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가족이라는 말에 그리움보다 공허함을 먼저 느끼는 아이였다. 두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고, 스물한 살에 어머니마저 떠나보냈다. 그 이후로 결혼 전까지, 나는 늘 혼자였다. 형제도, 가까운 친척도 없었다. 외롭고 스산한 시간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쉽게 드러내진 않았다.
남들이 다 누리는 당연한 일상이, 나에겐 늘 특별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저녁 식사 초대, 명절에 가족이 모여 있는 사진 한 장, 그저 푸근한 일상의 풍경이 나에겐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대학 시절, 부모님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은 현실 그 자체였다. 집이 없었기에 기숙사, 동아리방, 랩실을 떠돌며 살았다. 명절이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문을 닫은 식당들 사이를 헤매며 결국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으며 배보다 마음의 허기가 더 컸던 그 시절, 나는 ‘외로움’이란 단어를 몸으로 배웠다.
어느 날 나보다 뒤늦게 입사한 3살 위 형님과 술자리를 함께하며 자연스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형은 내 이야기를 듣고 며칠 후,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내가 너 얘길 엄마한테 했거든? 그랬더니 엄마가 그러시더라. 그런 사람은 독기가 있을 수 있다고."
그 말이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맞는 말’ 같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뭔가 날카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억울한 일을 겪을 때, 누군가가 나를 얕잡아볼 때,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섰을 때, 내 안에서 ‘독기’가 올라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그건 단순한 분노와는 달랐다. 뭔가 절박하고, 뜨겁고, 치열한 감정이었다.
“이게 그 독기인가?”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나는 이 독기를 부끄럽게 여긴 적도, 자랑스럽게 여긴 적도 없었다. 그저 내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품어야 했던 무기였을 뿐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유머로 버티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버티며, 나는 ‘독기’로 버텼다. 그 독기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모든 선택에는 그 독기가 깃들어 있었다. 불공정한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게 했고, 도전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게 했으며, 때로는 말없이 견디고 참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독기’를 부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건 상처를 입은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품게 된 불꽃이다. 그 불꽃은 누군가를 태울 수도 있지만,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진짜로 두려운 건, 이 독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독기가 나를 해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돌아본다. 내 말이 누군가를 찌르지는 않았는지, 내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뜨리지는 않았는지. 내 안의 독기가 상처를 향하지 않고 도전과 책임을 향하도록 오늘도 조심스럽게 다듬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어딘가에 감춰진 ‘독기’가 있을지 모른다. 부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당신이 여기까지 살아온,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존재의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