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없는 열 한시 동네 카페였다. 21개월 된 아이는 내 무릎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방금까지 놀이터에서 햇볕을 충분히 쬐고 뛰어다녔는지 햇살 같은 미소를 내뿜으며 낮잠에 빠져있었다. 나는 카페 창문 너머에서 비추는 햇살에 등을 기대어 레이먼드 챈들러 단편선을 보고 있었다.
우유 거품이 꺼져버린 라테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카페에 온 지 2시간이 지난 오후 1시, 나는 챈들러의 '금붕어'를 11장까지 봤다. 점심시간인 직장인들이 카페로 몰려오고 있었고, 아이는 뒤척였다. 나는 불안해졌다. '금붕어'의 마지막 장인 12장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결말을 못 본다면 정신과를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정신과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카페 주인이 카운터에서 나와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키가 190 가까이 돼 보이고 덩치도 꽤 커 보이는 게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인 필립 말로처럼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니 턱수염을 가늘게 기르고 있었다. 필립 말로를 닮은 주인은 매우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단호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손님!"
"네?"
아마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때마침 아이도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었다. 나는 챈들러 단편선을 오른쪽 팔에 끼고, 왼쪽 팔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 나 역시도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처럼 과하지 않으면서 가벼워 보이지는 않게 자리를 비켜주려고 하였다. 그 당시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커피 바디감이 좋네요. 그렇지 않아도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손님, 그 책!"
나는 이게 무슨 황당한 전개인가 싶었다. 나와 아이가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레이먼드 챈들러 단편선"이 문제인가?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이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보챌 준비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카페 주인과 내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줄 알고 곁눈질하고 있었다.
"챈들러 좋아해요?"
"네?"
"챈들러 장편부터 본 거예요?"
"아니요. 단편부터 보고 있어요."
"빅슬립부터 보세요. 단편에 있는 것 정리해서 쓴 게 빅슬립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근데 단편을 먼저 사서."
"빌려 드릴게요. 다음에 다 읽고 올 때 반납하셔요. 아이가 찢거나 낙서해도 괜찮아요."
"네?"
"이 동네에서 챈들러 읽는 사람 처음 봤어요. 저 챈들러 완전 팬이거든요."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꽤 정확한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