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요가 Yoga 수업을 마치고
제가 Yoga에 대해 글을 쓰게 될 줄은 오늘 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운동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Yoga는 남자들이 하기엔 너무 고통스럽고 때론 정적이어서 지루할 것 같은 운동이었습니다. 저도 여느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고요. 근육의 실핏줄이 터지는 통증은 기꺼이 감내하면서, 인대가 부드러워지는 수련은 고문처럼 고통스럽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렇게 Yoga는 제 인생 ‘버킷리스트’에 한 줄로 올려져 있었지만, 실행 가능성은 ‘0(Zero)’에 가까웠습니다.
Yoga는 산스크리트어 ‘yuj’를 근원으로 ‘결합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정한 자세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것’, 우리가 많이 들어보고 알고 있는 Yoga입니다. 저는 아내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평생의 숙원이었던 ‘Yoga’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오늘 오후 1시에 말이죠. 왠지 꼭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이기에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먼저 ‘Yoga’ 수업을 마친 아내는 근처 커피숍에서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접이식 미니벨로 ‘Tikit’을 챙겨 오송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청주 시내 방면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 창문을 살짝 당겨 여니,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아직 덜 마른 머릿결에 ‘후욱’ 청량한 볼륨감을 불어넣어주네요. 30분 만에 청주 버스터미널 근처 정류장에 도착해, 아내가 기다리는 커피숍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허벅지 근육에 힘이 넘치는 걸 보니, 몸상태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습니다.
내 몸이 ‘Yoga’를 만나기 1시간 전,
단기 속성 ‘Yoga’ 이론 벼락치기 공부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무위키’(namu.wiki)에 소개된 ‘요가의 형이상학적 바탕’에 대한 설명입니다.
읽어보시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저도 처음 읽어보고는 딱 이 반응이었습니다) 싶으시다면, 건너뛰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꼭 읽어 보고야 마는 고집스러운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요가는 형이상학적으로 상키야(Sāṅkhya, 數論)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에 의하면, 세계는 다수의 ‘자아’와 단일한 ‘원질(prakṛti)’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원질’은 삿뜨와(sattva), 라자스(rajas), 따마스(tamas)라는 세 가지 속성(guṇa)을 갖추고 있는데, 삿뜨와가 밝고 경쾌하고 즐거운 것에 해당하는 속성이라면, 따마스는 이와 반대로 어둡고 무겁고 우울한 것에 해당하는 속성이며, 이 사이에 끼어 있는 라자스는 역동적이고 격정적이며 고통스러운 것에 해당하는 속성으로, 이들이 일정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으앗! 이게 한 문장이라니!)
그러다가 ‘자아’가 ‘원질’에 접촉하게 되면 먼저 ‘원질’ 내부의 라자스가 동요되면서 세 가지 속성의 평형 상태를 깨뜨리게 되고, 그에 따라 다른 속성들도 덩달아 요동치면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을 벌이게 되는데, 이 가운데 삿뜨와의 요소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붓디(buddhi) 곧 ‘이성’이 생성된다.
그리고 이 ‘이성’으로부터 아항까라(ahaṁkara) 즉 ‘자아의식’이 싹트게 되는데, 이때 삿뜨와가 우세하면 ‘몸’과 더불어 ‘마음’이 생성된다. ‘자아’는 이러한 '몸'과 ‘마음(citta)’을 통해 외부 세계를 느끼고 또한 인식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자아가 ‘몸’과 ‘마음’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엄연히 독립되어 별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 해도 ‘자아’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따라서 ‘몸’, ‘마음’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불생불멸의 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 이러한 무지는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즉 ‘이성’ ‘몸’, ‘마음’이 마치 물결이 이는 오염된 연못처럼 정결하고 고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아는 이러한 연못 수면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잘못 알게 되고, 여기에서 번뇌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아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자아를 비추는 거울인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동요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 방법을 추구하면서 개발해 낸 것이 바로 요가인 것이다.
‘Yoga’의 형이상학적 배경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셨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배경은 배경일뿐 ‘유연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뿐더러, 그렇게 쉬운 깨달음이라면 누가 어렵게 ‘Yoga’를 수련할까요? 아무튼 ‘Yoga’는 2010년부터 미군의 훈련 프로그램에도 들어갔다고 하니, 육체적 향상과 정신적 스트레스 경감에 ‘Yoga’가 도움이 된다는 대중적인 믿음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가 시작한 ‘Yoga’는 ‘하타 요가(Hatha Yoga)’라고 부릅니다.
선생님께 그렇게 알려주셨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 저는 세상 처음 ‘Yoga’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답게 ‘글’로 요가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끄덕끄덕 아~ 그렇군! SNS에 한 줄 올리면서 ‘있어 보일만한’ 고급스러운 용어를 기억해 둡니다. 이런! 제 스스로가 너무 실망스럽군요. 이제 막 시작한 ‘Yoga’ 초보자이지만, 수련하는 사람의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마음의 소리를 글로 쓰려니, 조금 유치하네요. 속마음은 대게 유치한가 봅니다)
여러 정보를 요약해 보면, 요가는 크게 7가지로 나뉩니다.(요가의 분파나 종류가 워낙 많으니,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1. 근력을 요구하는 남성적인 ‘아쉬탕가 요가(Ashitanga Vinyasa Yoga)
2. 균형을 중시하는 ‘아엥가 요가(Iyengar Yoga)
3. 아쉬탕가와 아엥가의 장점을 모아 미국에서 만든 ‘빈야사 요가(Vinyasa Yoga)
4. 국내에서 핫요가(Hot Yoga)라고 불리는 ‘비크람 요가(Bikram Yoga)
5. 인도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를 접목한 일종의 맞춤 요가인 ‘테라피 요가(Therapy Yoga)
6. 미국의 프로레슬러 ‘다이아몬드 델러스 페이지’가 창안한 ‘DDP 요가(DDP Yoga)
7.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중력을 이용해 요가를 하는 ‘플라잉 요가(Anti gravity Yoga, Aerial Yoga)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요가 입문자 과정을 뗀 것 같죠? 하지만, 제 몸의 유연성은 여전히 ‘뻣뻣함 지수’ 10을 유지하고 있군요. 글을 쓴다고 몇 시간 앉아 있었더니, 오늘 배운 요가 자세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습니다.(이 표현을 모르신다면 당신은 저보다는 신세대이십니다)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된 Yoga수업이 끝나고,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역시 운동은 배워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요가 마스터님(본인의 양해를 구하지 못해 실명은 다음 기회에)의 부드러운 말씨와 절대 무리해서 푸시 Push하지 않는 수업은, 역시 Yoga를 수십 년 수련한 ‘요가 마스터’의 격(格)을 느끼게 해줍니다. 옆에서 혼자 요가 동작을 복습하던 아내는 생각보다 덜(?) 뻣뻣한 남편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제 시선에서 바라보고 느낀 점이니 오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요가 수업이 끝나고 4시간이 지났습니다.
골반 주위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고 노곤한 피로감이 밀려오는군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MBC 총파업이 55일째를 지나고 있습니다. 일상을 스스로 깨고 나와,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파업 일상은 불규칙한 일정으로 때론 피곤하고, 오랜 투쟁에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습니다. '나'를 다스릴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Yoga’를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 첫 ‘Yoga’야,
오늘부터 1일 하자!
- 주말작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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