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얘기, 할머니 얘기
“밥이 보약이다.”
이 말은 어르신들 입에서도 나오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입에서도 나오고, 때로는 나 스스로에게도 되뇐다.
그 말이 가진 진심을 나는 매 끼니마다 절절히 느낀다.
요양원에서는 하루 세끼 식사가 매우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메뉴, 정해진 좌석.
어떤 어르신은 식사 30분 전부터 거실로 나와 같은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계시고,
어떤 어르신은 식판을 보고는 손사래를 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먹고, 자고, 싸고가 인간사 그 어떤 큰 일보다, 더 중한 일이고 빠지면 뭐 하나 잘못되면 큰일 나는 일이 또 있을까?
식단은 영양사 선생님이 주 단위로 계획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 비타민과 무기질까지 골고루 들어간 구성이다.
쉽게 말하면, 진짜 ‘건강식’이다.
영양사와 원장님이 옥신각신하고, 영양소, 제철재료, 예산까지 머리 쥐어짜며 매주 식단표가 나오고, 눈앞에 깔끔한 식판이 올라와도, 드시는 분이 입을 다무시면 말짱 도루묵이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식판을 놓는다.
“오늘은 좀 드셔주시겠지…”
그런데 참 신기하다.
같은 밥상, 같은 반찬을 놓고도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떤 어르신은 “점심시간 언제야, 밥은 언제나와” 하며 식판이 나오는 문만 바라보시고, 깨끗이 비우시고, 어떤 분은 반찬에 손도 안 대고 “나 안 먹어” 하신다.
이쯤 되면 진실 하나가 떠오른다.
‘노인도, 아이도, 밥 잘 먹는 사람이 예쁨 받는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솔직하다.
“○○ 어르신은 밥도 잘 드시고, 말도 잘 들어서 참 예뻐요.”
물론 사랑은 공평하게 주어져야겠지만,
현장에서는 ‘잘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미덕이 된다.
백세가 다되어 침상에 누운 채 계신 어르신에게 죽을 드리는데 이게 뭘 넘기고 말 것도 없는 죽을 열심히 오물오물 씹어가며 드신다. 가끔 허리도 아프고, 딴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다 수저 넣어드리는 타이밍을 놓치면 입을 “아”하고 벌리고 기다리고 계셔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죽 한 그릇을 꼭꼭 씹어서 비워내면 내 입도 아닌데도 뿌듯하기 그지없다. 다 비워낸 그릇을 보면 우리 어르신 너무 예쁘다고 다 한 마디씩 하신다.
하지만 또 다른 현실도 있다.
밥을 너무 잘 드셔서 탈이 나는 경우.
요양원 생활 활동량은 미미하다. 보행도 많이 해주는 편이지만, 스스로 많이 움직이려는 의지는 없으신데 간식을 많이 드시는 어르신도 있다.
휠체어로 이동할 때, 침대에서 옮길 때, 두세 명이 함께 붙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기운은 좋으신데, 체중이 좀 줄어야겠어요…”
이런 말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꼭 해야 하는 말이 된다.
2025년부터는 어르신들을 매달 체중체크해서 건강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서서 재기 힘드시니 휠체어로 같이 잴 수 있는 큰 체중계가 있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가, 화들짝 놀라서 내려오곤 한다.
흰쌀밥만 있어도 김치에 밥을 한 그릇 비울 수 있는 입맛. 소소한 행복의 결과.
아 고민이다. 고민이라는 총량은 어쩌면 다 똑같은 것 아닌가 지금 안 하면 인생 어느 때고 미뤄놓고 해야 하는 것.
식사에서 만큼은 선택이 아니고 그냥 먹는 것이라고 훈련을 시켜준 우리 할머니.
배고프면 먹고, 배불러도 먹고, 아파도 먹고, 울어도 먹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도 이 없이 음식을 씹어드시곤 했는데 오물거리는 볼이 너무 귀여워서 볼을 깨물어버린 적이 있다. 다음날 약해진 피부에 퍼렇게 멍이 들어서 할머니랑 가족들이 등짝을 때리고 욕을 하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 식사하실 때 오물거리는 볼을 보여주면서
"저러는데 어떻게 참아"라고 말해서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서른살 쯤, 혼자 살 때 할머니께서 올라오셔서 내가 한동안 밥상을 차려드린 적이 있다. 미역줄거리, 어묵볶음, 된장국, 김치, 상추쌈 밥상을 보고 당신이 어릴 때 차려줬던 때 그대로 상 차려 먹는다며 웃었는데...
아, 할머니 보고 싶어.
먹는 것은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밥을 거부하는 어르신들의 이유는 있겠지만, 삶을 향한 의욕이 없는 경우가 있다.
요양원 입소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보살핌이 어려워 입소하는 경우, 입소 후에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세끼 식사 챙겨드리고, 약 챙겨드리고, 병원 다니는 보살핌이 어려워져 오시는 경우가 많으니. 하지만 삶의 의욕을 놓으시는 분들이 식사의욕을 의식적으로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오물오물 씹어 드시는 한수저는 어떤 상황 속에도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작은 의지가 담긴 한 입이다.
오늘도 밥을 드시려 애쓰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배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뇐다.
“그래, 밥이 보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