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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소년 Aug 06. 2017

'커피는 쓰다, 커피를 쓰다!'

커피, 생각의 주변을 서성이다



좋은 커피는 생각하는 커피이다.
천천히 진한 커피 향에 취하는 사이
커피를 마시는 이는
머릿속에서 조용히
생각의 주변을 서성인다.



수망로스팅 할 때 포인트를 잡는 기준이 되는 팝핑. 그 소리를 들어보세요


'촤촬!' '촤촬!' '촤촬!'



          흔들리는 수망 안에서 커피콩이 부지런히 좌우로 혹은 앞뒤로 쓸려 다닙니다. 바닷가 파도 따라 모래알이 쓸려갔다 쓸려오는 것처럼, 촘촘한 철망 위를 농부의 세심한 손길로 골라진(Hand Picked) 녹색의 신선한 생두(Green Bean)는 이렇게 인생의 반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쪼그려 앉는 자세로 15분 정도를 이렇게 일정하게 흔들어 줍니다. '골고루 잘 볶아져라' 주문을 외면서 말이죠.



          가로 세로 1미터 정도 되는 아파트 뒤쪽 베란다의 문을 꼭 닫은 채로, 쪼그려 앉은 자세를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딸깍!' 간이 스토브에 불을 켭니다. '비밀스러운?' 커피콩 볶기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덥고 습한 여름에도, 춥고 건조한 한겨울도 아랑곳없이 일주일에 한두 번 뒷베란다에선 이 남자의 조심스러운 뒤태가 보이곤 했습니다.



몇가지 주방기구로 급조한 엉성한 수망을 활용해 정말 오랜만에 로스팅을 해봅니다.



          생두를 볶는 과정은 대개 소리 소문 없이 '비밀스럽게' 진행됩니다. 녹색의 생두를 볶을 때, 잘 볶아진 구수한 원두의 향기를 기대하시겠지만, 왠 걸요. 실제로는 그런 기대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그냥 콩 볶을 때 나는 약간은 구수하고 매캐한 내음이라고 해야 할까요?(지금은 익숙해져 이마저도 좋습니다.)


또, 콩 볶는 연기도 제법 피어오릅니다.
혹여라도 집안 부엌 스토브 위에서 커피콩을 볶아낸다면,
모르는 사람은 큰일이 난 걸로 오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콩 볶는 작업이 '비밀스러워야'하는 또 다른 이유. 일반적으로 곡식의 겉껍질을 의미하는 '체프 Chaff'가 커피콩을 볶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사방으로 마구 날리죠. 이걸 청소하는 것도 정말 큰 일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라도 이런 일거리? 앞에선 분명 타박을 할 겁니다.



김대웅 기자의 Kenya AA TOP 수망로스팅 체험 장면입니다.



          커피의 기원을 찾아보면, 몇 가지 전설이 등장합니다. 가장 유명한 "칼디의 전설" , "오마르의 전설" , "모하메드의 전설" 등이 있는데요.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서 기원했다는 커피는 '칼디의 전설'이 가장 유명한 듯합니다. 바리스타 자격증 필기시험에도 자주 등장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네요.





          잠깐 전설따라 삼천리~~(너무 아재인가요?). '칼디'라는 에티오피아의 목동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자기가 기르던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은 후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죠. 그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마치 춤을 추듯 활발하게 움직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호기심 많던 목동 '칼디'도 그 열매를 먹어본 거죠. 그랬더니 피곤함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자신도 염소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칼디(Kaldi)는 고대 아랍어로 '뜨겁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군요. 이후 칼디의 빨간 열매 이야기가 수도승에게 알려지게 되고, 기도 중에 잠이 들지 않도록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였습니다.

(갑자기 '삼천리'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 궁금해져서  계산해 보니 1,200km. 전설따라 너무 멀리 왔군요.)


 간이 스토브  불꽃 위에서  
'틱!' '틱!' '티딕!'
시종일관 남자의 시선은
불꽃의 흔들림을 따라 오르내리고,
수망을 든 손은 좌우로
일정한 리듬을 만들며 '흔들흔들'

          15분가량을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생두를 볶아 냅니다. 두 눈은 초콜릿 색의 원두로 변해가는 생두를, 두 귀는 생두의 겉껍질이 불길을 만나 팽창하며 깨지는 '팝핑 Popping' 소리에 집중합니다. 2번의 팝핑 타이밍을 기준으로 크게 '라이트 Light', '시나몬 Cinnamon', '미디엄 Medium', '하이 High', '시티 City', '풀시티 Full city', '프렌치 French', '이탈리안 Italian'으로 나누어집니다.


          생두마다 저마다 최고의 맛을 내는 로스팅 포인트가 따로 있거든요. 이런 미세한 구분은 불길을 강약으로 어루만지고, 원두의 변색을 주시하면서, 생두의 인생이 바뀌는 소리인 팝핑 사운드를 들어가며 만들어내는 겁니다. 뭐 이리 복잡해? 하실 수 있겠지만, 커피 로스터는 이 순간 완벽한 원두를 위해 숨 쉬는 것조차 잊을지도 모릅니다.



원두의 색깔을 보고 로스팅 정도를 알 수가 있죠.



          혹시 직접 로스팅하는 커피전문점에서 로스팅 중인 주인장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볶아지는 생두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고 무언가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보셨나요? 다양한 환경과 조건 속에 같은 생두라도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원두로 태어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해 최적의 포인트를 찾으려는 장인(master, 匠人)의 노력은 훗날 로스터의 눈물겨운 자긍심이 됩니다.



처음 통돌이로스터를 구입해서 정말 열심히 커피를 볶았습니다.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즐거움은 그리 길지 않을 때가 많아요. 들어보세요. 수망 로스팅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리 저리는 쪼그린 자세로 간이 스토브 불꽃 위에서 생두가 들어있는 수망을 좌우로 15분 남짓 열심히 그것도 일정하게 쉬지 않고 흔드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지루하고 팔도 제법 아프지만 원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되거든요. 이런 과정으로 매일같이 수망을 흔들다 보면, 편하게 원두를 볶고 싶어 지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때, 잠깐 들른 인터넷 커피 동호회 카페에서
로스팅 고수의 제법 완성도가 있어 보이는
'자작 통돌이 로스터'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간이 스토브 위에 통돌이 로스터를 올려놓고 불 조절하면서 빙글빙글 손잡이만 돌리면 됩니다. 원두도 더 균일하게 잘 볶아지는 것도 같고요. 이때부터 통돌이 로스터는 'Must Have Item'이 됩니다. 이후 '자작 통돌이 로스터'는 업그레이드되어 손으로 돌리는 수고로움을 덜어줄 모터를 장착해 다시 인터넷 카페에 등장합니다. 이제 불 조절만 잘하면 되나요? 이쯤 되면, 커피 로스팅이 라면 끓이는 것처럼 손쉽게 느껴지시나요?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커피열매의 과육을 벗기고 커피씨앗을 얻는 과정은 정말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한 번은 신미이 기자 선배가 청주에 있는 커피농장에서 따왔다며 선홍색 커피 열매를 내밉니다. 묘한 미소가 선배 입가에 맴도는데 전 금방 알 수 있었죠. 열매의 과육을 걷어내고 그 씨앗으로 뭔가 해보자는 표정?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저희 집에도 관상용 커피나무가 한 그루 있어 나무는 익숙한데, 커피 열매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군요. 씻어 놓으니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게 작은 앵두 같기도 합니다. 깨끗하게 목욕재계(沐浴齋戒)? 까지는 아니고, 손만 깨끗하게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커피 열매의 과육을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합니다. 물에 불린 윤기 나는 보리쌀 크기의 덜 영근 씨앗이 미끌미끌 점액질로 둘러 쌓인 채 종이컵 안에 담깁니다. 다 모아서 보니 종이컵으로 2/3컵 정도 되는군요.





          사실 생두를 어떻게 건조해 만드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먹잇감을 만난 야수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했습니다(한마디로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는 얘기). 연한 크림색의 커피 씨앗을 아파트 베란다 그늘진 곳에서 5일 정도를 말렸더니, 크기가 1/5로 확 줄어듭니다(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다 모아서 보니 한 숟가락 분량의 '아무렇게 대충' 건조된 생두가 제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잠시 다시 '통돌이 로스터'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모터가 장착된 자작 통돌이 로스터'의 편리함에 대한 감탄도 잠시,
날리는 체프 Chaff와 열이 오른 원두를 식히는 Cooling 과정도
이제는 번거롭게 여겨지기 시작하는군요.



          자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가정용 로스팅 기계를 들일 때가 되었군요. 국산이라도 70만 원을 호가하는 기계를 꼭 사야 되는 이유를 굳이 아내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그간의 고통스럽고 불편한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죠. 사방으로 날리는 체프 Chaff도 없으니 '대환영' 아닐까요? 그래도 가격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일주일을 꼬박 인터넷 중고장터를 기웃거리다가 20만 원대 쓸만한 가정용 커피 로스팅 기계(제네 카페)를 손에 넣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네요.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실 때가 된 듯하군요. "아니 사 먹으면 되지, 번거롭게 왜 일일이 볶아 먹는 거죠?" 놀라지 마세요. 저의 대답은 의외로 설득력 있을 겁니다. "다양한 생두를 저렴한(원두의 3/1 정도) 가격으로, 나만의 포인트로 로스팅한, 내가 만든, 나의 취향이 담긴, 그래서 누구에게 꺼내어 놓을 때 스토리텔링이 되는, 그런 드라마틱한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렇게까지 말씀드렸는데도, 여전히 사 먹는 게 편하다고 하신다면 제가 졌습니다.(ㅎㅎ)



커피열매를 건조와 로스팅을 거쳐 한 잔의 커피로 탄생시키는 과정입니다. 다시 봐도 감동이네요.



          한 숟가락 분량의 초라하게 생긴 생두(제가 돈 주고 구매하는 생두와는 너무 달랐거든요)가 가정용 로스터기에서 원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다지 초조하지 않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뭐 어떻게든 커피 비슷한 게 나오지 않겠어?" 하지만, 볶아진 원두는 역시 충분히 부풀어 오르지도 않았고, 예쁜 초콜릿 빛깔도 아니었습니다. 조심스레 한 숟가락의 원두를 '핸드밀 Hand Mill (손으로 돌려 원두를 분쇄하는 기구)'로 갈아서, 어떻게든 기본 맛이라도 내기 위해 '대만산 클레버 Clever'에 펄프(종이) 필터를 끼우고, 1분 40초의 시간을 기다려 커피를 내렸습니다.


          클래식한 커피잔으로 반 잔이 나왔네요. 저는 도저히 못 마시겠습니다. 아깝고 두려웠죠. 아내를 희생양으로 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대를 위해 직접 내린 거야" 하며 넌지시 의심스러운? 커피잔을 내밉니다. 그녀의 한 마디 "어! 진짜 커피 같아!" 그녀의 첫 반응입니다. 리액션이 조금 이상하죠? 진짜 커피를 가지고 '진짜 커피' 같다니요. 그래도 저는 대만족입니다. 전 누구도 쉽게 해보기 어려운 흔치 않은 실험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 잡지에서 읽었던 문장입니다. 맘에 들어 한 조각 잘라내 모아두었죠."센 술은 생각하는 술이다. 천천히 취기가 도는 사이 술꾼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생각의 주변을 서성인다."이 문장에서 전 '서성인다'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심이 안 선, 인간적인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인생의 미래를 몰라 망설이는 제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이 문장을 잠깐 응용해 볼까요?


"좋은 커피는 생각하는 커피이다.
천천히 진한 커피 향에 취하는 사이
커피를 마시는 이는 머릿속에서
조용히 생각의 주변을 서성인다."



          잘 어울리지 않나요? 저는 커피를 볶는 매 순간 어떤 맛이 나올까 궁금합니다. 예측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맛은 적어도 커피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매일 볶아대는 커피이지만, 늘 '반전의 맛'을 꿈꿀 수밖에요.



밸런싱사이폰Balancing ciphon 방식으로 추출하는 모습입니다. 신기방기!



*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10년 전, 제가 처음 '커피 로스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부터 개인의 '사소한' 호기심을 따라 풀어낸 것입니다. 커피에 내공이 깊은 분께서 보신다면 혀를 찰 부분도 있겠지만, 그저 귀엽게 봐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주말작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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