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바이 뮤즈
추운 밤, 그러니까 학생들이 교복 재킷을 입고 그 위에 롱패딩까지 걸치고 있던 연초의 어떤 날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편의점에서 덜덜 떨면서 네 캔에 만원 하는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격적인 주제와 탁월한 구성이 생각이 났다. 창작의 신인 뮤즈가 나에게 “하이”라고 말한 것만 같았다. 생각만 하고 있다가 기억 저편으로 날린 기획들이 많아서 나는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생각으로 할 때보다 말로 하거나 글로 쓰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대중 강연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내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이 너무 재밌다면서 박수를 쳤다. 동료 중 한 명은 자리에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기립박수를 친 동료는 이 이야기를 꼭 소설로, 그것도 긴 호흡의 장편 소설로 써보라고 했다. 나는 그날 술에 취한 채로 집에 가서 무려 여덟 시간을 소설로 썼다. A4 용지로 내리 사십 장을 썼다.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곱 달이 지났다. 여전히 불경기였고, 물가는 안정되지 않았다. 날씨는 무더위를 거쳐서 다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완벽하게 느껴졌던 그 이야기를 단 한 장도 더 써내지 못했다. 밤을 새워 써 내려갔던 강렬한 경험을 겪은 나는 다시 그런 뜨거운 무언가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바이 뮤즈.
어찌 됐든, 뮤즈가 내게 선물해 준 작품은 오탈자가 하나도 없는 글이었다.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 완벽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냥 이 글을 그대로 신춘문예에 내기로 하였다. 가장 이름 있는 신문사에 글을 보내려고 글을 좀 쓴다는 사람에게 어느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가장 알아주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그것이 벌써 십 년 전이다. 나는 여전히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단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이제는 뮤즈를 기다리지 않고 그저 꾸준히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