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포도 Aug 07. 2024

49만 원짜리 호텔에서 가위를 빌리면 생기는 일

이번 여름휴가는 이박 삼일로 짧게 다녀왔다. 일박에 49만 원인 호텔에 머물었으니, 숙박비로만 98만 원을 썼다. 29개월 아이가 있는지라, 아이가 답답해하지 않을 공간에, 충분한 부대시설에,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호텔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이에게 특급 호텔의 탁 트인 로비와 뻥 뚫린 천장, 그리고 직원들의 정중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특급 호텔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둘째 날 아침이었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우유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멸균 우유 팩과 컵을 들고 호텔 로비로 갔다. 로비에는 전날 밤부터 근무한 호텔 남직원이 있었다. 짧은 머리를 파마한 중년의 남자였는데, 내가 데스크로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1015호입니다."


직원은 나를 쳐다볼 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따위의 대답이 없었다. 나는 기분이 좀 상한 상태로 직원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가위를 빌리고 싶습니다."

"가위요? 언제까지 쓸 건데요?"


직원의 따져 묻는 듯한 말이 거슬렸다. 나도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요? 금방요."


호텔 직원은 문구용 가위를 데스크에 두었다. 나는 가위를 사용하고 데스트에 두었다. 일분 정도의 시간 동안 특급 호텔 직원이 보여준 태도는 동네 편의점 직원보다 못했다. 직원의 응대 태도를 보고 있자니, '서비스직이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으세요. 여행 온 사람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라는 말이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기분이 매우 상했었는데, 아이를 안고 있어서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있었다.


29개월 아이와 함께 있으면 부모는 늘 신경 쓰인다. 모든 순간이 아이에게는 난생처음 겪는 자극일 수 있으므로 부모로서 긍정적인 자극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29개월 아이는 보고 듣는 대로 따라 한다. 반성적 사고, 그러니까 스스로 타산지석을 할 수 없는 연령이다. 좋은 것을 봐도 그대로, 나쁜 것을 봐도 그대로 배운다.


나의 이런 노력을 아는지 아이는 가위 빌리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는, 우유를 먹으면서 검지와 중지를 교차하면서 "싹둑싹둑 가위로 우유팩을 잘라요."라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방에 돌아와서 아이는 "아빠가 아저씨한테 가위를 빌려 달라고 했어, 그래서 아저씨가 빌려줬어. 그래서 내가 우유를 먹어."라고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아이 앞에서 감정 조절을 잘했다는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이가 한 말이 너무도 상식적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호텔 직원에게 가위를 빌려 달라고 했고, 직원은 가위를 빌려줬고, 빌린 가위로 아이가 우유를 먹은 일일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직 나만 혼자서, 49만 원짜리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착각에 기분 나빠했을 뿐이었다.

이전 05화 나는 어떻게 금쪽이로 자라지 않았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