 봐 큰 소리를 내진 않았다. 표정만은 활짝 웃은 채로 순록이 있는 방향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순록들은 우리들이 다가가도 개의치 않고 눈 속에 파묻힌 풀을 뜯는 데 집중했다. 기가 막히게 풀이 숨어 있는 자리를 찾아내 열심히 배를 채웠다.

가까이서 본 순록은 눈이 참 예뻤다. 사슴류라 그런지 커다란 눈망울이 너무나 맑았다. 추운 날씨를 거뜬히 견딜 것 같은 복슬복슬한 털은 귀여웠다. 제법 삐죽하게 자란 뿔은 순록마다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뿔이 없는 순록도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순록은 수컷과 암컷 모두 뿔이 있는데, 수컷은 겨울이 오기 전에 탈각을 하고 암컷은 겨우내 뿔을 가지고 있다가 봄이 돼서야 탈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뿔이 있던 루돌프는 암컷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여유롭게 풀을 뜯던 순록들

처음 발견했을 땐 몸에 아무런 표식이 없어 야생 순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가 방목하는 순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30분 가까이 지켜보는 동안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연하게 자리를 깔고 누운 순록도 있었다. 물론 튀르키예의 길고양이들처럼 사랑만 받고 자란 야생 순록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뿔이 없던 순록의 귀여운 뒷모습

한참 동안 조용히 순록을 관찰하다 고개를 돌아보니 끝내주는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흔한 마을 풍경이 이 정도라니,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광활한 자연도 한몫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입이 떡 벌어지던 마을 풍경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던 송아지들

순록 구경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왔다. 저 멀리 울타리 안에서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또 순록인가 싶어서 가까이 가 보니 아직 어린 소 떼였다. 송아지들은 강아지처럼 들판을 뛰어놀고 있었다. 일부는 울타리 너머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를 졸졸 따라다녔다.

귀여운 송아지들을 뒤로한 채 해안가로 걸어갔다. 해안가 쪽에 테이블과 붙어 있는 벤치가 있어서 숙소에서 챙겨 온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설산 너머로 펼쳐진 주황빛 노을과 잔잔한 파도가 함께하니 정말 낭만적이었다.

실제로 보면 더 멋진 Kvaløya 섬의 해안가

간식을 다 먹고 시발점에서 대기 중이던 트롬쇠이아 섬 방향 버스를 탔다. 센스 있는 기사님께서 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를 보고 문을 열어주신 덕분에 출발 시간까지 따뜻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창밖으로 순록 떼가 보였다. 엄청나게 많은 순록이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풍경이 그려졌다. 민가나 나무도 없이 그저 눈으로만 덮여 있었다. 올 때는 반대쪽 창가에 앉아 있어서 이 풍경을 놓쳤던 거였다. 돌아가는 길에라도 이렇게 진귀한 경치를 보아서 다행이었다. Kvaløya 섬에 오길 잘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트롬쇠이아 섬으로 돌아가는 길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오로라 지수(kp 지수)를 보여주는 어플을 켰다. 우리가 트롬쇠에 머문 내내 오로라 지수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낮에는 맑다가도 밤만 되면 구름이 끼는 바람에 kp 지수가 높아도 오로라를 못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은 kp 지수는 보통이었지만 밤에도 구름이 없는 편이라 트롬쇠 시내 근처에 있는 오로라 뷰 포인트(Telegrafbukta)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간 뷰 포인트에서 30분 정도 하늘을 보고 있는데 희미한 오로라가 나타났다. 오후 7시 30분쯤이었다. 트롬쇠에서 여섯 번째로 본 오로라였다. 육안으로는 얇은 구름이 떠다닌 것처럼 보이는 정도였지만 역시나 사진으로는 더 멋지게 찍혔다. 잠시 나타났던 오로라는 금세 사라졌다. 이후 30분 정도 더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밤을 새우며 오로라를 관찰하기엔 준비물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렇게 트롬쇠에서의 네 번째 날이 저물고 있었다.

희미했지만 아름다웠던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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