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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꼭 바뀌어야 될 필요는 없어

나는 나 너는 너

by 오분레터

한 청년이 노홍철에게 자신의 '내성적이고 진지한 성격'이 고민이라고 하자 이런 말을 했다.


"왜 밝아야 해요? 진지하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제가 요즘 제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카이스트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예요. 저랑 안 어울리죠?"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학자들이나 이런 뭐, 지식을 갖고 전달하는 분들은 지루할 거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저는 그분의 진지한 점이 너무 좋았고, 그분은 저의 유쾌한 모습이 좋았던 거예요. 본인이 만났던 사람 중에 이런 진지함이 불편하다고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랑 본인이 안 맞을 수 있는 거예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바뀌어야 될 필요는 없는 거예요"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MBTI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화 중에 내가 조금 이성적인 말을 던지면, 어김없이 “T죠?”라는 질문을 받는다. 흥미롭게도 나는 한 번도 MBTI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냥 들은 이야기로 MBTI에 대해 대략적인 정보만 알고 있다. E는 외향적, I는 내향적, J는 계획적, T는 이성적이라는 정도. 내가 MBTI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I 같기도 하고, E 같기도 하고...” 돌려 말하면 돌아이...



사실 나는 어렸을 때 굉장히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성격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들 한다. 내 경우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자라온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있었겠지만...



학창 시절에는 활발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어울릴 때면 묘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모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군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강제로 외향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환경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여전히 내향적인 성격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향적인 모습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보며 결국 내향적인 성격이 내 본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렸을 때는 이런 성격이 정말 싫었다.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누군가가 “I죠? I 맞네!”라고 말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한다. “그래서요?”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러면 상대방은 또 이렇게 말한다.



“T네.”



I든 E든, T든 F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그것이 바로 나라는 점이다. 사람들과의 불편한 어울림을 위해 억지로 나를 바꿀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그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된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게 삶을 더 편안하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삶이란 자신을 이해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과정이니까.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나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MBTI가 뭐건, 내 성격이 어떤 건 상관없이, 나는 나로서 충분히 괜찮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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