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두고 갈 것 같아 나만 애태운다.

by 황금지기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어야 하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어야만 비로소 한 송이 국화꽃이 피어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듯, 파동 역시 화려하게 발산하기 위해서는 또 그렇게 에너지를 응축해야 하는 법이다. 나를 데려가지 않으려고 시세는 갈 듯 말 듯 애를 태우며 힘을 모았나 보다. 나만 두고 달아날까 괜스레 나만 그렇게 애를 태웠나 보다.


일봉의 길게 늘어진 위꼬리에는 탐욕에 눈멀어 달려든 개미들의 피가 묻어있고, 깊게 파인 아래 꼬리에는 공포에 질려 던진 개미들의 서러운 한이 서려 있지 않겠는가! 언제든 만들어질 그 꼬리에 우리의 피와 한을 남기게 될 수 있음을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화려한 파동은 지루한 응축 끝에 피어난다. 기다림은 투자의 필수이자 생존을 위한 시간이다. 수익을 위해서는 지루한 횡보와 흔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위꼬리 끝에서 매수하고, 아래 꼬리 바닥에서 매도하는 우를 범하지 마라. 그 꼬리들은 개미들의 탐욕과 공포의 흔적이다.




성급함과 근거 없는 희망은 실점의 빌미가 되고, 그 실점을 단번에 만회하려는 더 큰 조급함은 대량 실점의 도화선이 된다. 모든 승부의 세계에서 수비에 치중하며 기회를 노리는 것은 생존의 불문율이다. 그러나 대다수 개미는 가격이 싸다는 착각인 '가격 측면의 이점(역진입)'과, 남들이 다 갈 때 따라붙는 '시각 측면의 편안함(추격)'이라는 인간 본성의 덫에 쉽게 걸려든다.


반복하면 필패할 수밖에 없는 조정 구간에서 큰 시세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인간이 극복해야 할 큰 장애물 중 하나인 작은 이익을 탐내지 않고 버릴 때, 자리가 잡히며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다. Y축(가격)에만 함몰되는 것이 뇌동매매라면, 그 본성에 복기와 반복, 값진 경험이라는 X축(시간)을 더해가는 과정이 바로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원칙은 곧 자제력이 만드는 원이다. 상수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흐른다는 것을 알기에 여유롭고 덤덤하다. X축의 깊이를 이해하는 자는 '기다리면 반드시 자리가 온다'라는 명백한 사실을 감각으로 체득하게 된다.




“돈 벌지 안 벌지는 모른다. 나는 벌 자신은 없는데 망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버는 거는 시장이 받쳐줘야 한다. 시장이 나빠져도 망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이제 비늘을 본 거다. 아직도 몸뚱이는 못 봤다. 여기까지 오는데 17~18년 걸리더라. 그것도 목숨 걸고 해서 그 정도다.” 시골 의사 박경철의 이 고백은 투자자가 도달해야 할 가장 정직하고도 위대한 결론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무엇을 억지로 거스르는 법이 없다. 투자 또한 그러해야 한다. 흐르는 물처럼 머리와 꼬리를 기꺼이 시장에 내어주며, 순리대로 허락된 만큼의 몸통만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머릿속의 저울은 내려놓고 파도가 출렁이는 해변에서 벌거벗은 채 온몸으로 춤추면서 파도를 즐겨야 한다.


파동이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그저 덤덤히 동행하라. 가다가 흐름이 꺾이면 꺾이는 대로 미련 없이 돌아서면 그만이고, 재차 쌍을 이루는 자리에서는 돌아가면 그뿐이다. 그저 돌고 도는 파동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라. 돌고 돌아 결국 기본으로 돌아오듯, 파동도 그저 돌고 도는 물과 같음을 깨닫게 된다.


시장을 이기려 하지 말고, 일부가 되어 흘러가라. 괴로운 이유는 머리와 꼬리까지 다 먹으려는 '저울질'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처럼 흐르고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춤추며 꺾이면 돌아서고 막히면 돌아가는 유연함에 불멸이 깃든다.




시장의 왕좌는 쉬지 않고 매매하는 자가 아니라, 적절히 챙기고 한 파동을 기꺼이 보내주며 시장과 호흡을 맞추는 자의 몫이다. 박스권의 지루한 흐름에 갇히면 어느 정도 원칙과 의지를 지닌 투자자라도, 흐지부지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서서히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매매 횟수가 거듭될수록 굳건했던 의지는 어느덧 '이상한 생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약해질 것이다.


이는 링 위의 권투 선수와 같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라운드가 길어지고 체력이 고갈되면 상대와의 간격을 유지하지 못해 난타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시장이라는 상대와 싸우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이길 방법은, 오직 커다란 행운을 기대하는 것뿐이다. 매매 횟수를 줄여 체력을 보존하고, 챙기고, 애매하면 한 파동을 흘려보내는 것—이것이 시장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투자자의 숙명이다.


시장과의 간격이 무너지면 원칙도 무너진다. 뇌동매매에 빠지는 이유는 실력에 더해 심리적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간격을 유지하라. 시장과의 간격 유지가 무너지면 뇌동이 시작된다. 거리 두기는 왕좌로 가는 필수 기술이다.




우리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처리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고 한다.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면 뇌는 오히려 그 금지된 대상을 강조하는 역효과를 낸다. 조종사들은 '장애물에 충돌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장애물에 집중하게 되어 사고를 부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키 선수들 또한 '나무에 박지 말자'라고 되뇌면 나무밖에 보이지 않기에, '길을 따라가자'라는 생각에만 집중한다. 길에 집중하면, 보이던 나무 사이가 사실은 충분히 넓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자는 우리 뇌가 부정의 개념은 약하므로 부러지는 원칙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의지를 세움에 있어 ‘추격하지 말자’가 아니라 ‘원칙으로 정한 자리를 기다리자’가 되어야 하고, ‘뇌동하지 말자’가 아니라 ‘원칙으로 정한 대로만 매매하자’가 되어야 한다.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마음은 흘러간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오직 해야 할 원칙의 행동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나무(장애물)를 피하려 애쓰지 말고 길(원칙)을 따라가는 데만 몰입하면 안전한 기회의 공간을 발견할 것이다.




파동은 직선 주로만 달릴 것 같지만, 반드시 곡선 주로를 만나게 되는 이어달리기와 같다. 시세는 항상 우리를 유혹하며 마냥 갈 것 같지만, 대부분 그 끝에서 방향을 틀어 등락한다. 현명한 투자자는 직선 주로에서 과감히 달려보되, 끝자락에서 수익을 챙기며 호흡을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직선의 끝자락에서 멈출 줄 알고, 곡선에서 시장과의 간격을 유지하는 노력이 바로 우리가 매일 행하는 파동에 대한 반복과 복기다.


만인은 수익을 갈망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길을 찾는다. 나만 두고 갈 것 모두가 애를 태우지만, 오히려 만인을 떨어뜨리기 위해 갈 듯 말 듯 에너지를 응축한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시세의 움직임에 맥박이 빨라지고 있는가? 그 요동치는 맥박을 억누르고, 기꺼이 파동을 보내줄 줄 아는 자만이 비정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진정한 강자가 된다.


속도가 아닌 리듬으로 수익은 결정한다. 빨라진 맥박은 위험 신호이지 진입 신호가 아니다.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파동의 곡선을 관망할 수 있어야 이어 달릴 수 있다.




시장은 대부분 한 파동이 오르면 다시 한 파동이 내리는 등락의 반복이며, 추세조차 결국은 크게 나아가고 적게 조정받는 곡선의 흐름이다. 횡보도, 등락도, 추세도 본질은 모두 곡선이다. 파동은 그저 단순하게 오르고 내릴 뿐이라는 잣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쉬움이나 미련은 어차피 매한가지인 것을 인정하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심리로 매매에 임할 수 있다.


아무리 기법을 깊게 파고들어도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디테일의 악마’이며, 확률 게임의 복잡계와 불확실성이라는 벽에 부딪힐 뿐이다. 투자자는 확률 게임 자체를 이해하고 확률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오직 자신만의 단순한 잣대를 가진 자만이 반복을 견뎌낼 수 있다. 세상은 감히 잠시 머물다 떠날 나약한 개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오직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명심하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파동 또한 너무나도 그러하다.


잣대가 단순해야 등락의 리듬을 탈 수 있다. 지치고 흔들리는 이유는 해석해 정답을 맞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맞히는 대상이 아니라, 확률의 바다에서 단순한 원칙을 반복하는 수행의 장이다.




“저기서 진입했으면 수익이 얼마야.” “결국 가는데, 해야 했었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로잡히게 되는 소유욕은 끊임없이 고개를 내민다. 이처럼 내면에서 심리를 뒤흔드는 ‘자기 안의 자기’야말로 시장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무서운 적이다. 시장은 이 심리의 균열을 파고들어 우리의 돈을 조금씩 빼앗다가, 마치 댐의 작은 구멍이 점점 커져 터져나가듯 어느 순간 휩쓸어 간다. 이러한 구조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크게 크게 가져가야 한다.


파동은 본래 흔들리는 것이 숙명이다. 그 흔들림을 가까이서 지켜볼수록 심리는 동요하지만, 시야를 넓혀 크게 바라볼수록 흔들림은 잦아들게 된다. 크게 바라보는 것은 투자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효과적인 진정제다. 확률적으로 사고하고, 파동을 그려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만 파동의 잔물결에 익숙해질 수 있고, 심리의 동요를 최소화하며 추세에 몸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크게 멀리 보아야 크게 휩쓸리지 않는다. ‘했으면 얼마’라는 후회는 이미 지나간 파도를 잡으려는 헛된 소망일 뿐이다. 크게 보는 여유로움은 당신을 지키는 단단한 방파제다.




전쟁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일상이듯, 시장에서 이익과 손실이 교차하는 것도 '손익 병가지상사(損益 兵家之常事)'다. 수익을 냈는가 손실을 보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위험을 최소화했는가?', '확률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던졌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리가 얼마나 단단했는가?'이다.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 파동에도 확률 높은 타점은 정해져 있다. 상승추세 중 추세선이 우하향하다 고개를 드는 '눌림'의 자리, 하락추세 중에 추세선이 우상향하다 고개를 숙이는 '반등'의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이 확률 높은 타점에 칩을 던졌다면,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그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야만 투자의 길을 오래 걸을 수 있다.


투자의 요체는 단순하다. 칩을 던질 때와 거두어들일 때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각적 자극에 취약하고, 강렬한 기억만 각인되는 뇌의 모순 때문에 챙겨야 할 때 머뭇거리다 심리가 무너지고, 시세 직후에 칩을 던지다 심리 붕괴로 이어진다. 파동은 그저 괘종시계의 추처럼 '왔다 갔다', '흔들흔들' 에너지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거침없이 쏘아 버리고, 다시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타점에 집중하라. 파동이 에너지를 응축해 쏘아 올리는 그 명확한 타점에서만 칩을 던지고 정점에 달하면 미련 없이 칩을 거두어야 확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개인투자자의 최대 약점은 시세가 분출된 직후에 드러난다. 이는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자 시각적인 한계이기에, 오직 반복과 복기, 그리고 경험이 쌓여가는 시간의 힘으로만 조금씩 극복될 수 있다. 만약 이미 시세가 진행 중이거나 시세가 끝난 직후의 그 조급한 심리만 다스릴 수 있다면, 깨달음의 비탈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파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과감해야 하지만, 일단 시세가 분출되었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이미 보여준 방향으로 더 갈 것만 같은 강력한 시각적 착시—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을 인간이 이기기 힘든 본연의 약점이다. 더 내려갈 것 같아도 앞저점을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그저 눌림일 뿐이며, 시세 직후의 시각적 꽂힘을 극복하지 못하는 곳에서 추격과 뇌동매매가 잉태된다.


일단 시세가 나오면 갈 때까지 미련 없이 보내주어야 한다. 그 후의 등락을 노려보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다. 시세 직후의 파동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어야 한다. 만물이 돌고 돌아 기본으로 회귀하듯, 파동 역시 항상 붙여놓고는 반대로 가며, 가장 더 갈 것 같은 자리에서 '추세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뜨리는 곡선의 순환이다.


시각적 약점에서 벗어나면 시세의 본질이 보인다. 가장 뜨거울 때 물러설 줄 알고, 모두가 열광할 때 등락의 이면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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