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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Byun Nov 07. 2021

첫 키스가 언제야?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아이가 무기력증에 빠져,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을 때

‘엄마, 나 이거 안 할래, 이건 싫어!’라고 말해준 것이 아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끝까지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참았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당시엔 몰랐겠지만 시간이 흘러 참고 참은 마음은 과부하가 걸려 터져 버리고 아이와 나는

더 큰 타격과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용기는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감정에 용기 있어본 적이 별로 없는 나는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는 타고나길 아주 솔직한 편이었다.  

솔직함으로 인한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아이가 너 댓살 무렵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처음 보게 된 신부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저 언니, 레스는 입었지만 못생겼어. ’라고 내게 소곤거리는 거였다.


화들짝 놀란 나는 행여 누가 들을까 싶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언니 예뻐.’ 했더니,


“엄마 왜 거짓말해? 못생겼으니까 못생겼다 하는 거지. 그게 잘못이야?”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것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는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하는 듯 앙다문 입술과 나를 똑바로 쏘아보는 눈빛은, 마치

성스러운 결혼식장 한복판에 수류탄이라도 던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얼른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그 자리를 피해 위기를 모면했다.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생긴 후로 이런 상황은 더 이상 없었지만 이와는 다른 솔직함으로 지금도

가끔 나를 당황스럽게 할 때가 있다.

밤 산책

며칠 전 아이와 편의점 밤마실을 나가는데, 아이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엄마는 첫 키스가 언제야?”

깜빡이도 켜지 않고 펀치를 한 방 날렸다.


처, 첫 키스라니... 남편도 물어보지 않은 첫 키스에 대한 질문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아무렇지 않은 듯, 되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뭐야? 너 혹시...?”

하고 공수 전환을 시도해 보았지만 딸은

끄떡없었다.


“ㅋㅋㅋ 뭔 소리야. 나, 남자 친구도 없는데.”


“뭐야? 남친 있으면 해도 된단 소리야? 얘가 큰일 날 청소년이네...”

즉흥적이고 급한 성미의 아이가 걱정될 때가 바로 이런 때였다.


“아니, 진짜 엄마 첫 키스가 언제였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야.”

역시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뭐, 대학생 때. 엄마 보기보다 유교 걸인 거 알잖아.”


“응 ㅋㅋㅋ 알지. 대학생쯤 일 것 같았어. 근데 설마? 아빠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하는 눈초리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근데 이게 ‘설마 아니겠지’ 할 일인가?

요즘 아이들은 엄마의 첫 키스 상대가 아빠라는 환상도 없거니와 엄마에게 아빠 아닌 다른 뽀뽀 상대가 있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은 1도 없는가 보았다. 그래서 나도 눈높이에 맞춰 답했다.

“당연하지! 그땐 서로의 존재조차도 몰랐는데. 아빠의 첫 키스 상대도 누군가 있겠지ㅋ.”


“ㅋㅋㅋㅋ. 웃겨”


이런 얘기를 갑자기 왜 물어보는지 더 캐묻고 싶었지만, 깊이 들어갈 마음의 준비는 오히려 내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대화는 거기서 종결되었다.

아이는 대화할 때 이성관계나 친구관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주는 편이다.

물론 가끔 당황스러운 얘기나 정보를 듣게 된다 해도 절대 놀란 티를 내선 안된다. 내가 정색하는 순간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이 어색해지며 다음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편집본이 될 테니까.

확실한 건 이런 주제를 터부시 하는 건 부모 쪽이지,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성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부끄러움이나 감추려는 마음이 별로 없다.

첫 경험의 연령이 계속 어려지는 추세라는 통계에 나도 한 번씩 화들짝 놀랄 때가 있지만, 놀랄 일이기보다는 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가감 없는 대화가 더 현실적인 대처방안 아닐까.


이런 얘기에 앞장서는 아이에게 새삼 고맙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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