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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공장

뒤에서 깠더니 나도 까이더라

by 오분레터

한 번은 술자리에서 잘 모르는 회사 동료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고, 나도 자연스럽게 한마디 얹었다. "그 사람 다 좋은데 일 처리가 좀 느리죠." 그 정도였다. 악의는 없었다. 그저 분위기에 맞춰 툭 던진 말이었다.


며칠 뒤, 그 말이 내 귀에 다시 돌아왔다. "누가 그러던데, 너 누구 일처리 느리다고 했다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입에서 나왔던 문장이 머리를 스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을 아낄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가벼운 험담도 언젠가는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그 일 이후, 나는 사석에서 남을 평가하는 말을 삼가게 됐다. 말은 생각보다 빠르게 순환하고, 그 말의 화살은 언젠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험담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자란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한다. 누가 먼저 시작하면, 다들 맞장구치기 바쁘다. "맞아요, 그 사람 좀 별로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분위기는 더 뜨거워지고, 결국 되돌릴 수 없는 말들이 오간다. 그 대화가 끝나면 다음 화살은 나를 향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깨달은 건 하나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말할 때, 결국 우리는 자신을 말하고 있다는 것.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 한마디로 얼마든지 논쟁을 끊을 수 있다. 화제를 돌리는 건 비겁함이 아니라 지혜다.


말은 에너지다. 돌고 돌며 나를 향해 되돌아온다. “그 사람 성격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런 말은 결국 나에 대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내가 말한 그대로, 누군가도 나를 평가할 것이다.


더 무서운 건 험담이 관계를 강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험담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30% 이상 떨어진다고 한다. 함께 험담하던 사람들도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 자리에선 웃지만, 돌아서면 의심하게 된다. 결국 남는 건 불신과 피로감뿐이다.


인간관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말 한마디로 적을 만들 바엔, 침묵이 더 안전하다.


말은 씨앗이다. 가시덤불이 자랄 수도 있고, 꽃이 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그런 씨앗을 신중하게 고른다. 언제 어디서든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말로 나를 소개한다. 말의 품격이 곧 나의 품격이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 나는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려 노력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험담이 시작될 때면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말, 언젠가 나에게도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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