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햇볕과 불안

30일 글쓰기 챌린지 Day 13 불안

by 꿈꾸는오월

불안은 인간의 진화적 특성이자 본능이다. 인류는 불안 덕분에 살아남았고, 또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불안은 삶을 집어삼키기도, 나아가게도 하는 알 수 없는 존재 같다.


나는 불안지수가 높은 편이다.

몇 해 전, 심리검사의 결과로 알게 됐다. 상담선생님께서 나는 오랫동안 불안을 동력으로 살아왔다고 진단(?)해주셨을 때, 수없이 불안을 이겨보려 했다. 그런데 잘 안 됐다. 애초에 몇십 년 그렇게 살아온 삶의 패턴이 몇 번의, 몇 개월의 시도로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불안이라는 것과 나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녀석을 좀 달래볼 시도를 해봤다. 여전히 불안을 다스리기란 힘들고, 그 정도도 다르지만, 그냥 불안과는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안이 안 왔으면, 때때로 한 번씩만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나타나는 습관들


그래서 여러 가지 뱡법을 시도해 봤다. 크게 세 가지, 먹기, 읽기, 혹은 움직이기.


먹기란 가장 편한, 즉각적인 도파민이다.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람들과 먹는 한 끼 식사는 언제나 좋다. 특히나 스트레스를 날려준다는 매운맛은 꽤나 효과적이었지만, 다음날의 속 쓰림이란 부작용도 있었다. 게다가 먹고 난 후 배부름의 묘한 기분 나쁨이랄까 죄책감이 따를 때도 있었다. 그래도 적정하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맛있는 음식은 여전히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읽기다. 내가 불안을 느낄 때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언가에 대한 무지, 그 알 수 없음에 오는 불안이 있었다. 그럴 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사람, 혹은 그런 경험을 극복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 방법론을 찾기도 하고, 성공담을 이리저리 모아 내게 맞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그럴 때면 불안 속에 작은 희망이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불안이 작아졌다. 혹은 아무 상관없는 소설을 읽기도 한다. 소설의 극적인 대립, 절정에 이른 갈등을 따라갈 때면, 현생의 나의 고민과 불안은 참으로 작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극복의 결말에서 용기를 얻기도 했다.


마지막은, 그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냥 밖으로 나가 걷는 것. 머리가 복잡할 때는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집이라는 공간은 내게 가장 편한 공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의 늪으로 빠지기도 쉬운 공간이다 편하기 때문에 늘어지기 마련이고, 걱정과 불안은 그 늘어짐 속을 비집고 밀려들어왔다. 그때 탁 트인 밖으로 나갔다.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감촉과 다리의 움직임은 내 불안을 흐트러지게 했다. 특히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걸을 때면, 불안도 흩어졌다. 다시금 집에 돌아올 때면, 다리는 뻐근하지만 생각의 부유물들은 다 가라앉아 차분해졌다.


나는 불안이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존재 같다.

늪에서 나오려 할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것처럼, 불안에 갇힐수록 나 스스로 더 많은 불안의 뭉치들을 불러들였다. 네모난 방 안에서, 나 혼자 힘으로 그 불안을 해체하기엔 역부족이었고, 불안의 뭉치에 깔린 나만 보였다. 그래서 다른 도움들이 필요했고, 지금껏 찾은 방법들에 의지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 모든 불안을 없애고 싶지만, 한 인간인, 평범한 내가 인류의 본능을 거스를 수는 없다. 본능을 잘 달래가면서 받아들이기로 매번 마음먹는다.

내 안에 뭉쳐있는 불안은, 밖에서 바람과 햇볕의 풍화작용에서 흩어지고, 쓸려간다. 그리고 다시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