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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포도 Sep 20. 2024

두 여자 이야기

사실은 내 이야기

첫 번째 여자 이야기. 


십여 년 전, 나는 대학 3학년 생이었다. 그해에도 썸, 사랑, 이별이 있었고, 여느 해처럼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무엇인가에 매달려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교 3학년이 이렇게 생각이 나는 이유는, 당시 호감이 있었던 학과대표 여후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일도 없었지만.


당시 나는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갓 복학한 까까머리 남학생이었는데, 아직 군인이라는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보이는 특유의 허세가 남아 있었다. "내가 할게!" "걱정하지 마!" "내가 잘해!"라는 말을 자주 썼던 기억이 난다. 


고백하자면, 내가 과장되게 선배다운 모습을 보였던 이유는 여자 후배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특히 후배들 중에서 학과대표를 하던 08학번 여후배가 아주 예뻤었다. 그녀는 당시에 유행하던 파란색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에 검은색 레깅스를 자주 입고 다녔는데, 솔직히 몇 번이나 시선이 갈 만큼 좀 많이 잘 어울렸었다. 아직까지도 그녀보다 그 패션을 잘 소화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패션이 된 노스페이스이지만. 


당시에 학과대표가 내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넘어 틀려서 범퍼 부분이 살짝 깨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알려줘서 고맙다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그냥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오토바이는 어떻게 수리하고 다니다가 처분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기분 좋은 기억만 추억이다.


두 번째 여자 이야기.


대학교 3학년으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빠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은 나를 향해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홈플러스 문화센터를 가는 날이다. 이 날은 "아저씨"가 아니라 "아빠"라고 불린다. 가끔씩 말이 많은 아이들이 "아빠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화센터는 냉방 시스템이 너무 잘되어서 바람막이를 하나 입고 가는데, 매번 검은색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집어든다. 노스페이스가 잘 어울리던 08학번 여자 후배는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홈플러스에 주차를 하고 아이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차량 충격을 감지하는 알람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문자가 하나 온다. 


- 제가 실수로 0920 차량 트렁크 부분을 카트로 찍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와서 확인하시고 연락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몇 해 전, 9천만 원에 bmw 530i를 샀었다. 20년은 탈 생각으로 샀기에, 아직까지도 잔고장이나 외부 스크래치 없이 잘 타고 다니고 있다. 아직까지도 운전할 때 운전대에 bmw 마크를 볼 때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내가 이 차를 타다니!'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다. 그런데, 그 차가 찍힌 것이었다. 


여유 있게 홈플러스에 도착한 터라, 시간이 충분했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갔다. 내 차 트렁크 뒤편에 안절부절못하는 내 나이 또래의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원피스처럼 크게 내려오는 파란색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에 검은색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동년배의 아주머니처럼 보이는 여자는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자꾸만 파란색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트렁크 부분이 찌그러지고 찍힌 것이 꽤 심하긴 했다. 덴트나 붓펜으로 덮을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는데, 이번 일이 십여 년 뒤에 또 다른 추억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괜찮습니다. 대물 접수 부탁드립니다."


좋은 추억으로 넘기기에는 외제차의 수리비가 너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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