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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소년 Aug 09. 2017

'자유의지'에 대한
고찰(考察) 같은 소리  

2017년 8월 입추(立秋)를 하루 지나, 폭염주의보 속 Yeti 라이딩



제 경험으로 보면,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실패할 일도 적고,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요동치는 난감함이 불편합니다. "오랜만에 자전거나 타볼까?" 했더니, 타이어에 바람이 삼복더위 우리 집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 있네요. 고백하지만, 저희 집에는 강아지는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한때 못생긴 걸로 정평이 나있는 '퍼그'종을 키웠던 적은 있지만, 슬픈 사연이 있어 지금은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우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표현이 '적당히 탄력 있는 공기압'을 가진 타이어의 반대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저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느릿느릿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의도적'이라는 얘기는 실제로는 무척 당황스럽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의도하지 않은 즉흥적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려고 할 때 제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어제 입추(立秋)가 지났지만, 폭염의 예봉은 여전히 예리합니다. 수은주(이 표현을 아는 분은 아재십니다.ㅎㅎ)가 33도 위를 넘실대고 한증막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연신 땀을 훔쳐야 하는 날씨이네요. 이런 뻔한 여름 날씨의 오늘, 저는 결심을 굳힙니다. 예측 같은 것은 개나 줘버려(개에겐 정말 미안합니다)!



오늘 하루, 사진 속 '피스타치오 아몬드' 아이스크림 색을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듬직한 펌프를 사용해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니, 제 자전거는 금세 1cm 정도 키가 자라고 늠름해졌습니다. 이렇게 잘 생긴 녀석을 그동안 사람이 출입할 때만 빛이 드는(현관의 동작인식 센터가 작동할 때만 켜지는 등) 곳에 방치하고 있었네요. 오늘만큼은 (작렬하는 태양을 향해) 보란 듯이 이 녀석의 질주본능을 깨워줄 겁니다. 브레이크 상태는 어떤가요? 좋아!, 오랜만에 이 녀석의 안장에 올라타니 부르르 몸을 떱니다. 녀석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군요. 페달 느낌은? 좋아!. 물 한 병을 케이지에 장착, 이만하면 오늘 폭염 라이딩 출정 준비는 끝난 듯합니다.



지난 겨울 눈내리던 날, 오송식약처 뒷산 눈발 라이딩 영상으로, 일단 심신(心身)을 Cooling쿨링 시켜볼까요?



          계획은 없습니다. 목적지는 청주시 수암골의 하늘다방! 대강의 루트만 정했습니다. 오늘 라이딩의 미션은 단 하나. 하늘다방에서 마시는 얼음처럼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겁니다. 폭염 속에서 흘린 한 바가지의 땀을 보상해 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 이후엔 바퀴 닫는 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겠지요. 때 되면 먹던 밥은 몸의 신호를 따라 전통시장 어딘가에서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요. 오늘만큼은 순간순간의 욕구와 호기심을 좇아 '자유의지'로 활보할 겁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곳을 표시하는 빨란 색은 저의 질주본능을 더 흥분시키는군요.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
얼굴을 가린 버프 buff는 땀에 젖어
숨쉬기 조차 힘들게 만듭니다. 


청주 수암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눈 주위까지 꼼꼼하게 바른 선크림은 땀에 녹아내려 눈을 따갑게 자극합니다. 공사 중인 도로로 인해 자동차의 질주 틈바구니에서 저의 라이딩은 더욱 스릴 넘치고, 지루하고 긴 오르막은 당장이라도 안장에서 내려 끌고 가라고 유혹합니다.(산에서였다면 이미 벌써 '끌바'(자전거를 끄는 행위를 말하는 업계? 용어)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19km 남짓을 달렸고, 제가 살고 있는 오송과 정반대 쪽에 있는 수암골 하늘다방에 도착했습니다. 늘 반갑게 맞아주시는 하늘다방 점장님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꿀 같은 생수 3통을 그 자리에서 비워냈습니다. 수암골을 '다운힐'(산악자전거의 위험천만한 내리막 달림) 하듯 단숨에 내달립니다. 잠시 청주 북부시장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우니, 카톡! 아내로부터 문자가 도착하는군요. "여보, 언제와? 난 집이야". 빨리 집에 오라는 말씀이신 거죠? 오, 이런! 갑자기 계획이 생겨버린 것 같군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명확한 목적성과 최단 루트를 가늠하는 방향성이 생기면서, 평범한 일상으로 확! 들어와 버린 느낌이랄까요? 원래 오늘은 저의 '자유의지'대로 호기심과 욕구를 좇아 하루를 보내기로 한 날이잖아요. 하지만, 지엄한 아내의 메시지에 제 페달링에 힘이 붙습니다.



두리번 거리다 만난 '미술중심' 커피숍입니다. 전에 한 번 와봤던 기억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그러다가,
열심히 페달을 밟다가, 정면의 차량을 주시하다가,
긴 오르막을 오르다가, 버프 Buff를 내려 숨 한 번 크게 쉬다가,
구름이 들어오는 하늘을 찌푸린 눈으로 올려다보다가,
불현듯 눈에 들어온 '커피자유'였습니다. 





          그만큼 '커피자유'는 드라마틱 Dramatic 했습니다. 예측과 의도는 개나 줘버리는 날(다시 한번 개에게 미안합니다). 그래서 Yeti(제 자전거 이름입니다. 아시죠? 그 유명한 설인, 빅풋)를 세우고, 성큼 '자유의지'를 앞세워 '커피자유'에 들어섰습니다. 뭐랄까?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마시며 밥 말리의 레게 음악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공간입니다. 베스킨라빈스 피스타치오 아몬드 아이스크림 색과 레몬색, 적포도주색이 적절히 어우러져 바탕색이 되어주고, 밥 말리의 사진들과 자메이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프린트의 보자기?들, 소품들, 잘 어울리는 가구들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군요. 





          하지만 아쉽게도 블루마운틴은 가격대가 비싸 메뉴에 없고, 음악은 레게 빼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입니다. "예술하시는 분이신가요?"하고 물어볼 정도로, 자유롭게 기타도 튕기고 노래도 읊조리는 주인장은 자연스럽고 친근합니다. 심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공짜로 한 잔 더 주시는 여유로움까지. 역시 이곳은 남미 자메이카의 유명한 그곳일지 모릅니다.





오후 4시 59분,
이제 '의도'를 분명히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참 사랑스럽고 요리도 잘하지만, 때로는 엄격하거든요. '커피자유'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예측 가능함' 속에서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판단해 언제나 일정한 수준 이상의 만족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일하면서 언제가 힘드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을 할 겁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최고의 컨디션'으로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큰 일이고 힘듭니다. 주변의 시간은 '정해진 시간'을 위해 촘촘히 준비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치열하게 기다립니다. 물론 제가 늘 하는 일이고 제일 잘하는 것이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보여주시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송에서 수암골까지 왕복 40Km 가까이를 달렸습니다. 하루가 지났어도 Yeti의 두 바퀴에선 어제의 열기를 느낄 수가 있네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 결국 '예측 가능한 일상'으로 돌아왔네요.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예측 가능하지 않고자 했던 시간을 지나오니, 예측 가능함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는군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자유의지'대로 굳이 예측하지 않고 살아본 하루에 대한 짧은 고찰 같은 소리였습니다. 


주말작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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