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매매는 새우깡이다.

by 황금지기


손실이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꾸만 손이 가는 반대 매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 매매는 투자자에게 '독이 든 새우깡'과 같다. 노래 가사처럼 "자꾸만 손이 가는" 그 익숙한 것에 중독되면 계좌는 서서히 녹아내린다. 눌림과 반등을 먹겠다는 반대 매매는 대응이라는 강력한 백신을 맞은 상수에게나 허용되는 위험한 주전부리일 뿐이다.


동화 속 백설 공주는 독 사과를 먹어도 구해 줄 왕자가 있었지만, 투자의 세계는 동화가 아니다. 독이 든 새우깡은 우리를 잠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 돈이 바닥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손이 가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다. 대응의 실력이 없는 하수에게 이 새우깡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뇌동매매의 본능을 깨우는 치명적인 독이다.


반대 매매는 터무니없는 희망일 뿐이다. 양방향을 다 먹으려는 탐욕, 파동의 끝단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잡으려는 오만이 매매를 어렵고 이상하게 만든다. 끝에서 잡지 않아도, 당신의 곳간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파동은 끊임없이 파장을 만들며 수렴과 발산을 반복한다. '파동을 그린다'라는 말의 의미는, 지금 한 파장이 완성되어 다음 마루와 골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한 파장을 기다려 주면, 시장은 우리에게 '높아진 저점'과 '낮아진 고점'이라는 명확한 이정표를 재차 보여준다.


이 파장의 개념 속 ‘곡선의 원리’를 이해하면, 마루(고점)에서 매수하고 골(저점)에서 매도하는 무모한 추격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진입 이후 무작정 한 방을 노리거나, 역전을 기도하며 버티는 미련한 매매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투자자는 파동의 파도를 타고 ‘진입하기·챙기기·자르기·갈아타기’라는 유연한 매매를 구사하게 된다.


매매의 정석은 무턱대고 던지는 예측도, 더 갈 것 같아 달려드는 추격도, '이제는 다 왔겠지'라는 역진입도 아니다. 박스 한가운데의 혼란도, 원칙의 선에서 멀어진 이격의 자리도 아니다. 오직 '양봉에서의 매도와 음봉에서의 매수', 즉 '마루에서의 매도와 골에서의 매수'라는 등락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다. 시장이 만드는 끊임없는 파장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기다리라고, 그리고 챙기라고."


직선으로 욕심내는 욕망이 눈을 가린다. 마루에서 챙기고 골에서 기다리는 이 지루하고도 위대한 반복이 노름판에서 걸어 나오게 한다. 기다린 만큼, 파동은 부드러운 수익의 곡선을 계좌에 그려줄 것이다.




성급하게 마루(고점)에서 매수하거나 골(저점)에서 매도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투자의 성패는 아쉬워도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 구간을 견뎌내고, 정해진 구간에서만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깨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를 넘어 인간 본성의 밑바닥과 마주하는 일이다. 더 갈 것 같은 착시에 눈이 멀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다음 마루와 골이라는 안전한 진입점을 기다리지 못하고 추격하는 것이 바로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한 깨침에 이르기 전까지는 극복하기 참으로 어려운 본능의 영역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구로 매매 횟수가 늘어나고, 잃어도 만회하고 싶은 욕구는 무모한 도박판에 끼어든다. 결국 본성에 휘둘리는 매매는 손실의 확률만을 높일 뿐이다. 상수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할 줄 알고, 틀렸을 때는 미련 없이 빨리 끊어낸 뒤 자신의 다음 수를 굳게 믿는 자다.


욕망의 가속도를 멈추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본성은 늘 ‘지금 당장’을 속삭이지만, 원칙은 ‘다음 파동’을 기다리라고 한다.




한 파장이 완성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꼭대기 마루에서 매수로 따라가는 자는 시장의 ‘마수(魔手, 마루에서의 매수)’에 걸려 마녀사냥을 당하게 된다. 또한 성급하게 골짜기 끝자락에서 매도로 따라가는 자는 ‘골도(骨道, 골에서의 매도)’에 갇혀 말 그대로 골로 가기 십상이다. 시장에서 경계하고 피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이 ‘마수’와 ‘골도’, 그리고 거대한 추세에 맞서다 뒤통수를 맞고 고꾸라지게 되는 ‘역린’뿐이다. 이 세 가지만 피할 수 있다면 시장에서 길을 잃을 이유는 그리 크지 않다.


투자의 본질은 단순하다. 첫 번째 파동의 시작점에서 진입하느냐, 아니면 한 파동을 보내 준 뒤 다음 마루나 골에서 안전하게 진입하느냐—이것이 전부다. 한 파장이 완성되는 지점에서 추격하지 않고, 역진입만 하지 않는다면 승리의 절반은 이미 따놓은 셈이다. 만약 추세와 반대로 매매했다가 제때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 단 한두 번의 실수가 당신의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함정을 피하는 것이 수익을 쌓는 첫걸음이다. 역진입의 상태에서 강력한 추세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인간은 이성을 상실한다. 손실이 커질수록 가격이 싸게 보이는 기괴한 ‘착시 현상’ 때문에, 웬만한 내공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러니 아직 그 지독한 환각을 이겨낼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아예 그 자리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실력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고, 절의 규칙을 따를 수 없다면 그 절을 떠나는 것이 순리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생존 규칙인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일'을 따르지 못한다면, 시장을 떠나는 것이 백번 천번 옳다. 제대로 된 원칙을 세우기 위해 처절한 복기와 반복의 과정을 거친 이에게는 탄탄대로의 앞길이 열리지만, 규칙을 무시하면서 떠나지도 않는 자에게 시장은 한없이 잔인하다.


‘예측에 의한 선취매’, ‘마루(고점)에서의 추격 매수와 골(저점)에서의 추격 매도’, 그리고 ‘고점 혹은 저점이겠지’라는 역진입을 반복할수록 당신의 앞길은 급격히 좁아진다. 여기에 손절을 빼버리고 대응조차 포기하는 태도가 더해지면, 그 길은 언제 절벽 아래로 추락할지 모르는 험로가 될 뿐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절을 떠나야 하듯, 시장의 규칙대로 대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진입하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매매의 자유가 방종이 될 때, 그 책임지지 않은 방종의 크기만큼 소중한 돈은 사라질 것이다.


책임 없는 자유는 자멸로 가는 급행열차다. 언제든 배팅할 자유가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원칙이라는 절의 규칙이 따르지 않는다면 여전히 하수다. 원칙에 순응하는 자는 시장이라는 절에서 성불(성공 투자)할 것이다.




강하게 시세가 붙을 때, 당신의 가슴은 여전히 조급함으로 뛰고 있는가? 상수의 가슴은 '조마조마'하거나 '콩닥콩닥' 뛰는 대신, 시세의 강도를 차가운 감각으로 읽어낼 뿐이다. 시세가 나를 두고 갈까? 혹은 예측이 맞을까? 가슴이 뛴다면 여전히 하수의 영역에서 헤매는 것이다. 어떤 유혹 앞에서도 예측으로 잃지 않아야 하며, 선취매로 원칙을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칙의 그릇만큼만 취해야 한다.


마음의 바다 위, 밤하늘에 별들이 유혹한다. "지금 당장 선취매 하라고, 어서 추격하라고, 이제는 갈 테니 역진입하라고" 속삭이며 당신을 매혹한다. 우리가 끈질기게 파동을 그려야 하는 이유는 마루(고점)와 골(저점)에서 어리석게 따라붙지 않기 위함이며, 앞고점과 앞저점이라는 파동의 급소를 보기 위함이다.


앞고점과 앞저점이 그려지는 파동의 요체다. 뚫지 못하면 고점과 저점에서 쌍을 이루고 두터운 매물대는 벽이 된다. 뚫기 전의 앞고점과 앞저점 근처가 '진입 불가 영역'인 이유는 명확하다. 벽을 뚫고 난 뒤의 눌림과 반등을 확인하기 전에는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적기 때문이다.




어렵고 애매한 구간을 마주했을 때, “이 구간은 한 파동 보내 주자”라고 말할 줄 아는 여유로운 심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원칙을 지키며 위험하지 않은 매매가 가능해진다. 파동의 흐름이 앞고점과 앞저점을 깨지 못하고 지지나 저항을 형성한다면, 그때는 확률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앞고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꺾일 때 매도점을 찾고, 앞저점을 붕괴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 때 매수점을 찾는 것—이것이 바로 파동의 급소를 확률 높은 비결이다. 파동을 그려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다림 끝에 바로 이 급소를 찌르기 위함이다.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들어오는 마루(고점)에서 매수와 골(저점)에서의 매도만 하지 않아도 시장에서 크게 무너질 일은 적다. 더 갈 것처럼 따라 붙이는 마루와 골이야말로 투자자를 잡아먹는 ‘호랑이굴’임을 잊지 마라. 기계적으로 손이 나가는 진입 자리를 만들고 반복해야 하지만, 자꾸만 사사로운 생각이 개입되어 기계적인 매매를 방해하는 것 또한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인생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원칙을 지켜나가는 시간이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애매함을 보내면 명확함을 취한다. 시간이라는 최고의 스승을 믿고 기다려라. 기계적인 매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으나, 원칙을 지키는 시간과 비례하여 안정감을 더할 것이다.




뇌동매매와 결별하는 길은 손실을 짧게 자르며 뒤따르는 '후회'를 극복하는 것이고, 큰 수익과 쌓아가는 길은 이익을 길게 가져가며 '아쉬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손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짧은 손절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야 하고, 그로 인한 후회를 극복해야 한다. 반대로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아쉬움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형태의 감정을 넘어서야 한다. 진입과 청산의 결과가 어떠하든 매매는 어차피 아쉬움과 후회의 연속이며, 매매가 거듭될수록 미련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우리를 짓누르기 마련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을 보며 나이 들어감을 깨닫는 인생사가 그러하듯, 투자도 그렇다.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연속적인 후회나 아쉬움을 기꺼이 마주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매매는 좀 더 편안함에 닿을 것이다.


후회나 아쉬움은 매매의 수수료다. 완벽한 매매를 꿈꾸기에 괴로운 것이다. 뒤따르는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일상이며, 미련 덩어리는 수익의 거름이다.




원칙은 시장이라는 전장에서 우리가 쥔 창이자 방패다. 자본을 일구기 위해서는 자신의 창을 믿고 두려움을 이기면서 과감히 돌진해야 하고, 소중한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채 성급한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공격과 방어 이 모순(矛盾)이 투자자를 쉼 없이 시험한다.


그러나 잊지 마라.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이들은 수익을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본전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돈을 단기간에 되찾겠다는 무모함으로 시장 밖으로 내쳐졌다. 시간은 실력을 낳고, 그 실력은 원칙을 단단하게 담금질한다. 그러므로 투자자는 원칙을 지키고 모순을 견뎌내는 일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


시장은 모순을 버텨내는 곳이다. 수익은 원칙의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일 뿐이다. 잃지 않는 법을 배운 자에게 시장은 무한한 기회를 주지만, 수익만을 탐하는 자에게는 기회를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바둑의 지혜가 일러주듯, 위태로운 상황을 마주하면 봉위수기(逢危須棄), 즉 모름지기 미련 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손실 상태에서 억지로 전세를 뒤집으려 발버둥 치지 말고, 최대한 빨리 끊어낸 뒤 충분히 쉬어야 한다. 상대가 강한 곳에서 부담되는 돌을 끝까지 지키려다 대마로 키워 잡히는 참변을 당할 수도 있다.


또한, 조정 구간에 역진입하여 추세의 역전을 바라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취대(捨小就大) 즉 눈앞의 푼돈에 현혹되지 말고, 추세와 동행하며 큰 이익을 취해가야 한다. ‘역전’을 꿈꾸며 ‘역진입’을 일삼으면 ‘역전패'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 꿈꾸는 달콤한 역전은 나쁜 습관을 실어 나르는 투기판의 기차역에 불과하다.


손실을 보았다면 물러나 다시 때를 기다려라. 이미 떠나버린 버스를 몸으로 막아서는 무모함을 버리고,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조용히 올라타면 그만이다. 탄탄대로로 인도하는 것은 위기에서 버릴 줄 아는 용기(봉위수기)와 작은 이익을 포기하고 큰 흐름을 따르는 지혜(사소취대)다.