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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명하려 애쓰지 마라

by 오분레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50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청년 시절에는 사회에, 중년에는 가족과 일터에 끊임없이 나를 설명해야 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끊임없이 해명하고 해석하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50대에 접어들면 문득 깨닫게 된다. 더 이상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인생의 전반기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인생의 후반기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50대는 바로 그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감을 갖는 것. 그것이 50대가 얻어야 할 가장 값진 선물이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오느라 지친 마음은 나에 대한 설명을 멈추는 순간부터 치유되기 시작한다. 설명은 변명과 다르지 않다. 변명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고, 부정은 내면을 잠식한다. 이제는 묻지 않은 질문에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 묻지 않은 이해를 억지로 끌어낼 필요가 없다. 나를 이해할 사람은 묻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삶의 무게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좋은 아이’가 되기를 강요받았다. 부모의 기대, 교사의 평가,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가정에서 가족의 바람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고 해명하며 살아간다.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 그 자체가 지옥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기대 속에 자신을 가두는 삶이 지옥인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내리는 평가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저울질한다. 그러나 50대에 이르면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그 어떤 평가도, 그 어떤 기대도 내 삶의 본질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사회적 역할은 거짓말을 강요한다. 때로는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고, 동의하지 않는데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그러나 거짓된 삶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깎아먹는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기대를 거절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일 뿐이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문장을 가슴에 새길 때, 우리는 비로소 가벼워질 수 있다.




진정한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다


진정한 관계에서는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도한 설명은 관계를 억지스럽고 어색하게 만든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에서는 침묵조차도 편안하다. 굳이 나를 합리화하거나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그곳에 진짜 관계가 있다.


“진정한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말이 필요 없는 이해, 설명이 필요 없는 존중. 우리는 이제 그런 관계를 선택해야 한다. 과거에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해를 풀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해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은 때로는 상대방에게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스스로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50대에는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 생긴다. 이제는 말보다 눈빛을, 설명보다 침묵을 신뢰해야 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고, 나를 아끼는 사람에게는 아무 설명 없이도 통한다. 이것이 관계의 진실이다.


설명이 필요한 관계는 관계가 아니다. 믿음이 결여된 설명은 늘 불안하다. 우리는 이제 설명을 멈추고, 신뢰와 존중 위에 관계를 세워야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자신을 설명하려는 충동은 결국 자기부정에서 온다. ‘나는 이래서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이런 의도가 있었어’라고 끊임없이 말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설명을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어리석으며, 때로는 이해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은 단단해진다.


설명하려 애쓸수록 삶은 왜소해진다. 설명은 결국 나를 방어하는 행위다. 방어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50대는 이 단단한 선언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한다. “나는 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의 아름다움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은 자유롭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굳이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은 삶.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젊었을 때는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들이 당신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젊은 시절 내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알 때가 됐다. 타인은 우리를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더 이상 설명하려 애쓰지 말자.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은 홀가분하다. 오해받아도 괜찮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설명을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얻는다.


50대는 설명하지 않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후반을 빛나게 하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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