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소년 Aug 12. 2017

영화 타고, 기차 볼까?

13th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탐방기



이 모든 것들이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후아~! 
기력이 쇠한 여름이 토해내는 열기와 습도가 제법입니다. 인생 나이가 두 자리로 접어드는 한 소년을 떠올립니다. 긴 여름방학, 소년이 선택한 놀이터는 십중팔구 시골 할머니 댁 근처 개울이었습니다. 온몸이 쫄딱 젖은 채로, 까맣게 그을린 얼굴 사이로 하얀 치아가 빛나는군요. 소년의 건강한 미소와 눈빛, 까맣게 그을린 피부, 근육이 살짝 들어차 예쁜 종아리, 물기가 맺혀있는 머리카락. 이 모든 것들이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nambotte 의 사진을 재편집함



지금은 아파트 바닥분수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후아~! 소리를 내뿜습니다. 막바지 더위와 맞서 싸우며 고된 몸 쓰기를 한 어른들은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엎드린 등 위에 쏟아부으며 동시에 후아~! 생각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들고,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습니다. 아침 내내 흐리던 하늘은 어느새 입체파 구름들을 세워놓고 복사열을 내뿜기 시작하는군요. 

"딩동댕동~!" 

"지금 기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강장에 계신 승객 여러분께서는..." 
기차를 기다리다 잠깐 딴생각을 심오하게 했네요. 저는 지금 오송역에서 제천행 O-Train(오-트레인, 중부내륙순환철도)을 타려고 하는 중입니다. 윤달이 끼어 있는 올해는 여름이 제법 길게 느껴질 것 같네요.



충북선 오송역 / 녹슨 철로와 초록의 나무, 강철덩어리의 기차들이 묘한 '거칠음'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중부내륙순환철도, O-Train이 충북선 오송역에 들어오고 있네요



Let's Jazz!
영화는 클래식을 사랑한다
클래식도...



저는 유료 음원사이트 중 '멜론'과 '애플뮤직'을 이용합니다. 멜론이 2달러(월 기준) 정도 더 비싸기는 하지만 다양한 국내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로앤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음원사이트이다 보니 다양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기차를 타고, 흔들리는 O-Train을 타고(KTX에 비해 흔들림이 심해 멀미가 조금 나는군요), 처음 가는 제천행 충북선을 따라, 국제음악영화제에 함께 한다는 기대감에 부푼 가슴을 안고 가는 여행에 어울리는 음악을 제대로 골라주는 곳은 '애플뮤직'이네요. 지금 이 순간엔  역시 Jazz!



빠르고 예리한 KTX와는 다르게, O-Train은 몇박자 느린 리듬으로 창밖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숨 쉴수록 건강해지는 이 기분은 뭐지?





제천역을 나서니 바로 앞에 '여행안내소'가 보이는군요. 여행자에겐 정말이지 공기 Air처럼 당연하면서 꼭 필요한 공간이죠. 어! 그런데 이곳 공기 Air가 수상합니다. 바람이 건강한 내음을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옅은 한약재 냄새 같기도 하고, 참기름 냄새 같기도 하네요. 낯선 곳에 막 도착한 여행자는 금세 평정심을 찾고 여행에 몰입합니다. 기분이, 하늘이, 구름이, 사람이, 음악이 약간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때쯤 열세 번째 맞이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는 영화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게 현실이냐?'라고 되묻고 싶기도 한 이곳은 영화의 도시 '제천'이군요.



오늘의 '픽' Pick :
(011)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단편3
Korean Music Film Now Shorts 3



사실 어떤 영화를 꼭 보려고 제천을 찾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루 전에 갑작스레 정한 제천행이어서 그저 13년째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제천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영화제는 제천시내에 있는 메가박스 영화관과 문화회관, 제천 의림지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날이죠. 평일이고 아직은 더운 날씨여서인지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뜻 봐도 영화인이구나 싶은 사람들(외국인도 포함됩니다)이 영화제 현장을 거침없이 활보하고 있는 걸 보면,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만큼은 이곳은 새로운 콘셉트의 (한방과 바이오에서 벗어난) 제천임에 틀림없습니다. 





내 자리 옆 주연배우
반가워요!
그러고 보니 방금 영화에서 봤군요



단편영화 '예술의전당'(감독:이준섭)의 남주: 우정국 배우님/ 여주: 오혜수 배우님 / 신기방기 합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제가 오늘 유일하게 본 영화(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단편3_단편영화 4편을 연이어 보여줌)의 주연배우들 옆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답니다. 영화가 끝나고 실내등이 켜지기 전까지는 몰랐죠. 무심코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조금 전 그 영화 속 그 배우들이 제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함께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들의 영화에 잠깐 카메오 출연했던 건 아닐까 착각할 뻔했다니까요? 단편영화 4편의 감독과 배우가 무대 앞으로 나오고, 관객과 함께 조촐한 세리머니를 하듯 진솔한 질문과 진심이란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일반 상업영화의 무대인사와는 정말 비교해선 안 될, 따뜻한 관객의 시선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 제작진과 관객 사이, 오묘하면서 편안한 분위기의 질문과 답변 시간입니다 



필터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 좋아?



4편의 단편영화(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단편3)를 연이어 보고, 감독과 배우와의 질문과 답변 시간까지 지켜보고 나서, '비현실의 어둠'을 벗어납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을 따라 나 있는 세로로 긴 창문 너머로 근육질의 우람한 구름들이 건강함을 과시하는군요. 역시 이곳은 구름마저 건강합니다. 적당한 필터를 장착하고 찰칵!(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본 저는 흰색과 회색 덩어리의 구름을 잘 표현 줄 수 있는 필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붓으로 그려낸 구름같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다른 게 나는 싫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이 있다면 단연 광고와 비상시 탈출 경로, 영화 관람 시 에티켓을 알려주는 영상이 끝나고, 본 영화의 시작으로 들어갈 때, 정확히 그 시점에 실내등이 페이드아웃 Fade out(서서히 어두워지는)될 때입니다. 이제 진짜 시작인 거죠. 그에 비해 영화가 끝나고 실내등이 켜질 때는 이런 '서서히 Fade'라는 과정이 없어 무척 아쉽습니다. 분위기도 없이 '번쩍' 등이 켜져 버리죠.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고, 빨리 현실로 들어오라는 것인지, 순식간에  영화관 내부는 밝아지고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은 '현실의 짐들(팝콘 그릇, 콜라 잔 등)'과 '잠시 유보시켰던 현실로부터 날아든 문자메시지, 부재중 전화, 해야 할 일들'을 부산스럽게 챙기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이곳은 가장 저렴하게 '현실도피형'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영/화/관'이거든요(영화에 대한 폄훼는 절대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 조금 더 들려주세요~



울산에서 온 <뉴트럴리비도 Neutral Libido> / 화면 오른쪽의 흥부자 두 분을 보시라~



'일렉트로니카를 기반으로 아날로그적인 기타와 신스를 접목한 독특한 사운드를 보여주는 밴드'라고 영화제 안내책자에서 소개하고 있군요. 무대에 오른 밴드는 울산에서 올라온 세련된 사투리를 현란하게 구사하는 교회 오빠 스타일이네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보컬 입담은 절정에 다다르고 관객을 쥐락펴락합니다. 노련한 밴드, 한두 번 무대에 서 본 솜씨가 아니군요. 저도 낚였습니다. 얼떨결에 두 팔을 들고 Put your hands up! 달달한 음색이 노래할 때는 섹시하고 둘이 있을 때는 다정한 그런 녀석?(미안)임에 틀림없습니다. 정신 바짝 차여야겠습니다.





'물 만나 영화, 바람난 음악'보다 더 More



제천으로 떠난 반나절의 영화 여행은 '그림 같은 구름'을 어깨에 걸치고, 낯설고 흥겨운 영화와 우연한 만남(두 주연배우님들)이 전해준 설렘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글의 앞부분은 제천으로 향하는 O-Train 안에서 촌스럽게도 약간의 멀미에 시달리며, 몸통 부분은 영화제 프로그램인 '거리의 악사' 공연 현장에서 몸을 둠칫 둠칫 하며, 혹은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들렀던 편의점 간이 테이블 위에서 쓰였습니다. 에필로그와 마지막 글 다듬기는 거실 긴 나무 책상 위에서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둠칫! 둠칫! 영화제 자원봉사자들도 축제의 일부인듯 함께 즐기고 발산하고 마음을 나눕니다



1985년, 중학교 1학년 시절, TV에선 '환상특급' Twilight Zone이라는 미드가 선풍적인 유행이었습니다. 지금의 '미스터리 판타지' 장르. 저에게 13번째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기차 타고 가야지~' 결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추억을 가져다 제천행 '환상특급'을 예매하는 순간, 영화제 입장권도 함께 예매한 셈인 거죠. 


2004년 4월 1일 우리나라에 KTX가 처음 개통된 이후, 지난 13년 동안 무궁화호를 탈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탈 일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이번 여정은 13년 만에 소환해 온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13번째 맞이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다녀온 것입니다. 



'필연(必然)'은 '우연(偶然)'의 탈을 쓰고 온다고 했던가?



이번 여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상황, 영화와 배우, 음악과 구름들이 '필연(必然)'이었든, '우연(偶然)'이었든 상관없습니다. 앞으로 저는 '필연(必然)과 우연(偶然)'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던 '13th.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기억하게 될 겁니다.



문고판 책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의 영화제 안내소책자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트레일러 <낮과 밤>



이번 영화제의 트레일러 '낮과 밤'을 소개하는 글의 '프롤로그'  부분을 여러분께 소개하면서 이번 '오늘 여행을 쓰다'_"영화 타고, 기차 볼까?"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트레일러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연인과 같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실루엣만으로 설렌다. 우리의 연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실루엣과 같은 이번 트레일러를 소개한다. <낮과 밤> 제목 그대로 음악이 흐르는 낮과 밤이 만나는 순간을 몽환적으로 담았다. 






[제1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8월 10일(목) ~ 15일(화) 6일간, 제천시 일원
역대 최다, 34개국 총 107편의 국내외 음악영화 상영
차별화된 음악프로그램, 원 썸머 나잇, 의림 썸머 나잇,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
개막식 : 8월 10일(목) 19시, 청풍호반무대
폐막식 : 8월 15일(화) 19시, 의림지 무대



주말작가 씀.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바람이 바람과 바람을 불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