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지난 4월부터 두달여간 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와 같은 서킷 브레이크(Circuit break)가 있었다.
식당 테이크 아웃을 포함한 필수 업종을 제외하고 모든 영업장들은 문을 닫았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로 전환되었으며 아이들 등교도 중단되어 온가족이 오붓하게 집콕을 해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남편과 의기투합하여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보자 다짐하며 3살 아이와 함께 사람이 없을 만한 곳으로 종종 바람을 쐬러 가기도 하고 미리 구입해둔 도구들을 활용한 엄마표 놀이로 연맹하며 버텼다.
점점 지쳐가며 무서운 엄마의 발현도가 잦아질 무렵, 서킷 브레이크의 연장없이 단계가 완화되었다.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를 가진 싱가포르는 시원한 실내에서 외식하고 쇼핑할 수 있는 대형 몰(Mall)이 많다.
오랜만에 문을 연 몰에서 도심을 느끼며 구경을 하고 외식을 하기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해방감과 함께 설레는 심정으로 간만에 외모에 공 좀 들이고 나가자 싶었다.
코로나로 집에서 육아로 씨름했던 나를 보상하고자 꽤 오랜만에 구입한 미스때 즐겨입던 미니 원피스도 개시하고,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메이크업을 하며 거울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갔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많은 인파속에 둘려쌓여서 싱가포르 도심의 화려한 볼거리들 눈요기 잘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잘먹고 집에 돌어왔는데 괜스레 마음이 답답했다.
아이를 재우자마자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한 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한밤중에 가로등 불빛 아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터지도록 뛰었다.
하루종일 더운 나라인지라 금세 땀이 흐르고 엔돌핀이 나오면서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남아있었다.
유튜브 피드에서 지나쳤던 김기석 목사님의 '나이들수록 얼굴의 빛이 살아나는 방법'이라는 영상이 생각나길래 걸으면서 듣기 시작했다.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때를 지나가고 있는가를 알고
그 때에 맞는 아름다움을 살아내는 것이다.
내 모습이 바뀌어 가는 것을 서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빛이 나오지 않는 것을 서러워하라."
예전과는 다르게 오늘 입었던 미니 원피스가 불편했고 눈가에 부쩍 많아진 주름을 가리기 위해 한참을 파운데이션을 두드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외면이 변해가는 모습을 속상해 하면서 내면이 정돈되지 않아 성숙할 수 없었던 지난 날에 대한 회한으로 눈가에 눈물이 돌았다. 그렇게 철없던 이전의 나와 작별을 고하고 내면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지위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누구나 태어나자 마자 죽음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워 보이고 싶고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본능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면도 자기 만족과 더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필요한지라 외모를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잘 가꾸어진 내면에서 나오는 빛이 외면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사람의 아우라는 차원이 다르다.
함께 있는 사람의 어둠을 빛으로 밝혀 주며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처럼 만들어 주는 이의 얼굴에 주름진 미소는 마음을 지켜낸 아름다운 훈장과 같다. 이들은 다듬지 않으면 금세 무성해지는 잡초와 같아지는 내면을 끊임없이 정돈하여 사랑과 희망으로 채운다. 영혼을 향해 진정성있는 자세로 귀기울이며 포용의 자세로 어떤 상황이든 덤덤히 받아들 일 수 있는 단단함이 있다.
이날 이후로 외모가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더이상 큰 아쉬움을 갖지 않게 되었다.
나를 아끼고 꾸미려는 의지는 변치 않았기에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피부를 관리하고 운동을 하지만,
빛이 깃든 좋은 인상과 더불어 내면의 질서와 참다운 가치를 선택하는 순간 순간을 보내려는 인생의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지나가는 때를 아는 것은 지금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세월이 지날 수록 아름다워지는 비결은 바로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