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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소년 Feb 04. 2019

아내의 지도

두 발로 그린 교토의 대동여지도



2007년 12월이 끝나갈 무렵 

아내의 첫 일본 생활은 시작되었다. 


이런 기회 없다며 등 떠밀듯 교토대학교로 아내를 떠나보낸 내 마음도 걱정이 많았다. 1997년에서 1998년을 걸치며 1년을 미국에서 공부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아내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삶의 의미 있는 기억들로 채워질 거라고 애써 설득하며 등 떠밀어 보낸 일본 유학이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제출한 국외 연구자 과정 프로젝트가 받아들여졌고, 일본의 환경조경 분야 권위자와 함께 연구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던 것도 이유이다. 



지긋지긋한 향수병



동시에, 교토대학교 박사 후 과정은 아내에게 어여쁜 4살 된 아이와 떨어져 혼자 지내야 하는 힘든 1년이었다. 또한 지긋지긋한 향수병을 견뎌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을 1년 후 귀국 후에나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결혼하고 어린아이까지 둔 아내를 일본으로 유학 보낸 통 큰 남편으로 여겼다. 아내에게 인생에서 또 올까 싶은 기회를 잡게 하고 싶었다. 아이에게는 엄마의 빈자리가 최대한 안 느껴지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로 나 자신에게도 결전의 1년을 다짐했다. 


틈틈이 아이 영상을 이렇게 촬영해 메일로 보내 그리움을 달래길 바랐다. 어디까지나 나의 의도였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보고 싶고, 더 그립고, 더 아팠을 것이다. 





2007년 12월 끝자락에 우리 가족은 교토 Kyoto 에 도착했다. 이민가방까지는 아니지만 외국 생활이 처음인 아내를 위해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한다고 챙긴 것들이 적지 않았다. 처음 맛본 교토의 겨울은 차가운 습기가 살갗을 파고 드는 낯선 한기였다. 



일본에서 머물 첫 집에 도착했다



레오팔레스는 일본의 대표적인 임대 주택 프랜차이즈이다.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집을 구해 놓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곳을 첫 거처로 정했다. 2층의 단순한 구조의 건물로 방음이 잘 안되고, 로프트(Loft : 부분 복층) 구조의 오피스텔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 출처 : Google / 딱 이런 구조의 집에서 교토 생활을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걱정이었다. 

일주일 꽉 채워 휴가 일정을 잡은 나는 기간 내에 아내의 일본 정착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켜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의식주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도록 해야 했고, 학교까지 가는 최적의 동선과 방법을 연구했다. 아플 때, 돈이 떨어졌을 때, 갑자기 위험에 처했을 때, 가족이 보고 싶을 때. 모든 순간순간이 떠올랐던 것 같다. 


필요할 것 같은 모든 곳을 직접 걷고 달려서 확인했다. 

자전거를 구입한 뒤로는 자전거로 교토의 골목을 누볐다. 

아내가 낯선 환경에서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혹시 모를 상황들을 상상하며 꼼꼼하게 확인했다. 큰 종이 위에 직접 팬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고 확인하고, 새로 추가되는 부분들을 반복해서 확인했던 것 같다. 



두 다리로 그린
교토의 대동여지도



그렇게 일주일만에 '아내의 지도'가 만들어졌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처럼, 두 다리로 직접 확인하며 그려낸 지도랄까? 아래 지도 사진을 보면 종이테이프 자국이 보인다. 아내는 잘 보이는 방안 어딘가에 붙여 두고 틈틈이 살폈을 것이다. 10년 만에 집 대청소를 하면서 찾아낸 보물들 가운데 단연 내게 가장 소중한 한 장면이다.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감정을 다잡는다. 웬 주책!  


요즘 자꾸 옛날이야기를 쓰고 있다. 추억팔이는 아니지만, 지난 시간 가운데 대륙 같은 드넓은 영토를 구축하고 있는 기억들이 있다. 사실은 그 위에서 뛰어놀고 있는 것인데, 잊고 살았나 보다. '처음'을 생각하고, '기본'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직접 팬으로 그려낸 '아내의 지도'



- 집 근처 식료품점 Fresco(조금 비쌈) 위치

- 교토대학교까지 오가는 (안전한) 자전거 루트(소요 시간 확인)

- 교토대학교까지 오가는 버스 노선과 지하철 노선(소요 시간 확인)

- 생활비를 보내줄 은행 계좌 개설

- 교토역까지 가는 방법

- 외국인 등록과 국민건강보험 가입하는 곳

- 학교에서 신호등 안 걸리고 자전거로 시내 가는 루트(천변 도로)

- 향수병 응급 처방용 '한국음식' 파는 곳

- 비자 문제 해결하는 곳

- 자전거 구입하고 수리하는 곳

- 김치 불고기가 맛있는 규동 전문점

- 스타벅스 커피점 위치

- 빵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맛있는 빵집'

- 각종 문구류 파는 화방

- 맛있기로 소문난 '모스버거' 위치

- 주요 도로 이름

- 동서남북

- 교토의 유명 정원들

- 주요 관광지 위치

- 나이키 매장 위치는 왜 표시했을까?






참 다행이다. 

아내는 힘든 내색 안 하고 첫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교토에서의 박사 후 과정 대학원 생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주말이면 한국인 유학생들과 가까운 곳으로 놀러 다닐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자전거도 제법 잘 타서 왠 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교토의 골목골목을 익숙한 듯 누볐을 것이다. ㅎㅎ  






아내의 두 번째 거처는 기숙사였다.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좁은 기회를 찾아 들어간 곳을 향해, 아이와 함께 엄마를 보러 두 번째 교토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특유의 기운 넘치는 재잘거림으로 엄마를 반겼고, 엄마의 낯선 공간과 물건들에 신기해했다. 아래 그림은 당시 아이가 그린 엄마의 기숙사 방이다. 그림은 지금도 거실 한편에 보물처럼 액자 속에서 가끔씩 추억팔이를 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로 간직하고 있던 사진들을 꺼냈다. 기억이라는 것이 편집기 타임라인 Timeline 위에 순서대로 주욱 나열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모든 사진은 켜켜이 겹쳐져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현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과거를 꺼내어 글을 쓰고 추억을 곱찝어 생각할수록 분명해진다.



리코 Ricoh 카메라로 담아낸 2008년 여름 장면들이다. 




글쓰기가 점점 현재와 가까워지고 있어 다행이다. 


2019년은 시작이 심상치 않다. 잊혀 가는 기억을 다시 생각해서 정리하고, 차곡차곡 채우고 쌓아 올린 것들을 비워내는 과정이 입춘(立春)까지 이어졌다. 내가 왜 이러나? 갑자기 무서운 생각도 들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흐름 Flow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살면서 감사한 순간들이 차고 넘쳤구나! 내 마음속에 봄이 먼저 찾아오나 보다.





- 주말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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