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 싶은 칭찬

30일 글쓰기 챌린지 Day 19 목소리

by 꿈꾸는오월
언젠가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


이역만리타국에서도 전화한 통이면, 게다가 실시간으로 영상통화도 가능한 시대에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겠지.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생각하다, 문득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산딸나무 꽃 필 무렵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9년 전 그날은.

오후에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온 가족이 병원에 모였다.

응급실 병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내 기억 속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가뭄에 말라 붙은 저수지 위의 물고기처럼 가쁜 숨을 몰아 쉬시던 할아버지. 한 명씩 자식, 손자들을 보셨다. 할아버지는 손은 혈전으로 푸른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가족들의 울음이 응급실을 채웠다. 병상 뒤에 놓여 심정지를 기록하고 있는 그 일자의 선이, 아무런 굴곡도 없는 그 선이 생과 사를 갈랐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시퍼런 손을 잡았고, 엄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안고 또 안고 울었다.



화장하던 날, 흰색 나비가 한 마리 날아왔다.

이모들은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나비가 그 위를 몇 번이고 맴돌았다. 그리고 다시 우리 위를 지나, 유일하게 서 있던 막내이모의 손에 앉았다 다시 날아갔다. 나비는 우리 주변을 그렇게 맴돌다 화장장의 창문으로 날아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나비가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나비가 되어 마지막으로 우리를 보고 가신 것이라고. 나중에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이모들은 또 울었다. 나비, 아니 나비가 되신 할아버지를 못 본 아쉬움과 나비로 훨훨 날아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는 생각에.



솔직히 고백하자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크지는 않다. 농민이었던 할아버지는, 손주였던 내게는 무쇠 같은 분이셨다. 햇볕에 그을려 어두운 얼굴과 말수 없는 무뚝뚝함 그리고 경상도 특유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도 자식, 손주들이 오는 날이면 닭을 잡고, 소를 잡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이 심부름을 잘하거나, 칭찬을 해주실 땐 늘 “양반이네”라고 하셨다.

양반이라는 말이 할아버지만의 표현이었다.


할아버지의 생전 목소리, 모습을 떠올려보려 하는데 쉽지 않다. 십수 년이 흐른 것도 아닌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떠올리는 이 목소리가 망각에 풍화되고 침식된 기억일까 봐 마음이 조급하다. 다시 떠올려보고, 또 떠올려봐도 그때 그 모습, 목소리가 정확하지 않은 것만 같다.



다시 한번 듣고 싶다.

우리가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면, 적은 말수지만 반겨주셨던 목소리가. ‘양반이네’라고 말해주셨던 칭찬의 목소리가. 딱 한번 지금 들으면 기억을 다시 정확하게 돌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남아있는 것도 없다는 것이 마음이 시리다.

이전 18화다만 무뎌질 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