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라는 소우주

by 꿈꾸는오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그것은 커피가 아닐까.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타고 뇌를 깨운다. 그래서 아침의 커피는 직장인에게 하나의 의식이다. 마치 뇌에 올리는 제의 같은.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 얼음을 가득 채운 차가운 아메리카노는 목 넘김을 따라 혈관으로 퍼지며, 얼음을 깨고 입수하는 혹한기 훈련처럼 생존력을 끌어올린다.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이메일을 열면서 일과가 시작된다. 오후 세 시쯤의, 일탈과 같은 바닐라라테나 돌체라테처럼 혈당을 올리는 커피도 권태를 깨우기 위한 생계형 직장인의 몸부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마시는 공간도 대부분 사무실일 수밖에 없는 평일의 커피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주말의 커피는 다르다. 비로소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순간.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고, 갓 내린 원두 향이 채우는 여유로운 공간에서 홀로 앉아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 여기에, TPO 가 가장 완벽한 커피가 존재한다. 카페는 적당히 시끄럽지만 조용하고, 공개된 공간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모순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잔잔한 재즈 피아노의 선율, 커피가 추출되는 향기, 그리고 옆 테이블 사람들의 대화마저 백색소음이 될 수 있는 이곳은 온 오감을 환기한다. 누울 자리는 하나 없지만, 때로는 가장 좋은 안식처가 되는 이유다.


카페라는 공간은 참 묘하다. 둘러보면 꽤 많은 인생의 변곡점이 여기서 결정된다. 처음 만나는 남녀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면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는 공적인 회의도 열린다. 반가운 사람과의 정다운 이야기가 가득할 때도, 조용한 이별의 고백도 공존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교차로, 혹은 성공과 실패도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우주 같은 곳. 잠깐의 찰나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로 타인의 우주에 들어가거나 혹은 새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다중 우주 속 혼자라는 것은, 때로 시공간을 초월한 배경이 되는 경험을 가능하게도 한다. 오가는 사람들과 대화 사이 NPC처럼, 그 어떤 우주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전체 우주에는 속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 없이 홀로 앉은 자리는 블랙홀처럼 다른 우주의 소음과 향기를 빨아들이고, 모든 감각은 대뇌로 흘러 들어온다. 옆 우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건너편 우주의 신상 메뉴인 크림 라테를 눈여겨 볼 수 있는 초감각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우주의 하루는 분주하다. 세간의 화젯거리부터 시작해 A 씨의 이상한 성격에 관한 뒷담화, 불륜 소문과 같은 음모론도 떠 다닌다. 비타민 C를 메가도스 했더니 잔병이 다 나았다던가, 역 근처 한의원에서 한 달 만에 10kg을 뺐다던가 하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고급 정보도 흘러나온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옆자리 남자는 최근 바뀐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맞은 편 여자는 아이의 감기가 걱정이다. 그렇게 각자 인생의 십자가도 알게 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일생을 엿보는 순간, 마치 고해성사를 듣고 있는 신부님이 된 것만 같다. 타인의 우주를 허가 없이 유영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이어폰을 낀다. 시각은 개방적이지만 동시에 청각은 폐쇄적인 순간, 비로소 모든 우주의 통신을 끊고 나의 우주로 돌아온다. 다중 우주 속 선택적 고립은 몰입감, 때론 묘한 해방감마저 준다.


카페로 간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적당히 거리 둔 채, 나의 우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수많은 감정과 관계와 기억이 흘러가는 이상한 공간이다. 어떤 날은 새로운 결심을 다지고, 또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자신을 허락하는 곳.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조용히 나를 마주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카페는 그렇게 공전과 자전을 반복하며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매번 다른 시공간을 선물한다. 커피 향처럼 진하게, 음악처럼 은근하게.


오늘도 나는 그 익숙하고 이상한 우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